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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08. 2020

맘 상해서 집에 가고 싶어지는 대화엔 공통점이 있어.

그냥 중간에 그만 얘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바로 이럴 때...

대화라는 게 미묘합니다. 일반적으론 '대화는 '디테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라고 많이들 말하더라구요. 단어선택, 어투, 작은 표현의 차이, 보이스 등. 대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스킬이 중요하단 얘기죠.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상형은 말 잘 통하는 사람인데, 그게 꼭 유창함, 이병헌보이스, 시민논객스러운 논리력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대화가 잘 통한다 아니다...또는 이 대화가 행복하다 아니다는 사실상 태도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언어 속에 감춰진 묘한 뉘앙스와 시선이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몇 가지 대화하다가 때려치고 집에 가고싶어지는 케이스를 생각해봤어요.




1. 어 안물어봤는데 왜 가르쳐요? 


대표적인 건 역시 안물안궁인데 조언과 도움 어쩌고 하면서 갑자기 불필요한 간섭을 쏟아낼 때랄까요. 보통 꼰대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꼰대의 라떼스피치는 명확하게 불필요하기 때문에 그냥 한 귀로 흘릴 수도 있고, 이젠 너무 흔해져서 그냥 크게 기분 나쁜 수준은 아닙니다.


문제는 교묘한 친절함과 칭찬속에 우월의식을 녹여내는 애매하게 기분나쁜 조언이랄까요. 이런 대화는 


진짜 이런 부분은 내가 조언해주고싶다느니, 

사실 결정은 본인이 하시는 것이지만, 

그냥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등의 미사여구로 잘 포장되어 있어요. 도움을 준다는 또는 너를 위해서 말해준다는 명분이 있지만, 실제론 나를 깔고 내가 더 우위에 서고 싶은 욕구죠. 이런 대화는 주로 일방적으로 흘러갑니다. 상대방은 말할 기회가 별로 없죠. 내가 한 마디라도 말을 이어나갈려고 치면 바로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틀린 건 아닌데...' 등으로 꽤나 매너있는 척하며 말을 끊어버리고 중요하다는 제스쳐로 특유의 또박또박한 말투를 구사하며 뭔갈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상대를 기분나쁘게 할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아요. 왜냐면 지금부턴 대화가 아니라,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고 손바닥만 안댔다뿐이지 거의 혼나는 분위기거든요.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은 '너를 위해' 라는 말로 상쇄됩니다. 매우 좋지 않아요.



2. 궁예세요? 지금 제가 심리상담하러 왔어요?



특히 내가 심리학 등을 공부해봤고, 자신이 꽤나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유형별로 사람쪼개기 좋아하는 애니어그램 신봉자나 MBTI 만능론자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입니다. 내가 말하는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의미를 찾고 나를 간파/분석하려고 해요. 그리고 규정짓기 좋아하죠. 


"그거 완전 방어기제야 지금."

"그거 사실 화난게 아니라 열등감인 거 알지?"

"그건 원래 사실 이런 마음이지?" 

웨저뤠...

따위의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할 땐 특징이 있는데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코난처럼 외치거나, 아니면 엄청 쿨한 척 스쳐가듯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난 다 알고있어~ 이런 느낌을 어필하는데... 그게 눈에 보여서 더 안쓰러울 때도 있어요. 그리고 왠지 이런 말할 때는 꽤나 목소리톤도 바뀌고 무슨 비장한 사실을 얘기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데...자기 딴에는 되게 정곡을 찔렀다. 뭐 본질을 꿰뚫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냥 상대를 무안하게 만든거고, 내가 좀 더 심리적 우위에 있음을 어필한 것 뿐이에요. 정작 유약함을 드러낸 건 그 쪽이죠. 대화를 하고싶은게 아니라 그 사람 위에 서고 싶은 거잖아요. 



3. 차라리 그냥 대놓고 자랑을 하세요.

겸손도 겸손 나름이지, 이미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듯 모든 대화가 내 자랑인데 난 자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식의 겸손은 좀 이상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전 제가 진짜 이거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요.. '네 너는 진짜 그거 못해요.' 이렇게 말해줘야 되는 건가. 어차피 요즘 시대에 자기자랑은 그리 흠이 아니에요. 자기자랑을 하지 않는 이유는 3가지 정도가 있더라구요.


1. 난 전문가고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서 '나의 무지'를 자각했다. 잘난척은 아마츄어들이나 하는거지, 난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2. 내가 직접 말하면 좀 격이 떨어지니까 누군가를 이용해서 나를 드러내야 겠다.

3. 진짜 그냥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조용히 있다 가고싶으니 건들지 마라.


어떤 이유든 잘못된 건 없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도 자연스럽고, 배우면 배울수록 무지의 벽에 부딪히는 것도 사실이죠. 문제는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 하고 싶은 경우입니다. 마치 엄청 내공이 있어서 무지를 인정하는 척, 괜히 남에게 종용해서 내 자랑을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이런 사람들은 대화보단 자기를 알아주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요. 타인이 무슨 말을 하든 그건 결국 자길 드러낼 발판일 뿐이죠. 


내가 무슨 상을 탔다고 하면 자긴 그것보다 더 좋은 상을 탄 얘길 하고싶고

내가 월오백을 번다고 하면 자긴 월육백 번 얘길 하고 싶고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하면 자기도 강원국작가님에게 칭찬받았던 얘길 하고싶은 거에요.



4. 돌려까기


어? 아! 그때 뭐 보여주셨었죠?! 아참 왜 그걸 기억을 못했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그랬나? 

보통 이런 돌려까기장인들은 흘리는 말로 비하의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냥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죠?' 라고 물어보면 될 걸 굳이 앞에 뭔갈 붙여요. '1인 기업이라 코로나 때 되게 힘들겠어요.' 라는 식으로 말이죠. 훅 들어오는 경향이 있어서 그 순간에 바로 눈치채기도 어려울 때가 많아요. 나중에서야 그게 나를 깐 얘기였구나..싶기도 하고 현장에서 느껴졌다고 해도 분위기 상 그냥 하하하 웃으며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혼자서 일하면 에이전시보단 퀄리티 안나오잖아요 그죠?'

'요즘 그래도 중소기업 많이 좋아지지 않았어요? 저희는 외국계라 변화가 잘 없어요.'

'근데 그렇게 드립글만 쓰면 일은 언제해요?'


와 같은 문장들이에요. 놀라운 건 이런 돌려까기를 의도적으로 시전하는 사람은 꽤나 드물다는 거에요. 그냥 원래 사고방식 자체에 고정관념이 있는 상태에요. '취미를 가지면 일을 대충한다.' 와 같은 본인만의 선입견이 있는 상태죠. 그래서 정작 본인은 그게 상대를 까고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요.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나오는 말이죠. 오히려 본인이 너무 잘 드러나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5. 대화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 가고싶다고 말해요.

단답에 침묵에 의견도 내지 않고 그냥 듣고 멀뚱히 있으면 대화가 안되겠죠. 하지만 '듣고 있어?' 라고 물어보면 어 또 듣고있다고 대답합니다. 리액션을 하던가 하다못해 아하..오..음.. 정도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가. 대화는 기본적으로 핑퐁이에요. 


말꼬리를 잡고 이어가든, 앞 대화의 어떤 소재를 잡고 이어가든, 의식의 흐름이든, 주변의 영향이든 소재는 계속 바뀌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할 수 있지만, 일단 액션과 리액션이 존재해야 다음이 있는 거거든요. 근엄진지한건 알겠는데, 그렇게 혼자 떠들다보면 굉장히 현타가 옵니다. 특히 상대가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하는 성향(어색하면 말많아지는)이라면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풍선처럼 터져버리거나 울고 말거에요.



6. 깔대기 꽂을 때


깔대기란 '무슨 말이든 다 자기에게 도움되는 쪽' 으로 써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애써 털어놓은 고민도 자기 강의주제로 써먹고, 

내가 던진 아이디어도 자기 사업에 써먹고, 

내가 취직했다고 하면 자기 이번에 뭐 영업시작했다고 좀 사라고, 

내가 퇴사했다고 하면 그럼 자기 좀 도와달라는 식으로 


항상 결국엔 '나' 로 돌아오는 식의 대화에요. 이 대화에서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 상황, 공감이나 위로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죠. 대화는 상대를 이용해먹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서 이득을 취할 때도 이렇게 대화하진 않아요. 비즈니스에선 내 이익을 지키면서도 서로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도움이 될까요?' 라는 자세로 대화하는 것이 기본이니까요. 그냥 이건 자기밖에 모르는 독단적인 대화일 뿐입니다.



7. 모든것에 근데


그럼 유튜브나 인스타 쪽을 좀 더 해봐

근데 내가 영상이나 사진을 잘 못찍어

그럼 콘텐츠 관련된 책이나 레퍼런스를 좀 더 공부해보는건?

근데 내가 요즘 알바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거든

그럼 내가 요즘 듣는 온라인 강의 같이 들을래?

근데 내가 온라인으론 공부를 잘 못해.


이런 식이죠. 긴 말 안해도 아실 것 같아요...이런 대화는 매우 힘듭니다. 이게 계속 대안을 제시하는 친구의 문제인지 철벽근데디펜스를 치는 상대방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어쨌든 둘 중에 한 명은 빨리 귀가하고 싶을 것 같네요.

아아아아아아아아

8. 선의을 가장한 무례함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지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팩트만 말씀드리자면

진짜 느낀대로 얘기하자면

딱 보고 느껴진 건


....등의 말로 시작해요. 이 표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대화의 맥락이 더 중요하죠. 


지금 갑자기 팩폭을 날릴 타이밍도 아니고, 

상대가 그걸 원하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이미 지금 그 말 속엔 '널 공격할테니 통키처럼 잘 받아야해. 안그럼 니 아빠처럼 맞아죽을거야.' 약간 이런 으름장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그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될 테니 사랑의 매를 맞아! 라는 식의 태도인데, 정작 상대방은 도움을 바란적도 없고 당신의 선의를 받아야 할 의무도 없어요. 선의와 조언을 맘껏 베풀고싶다면 고민상담 유튜브를 개설한 후 혼자 떠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에요. 괜히 앞사람 맘에 팩폭이라고 어설픈 대못박지 말고. 1번경우처럼 이런 얘기할 때도 혼자 비장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99%의 경우 소위 '진짜, 솔직히, 사실, 팩트만 얘기하면' 뒤에 나올 얘기는 이미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새삼 놀랍지도 않죠.   


9. 다시원점다시원점


어쨌든, 여튼, 됐고, 모르겠고 

와 같은 단어와 많이 쓰는 분들입니다. 앞에 했던 지금까지의 맥락과 대화들은 다 무시하고 그냥 다시 원점으로 가자는 것이죠. 친구들과 노가리를 까든, 비즈니스 미팅을 하든 결국 대화는 켜켜이 쌓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게 쌓여서 분위기와 추억을 만들게 되고, 비즈니스 미팅이라면 프로세스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게 되겠죠. 근데 자꾸 앞에 쌓인 맥락을 지우려고 하면...우리의 대화는 한 두마디면 끝날 일 아니었을까요? 그냥 톡으로 하지..왜..



10. 자긴 되게 부정적이래


어쩌라고? 라는 반문이 드는 태도에요.

 '내가 진짜 현실적인 성격인데,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하는 말인데, 나 원래 좀 부정적이야.' 

라는 식의 쿨함으로 포장한 무례함이죠. 당신이 부정적인 걸 왜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거죠? 부정적인 줄 알고 그게 지금 대화의 맥락을 불편하게 만들것을 안다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해요. 대화가 결국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란 건 이해해요. 그러니 염세적이든 부정적이든 시니컬하든 나를 드러내고 싶긴 할거에요.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을 거라면 유튜브를 하던가 광화문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대화는 배려와 공감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것은 상호간의 암묵적인 의무죠. 그래서 아무리 꼴배기 싫어도 막상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하고 시작하잖아요. 내 성향이 어떻든 그건 알바가 아닙니다. 뒤에서 착한 사람은 필요없어요. 앞에서 잘해주세요. 어차피 오래 보진 않을 것 같으니 지금 이 시간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말을 하다보니 그럼 세상에 모든 대화가 다 불편해보이는 느낌인데... 그건 아니에요. 누누히 말했지만 언어는 잘못한 게 없어요. 위에서 했던 모든 말은 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고 그 자체로 잘못된 표현은 없어요. 문제가 되는 건 말하는 사람의 태도죠. 아무리 예쁜 말과 상대방에 대한 몇 마디의 칭찬, 웃음, 화답, 겸손 등의 미덕으로 치장해도 내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면 그 대화는 필연적으로 망가질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금방 탄로나죠.


대화란 건 한 사람의 인생과 마주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수십 년의 인생을 눈 앞에 마주하면서 함부로 자기를 위에 놓을 수 있겠어요. 좋은 대화는 항상 경외와 호기심을 바탕으로 해요. 그 위에 공감과 배려가 겹쳐지는 거고, 스킬이나 보이스 이런 건 혀끝에 존재하는 옵션들이죠. 


위와 같은 나쁜 대화들은 그 자리에선 잘 파악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마음으론 직관적으로 느껴지지만, 왜 불편한 지 쉽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여기서 괜히 정색했다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요. 굳이 정색하고 대거리해서 관계를 틀어놓을 필욘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재수없고 거슬리면 한 마디 해주는 게 좋겠지만요. 가급적 누군갈 만났는데 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마음에 뭔가 얹힌 느낌이다. 이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하고 밤잠을 못이룰 때. 그게 나의 유약함과 모자람이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위 10가지의 대화의 대처는 딱 두 가지에요.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저는 지금 이 대화가 매우 불편하네요. 말 속에 뉘앙스가 그렇게 대화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요. 여기까지만 대화를 하고 싶어요." 

라고 핵사이다 발언을 한 후 그냥 일어나버리거나(인생에 한 두번이나 있을까 말까한 일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침묵과 어색한 미소로 참고 있다가 집에와서 맥주를 드시는 방법이죠. 전 치맥솔루션을 많이 추천해요. 말하지 못한 말들이 올라와서 빡칠 순 있겠지만, 대화가 아닌 대화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섞을 필욘 없어요. 우린 대화를 하고 싶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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