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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Aug 01. 2020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로 브랜딩을 못하는 우리들

그게 무슨 전략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보통 브랜딩 해주세요! 라는 의뢰가 들어와서 미팅을 가보면 대표님의 눈빛이 굉장합니다. 동공에서 뭔가가 폭발해도 단단히 폭발한 느낌이죠. 

서비스 런칭 축하한드아!!

거친 열정과 뜨거운 패기로 브랜딩 프로젝트의 축포를 쏘아올린 지 3개월... 대표님 눈에 총기는 사라지고, 어느새 손도 떨고 계시고 목소리엔 힘이 점점 빠져갑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프로젝트를 3개월 이상 넘기지 않아요. 아예 연간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가장 뜨거울 때 으와와아아아 해내고, 이 다음부턴 그걸 잘 유지하는 일만 하죠. 사람이 참 그렇습니다. 브랜딩이란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보니 하면서 점점 지치는 클라이언트의 모습을 많이 보았답니다.


보통 브랜딩은 두 가지 파트로 나뉩니다. 


1. 대표님이 고생해서 메시지를 만들고, 선언하는 과정

2. 실무자가 고생해서 그 메시지를 강화하는 과정.


때문에 초반엔 대표님이 힘들고, 메시지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실무자가 힘들어요. 대표님은 생각을 정리하고 엣지를 살리고, 뭔갈 일단 내려놔야 하는 숙제에 직면합니다. 실무자들은 그냥 감, 트렌드, 개인취향, 레퍼런스, 누가 맞다고 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만들다가, 이젠 브랜드메시지를 기준으로 업무를 재정렬해야 하는 숙제를 경험하죠.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일들입니다. 총량이 변하지 않더라도, 일단 고민이 두 배가 되는 터라 체감업무량은 굉장히 많은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우리는 자꾸 브랜딩의 전략만을 생각하는데 곰곰히 우리 브랜딩 프로젝트 실패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실은 그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하는 일' 이기 때문이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하다보니 좀 귀찮아집니다.


브랜딩프로젝트 이 후, 실무자들은 사진 하나, 콘텐츠 하나, 텍스트 하나를 쓰더라도 메시지와 핏을 맞춰야 하고, 가이드를 준수해야 합니다. 이게 창업 당시부터 이런 게 갖춰져 있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브랜딩은 매출이 한참 나고 있을 무렵 중간에 (불쑥)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에 하던 방식' 에 대한 관성이 심하죠. 어느 날 갑자기 가이드를 지켜야 하고... 뭔가 콘텐츠 하나 올리는 데도 몇 번씩 반려당하면 만드는 사람이나 그걸 컨펌하는 사람이나 슬슬 이 복잡한 과정이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이번 건 그냥 하자' 

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한 개 두 개씩 가이드는 무너져가죠. 패기롭게 시작했던 CS프로세스도 어느덧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꼼꼼히 검수하던 콘텐츠도 대표님이 바빠지면서 그냥 실무자에게 일임하게 됩니다. 뭔가가 체화되기 전까진 항상 기존의 관습으로 돌아가려는 저항력이 작용합니다. 이걸 이겨내는 건 참으로 쉽지 않죠. 



망할까봐, 혼날까봐 무섭기도 합니다.


뭔가 명확한 기준이 세워진다는 건 그 만큼 '할 것/하지 말 것' 이 뚜렷해진단 얘기입니다. 성패의 기준도 선명해지죠. 우린 은근히 애매한 상태를 좋아합니다.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려고 하죠. 하지만... 메시지가 너무 선명하면 '너 왜 그렇게 했어? 그건 우리 색깔이 아니잖아.' 라는 평가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평가받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에요. 실무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대표님 입장에선 불확실한 길을 실험한다는 게 무섭습니다. 이게 짧은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지만, 브랜딩이란 건 이름만으로도 뭔가 거창하고 장기적인 느낌을 제시하잖아요. 미래적인 단어니까요. 잘못 방향성을 맞추면 안 좋은 미래가 그려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죠.



시간이 갈수록 돈이 아깝습니다.


펄럭..펄럭..

브랜딩은 당연히 매출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메시지를 구현하는 목적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니까요. 메시지는 좋은데 돈이 안벌리면... 상당히 슬프겠죠. 하지만 브랜딩은 난이도가 꽤나 높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시도가 필요하고, 어쩌다 운좋게 우리 핏에 맞는 (모두가 이마를 탁 치는) 메시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방향성으로 매출을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문제죠. 


차라리 돈되는 트렌드만 쫓아가는 편이 오히려 매출면에선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심지어 브랜딩을 하다보면 특정한 엣지를 만들기 위해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객들이 떨어져나가는 등 순간적인 매출 그로기 상태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인건비다, 외주비용이다, 컨설팅비용이다..해서 돈은 계속 나가고 있고. 누구라도 이쯤되면 손이 떨리지 않겠어요? 게다가 뭔 브랜딩 컨설팅 비용은 또 한 두푼이 아닙니다. 저 같아도 살떨릴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요.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메시지를 하나로 맞추는 과정이 어디 순탄할까요.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직원들도 많을 거고,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업무난이도가 높아지는데 월급은 똑같은 상황에서 반발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죠. 사실 이 때문에 브랜딩은 누군가 한 명은 설득, 멱살, 협박, 종용, 회유 등 다양한 액션을 통해 악당노릇을 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뭔가 상황이 안좋게 흘러갈 때...우린 항상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해요. 총알받이라고도 하잖아요. 불확실의 공포가 분위기를 압도하면 그 여파를 흡수해 줄 악역이 한 명 필요한데...이걸 누가 맡고싶겠어요.


그래서 다들 그냥 착한 사람이 되는거에요. 힘들다 하면, 쉬엄쉬엄해.. 어렵다하면 하던 대로 해... 모르겠다 하면 천천히 해도 돼... 나쁜 소리하고 싶지 않은거죠. 피드백과 설득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또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면 브랜딩은 빠른 시간 내에 무너집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내적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역량에서 15%상향된 목표라고 누가 그러더라구요. 인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땐 확실히 그 정도의 상향된 목표의식은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죠. 하지만 루틴에 의해서 하고 있었거나, 딱히 크게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면 1%의 상향도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브랜딩은 이게 난이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오프라인 행사는 그 자체로도 개빡센데, 거기에 메시지도 맞추고 매출도 만들어야 하고 이래저래 콘텐츠 검수까지 방향성을 맞춘다어쩐다 하다보면 골머리가 터질거에요. 불만 뿐 아니라 실무자들은 종종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난 일을 못하나봐. 해삼인가봐. 개불인가봐. 우렁쉥이인가봐.' 이러다가 동기가 바닥나면 자존감을 찾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지루해...


하아...

루틴을 못 견디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무자든 대표님이든...항상 새롭고 높은 수준의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딩은 엄청나게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처음 기획할 땐 엄청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는 듯한 기분에 뽐뿌를 받지만...결국 브랜딩은 구축 이 후 유지관리가 훨씬 중요해요. 자잘한 댓글리케이션과 CS응대, 디테일한 매장관리, 인력관리, 콘텐츠검수 등이 끊임없이 반복되죠. 프로모션이나 재밌는 일회성 콘텐츠는 그저 이벤트일 뿐입니다. 브랜딩은 이벤트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들을 견딜 수 있어야 하죠. 그게 불확실할 지라도 말입니다. 



다른 일이 바쁘고...


브랜딩 브랜딩 하다보니 브랜딩이 엄청 대단해보이지만...사실 회사에는 온갖 종류의 대단한 일들이 많습니다. 투자자와 술 먹는 것도 중요하고, 연간행사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고, 새로운 클라이언트 유치를 위한 작업, VOC정리, 제품개발, 서비스 업데이트 등 늘상 돌아가는 일이 엄청 많고 심지어 급박하죠. 제가 여지껏 회사에서 진행되는 일 중에 '여유있게 해도 되는' 일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와중에 브랜딩을 하고나면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했잖아요. 평소 하던 일을 그대로 하더라도...방향성 맞춘다고 몇 번씩 고민해봐야 합니다. 어느 세월에 이러고 있겠어요. 지금 일을 계속 밀려들어오고, 사고는 매일매일 터지는 데... 방향성이라뇨. 실무자에게 이건 너무 먼 우주같은 이야기일거에요. 심지어 변명도 너무 충분합니다. '이거 안하면 사고 터지는데??' 


변명이 명확해지면 약속은 무너지죠. 그렇게 브랜딩은 무너져갑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고


굳이!! 굳이!!! 굳이 으아으아으아아아아아아 안해!!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거예요. 브랜딩 하기 전에도 잘 살아왔기 때문이죠. 특히 매출이 어느정도 나고있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선 애먼 서비스를 괜히 건드려서 리스크를 감당하느니, 현재 하던 방식으로 꾸준히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데 굳이 손대고 싶진 않겠죠. 물론 이 와중에도 미래를 생각해서 라던지 앞으로 나올 제품때문에 전체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시작이 그렇지, 막상 진행하다보면 중간에 항상 드랍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마케팅 대행사를 끼게 되었다거나, 지금은 다른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면서 말이죠. 과거의 영광은 항상 브랜드에게 발목이 됩니다. 모든 게 다 순조롭게 돌아간다 싶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 같아요. 



남들이 부럽고


맞아요. 이것 때문에 조급해지죠. 특히 SNS보다보면... 도대체 왜 저 회사는 저렇게 잘 나가는거야. 갑자기 방송에 나간다, 누구와 제휴를 맺었다, 투자를 왕창 받았다 등등... 희소식들이 판치는 소셜미디어 세상에선 누구나 유니콘이 되고 IPO를 바라보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우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맘 속으론) 알고 있지만, 그건 이성적인 판단일 뿐이고, 막상 들었을 때 느껴지는 배아픔과 묘한 열등감은 매우 감정적이고 순간적이죠. 이건 조급함으로 바뀌고,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딩은 위의 모든 과정을 밟으며 결국 몇 개월 안돼 드랍되고 말죠. 





결국 브랜딩은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결국 의지를 지키고자 하는 합의이자, 액션이니까요. 의지자체가 흔들리게 되면 브랜딩은 그저 허울만 남게 된답니다. 외주 맡겨서 만든 소개서 정도가 창고가 쌓여있겠죠. 브랜딩을 시작할 땐 꽤나 심적으로 결연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이걸 사랑하는 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죠. 


매출증진을 기업의 제1목표로 삼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브랜딩을 해야 한다고 외치는 세상인지라, 나 혼자 뒤쳐지는 느낌에 사로잡혔다면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내 액션의 동기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지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무작정 브랜딩 해보자고 외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결국 모두에게 폭탄이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르니까요. 기업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먼저 내 생각의 기준을 잘 세워봅시다. 지금 이건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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