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손 올리기 전에 텍스트 콘텐츠를 기획하기.
회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합니다. 이 때 고민거리는 3가지죠. 플랫폼과 콘텐츠 포맷, 그리고 소재기획.
쟈아, 생각해봅시다. 아무래도 트래픽을 신경써야 하다보니 거대플랫폼에 몰립니다. 포맷은 한정적이죠. 영상, 글, 사진.. 뭐 이 정도가 되겠네요. 반면 소재는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소재밖에 없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기획과 마케팅 싸움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중 회사가 '글'로 나를 알리고 싶을 때 뭘 써야 하는 지 한 번 알아볼게요.
일단 채널을 생각해봅시다.브런치나, 카카오 1Boon, 뉴스레터, 자체 회사블로그(홈페이지 내), 네이버 블로그, 어쩌면 페이스북?... 정도가 있겠습니다. 방식은 아티클, 스토리, 정보성글, 안부인사 등이 되겠죠.
항간엔 "텍스트가 부활할거다, 아니다 트래픽이 안나온다, 터지기 어렵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글은 터지고 안 터지고를 떠나서 많은 정보를 순차적으로 전달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버릴 수 없는 포맷 중 하나죠. 다만, 공수가 굉장히 많이 들고 왠만큼 찰진 글이 아니고서야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텍스트 콘텐츠를 쓰는 목적은 5가지가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구축하기
앱/웹 내로 유입시키기
가입/구매를 유도
브랜드 팬 확보(구독자 등)
트래픽 확보
이 중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글의 성향도 많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이미지 구축의 경우엔 글의 톤이나 다루는 소재 등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유입이나 구매유도와 같은 경우엔 누르지 않고선 잠을 이루지 못할 매력적인 유인문구가 더 중요하죠. 팬을 확보할 땐 소수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분명한 엣지가 필요합니다. 트래픽은 누군가에게 공유할 수 있고, SNS상에서 화제가 될 법한 공감/재미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약간의 어그로력도 있어야 하죠.
이 방향성을 잘못 잡으면 재미도 없고 성과도 없는 글이 탄생합니다. 팬을 확보하고 싶은데 정보성 글을 쓰고 있으면 안됩니다. 정보성 글은 기본적으로 주로 검색을 통해 시작되고 저장으로 마무리 됩니다. SNS상에서 공유력도 높지 않죠. 팬은 정보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트래픽을 확보하고 싶습니다. 우리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는 글을 써야 할까요? 노노 그렇지 않죠. 누구도 광고성 글을 친구에게 공유하지 않습니다. 트래픽은 ‘이거 네 얘기다! 이것 좀 봐.’ 라는 반응에서 시작됩니다. 글을 보고 공유할 대상이 떠올라야 합니다. 콘텐츠에 긍정적인 의견을 남기거나 공유를 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주제여야 하구요. (괜히 공유했다가 구설수에 오르는 건 싫습니다.)
목적을 정했으면 방향성과 콘텐츠 색깔을 잡아봅시다.
목적을 정했으면 방향성을 정하고 콘텐츠 표현방식을 정합니다. 텍스트 콘텐츠 기획을 위해선 이 3가지 사항이 잡혀야 하죠.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 회사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월렛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쳐봅시다. 신뢰감 그득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전문적이고 냉철한 분석가의 이미지가 되고싶죠. 그렇다면 어떤 스타일을 글을 써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좁은 주제에 대한 날카로운 칼럼이나 인사이트가 돋보이는 정보성 글을 위주로 적겠죠. 그런데 이게 공짜로 보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보로 귀한 자료여야 합니다. 막 읽으면서도 미안하고..이건 저장해놔야 할 것 같고 소중해야 하죠. 더불어 독보적이어야 합니다. 좁은 분야를 집중해서 다뤄야 하고 누군가는 이걸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으로 공유할 것입니다. 트래픽이 많진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는 개인저장 및 피드에 공유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대신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축적되어 갑니다. 우리가 설정한 목적이죠. 네 이건 성공입니다.
방향성은 ‘전문가 이미지 구축하기’ 입니다.
방법은 ‘최신 블록체인 기술동향 정보 제공’ 입니다.
콘텐츠의 색깔은 ‘공짜로 보기 아까울 정도’ 의 상세하고 깊이 있는 리포트'입니다.
이 3문장부터 규정해놓고 상세한 소재를 잡아야 하죠. 이 중 많은 브랜드에서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부분은 ‘색깔’ 입니다.
예를 들어 ‘정보 제공’ 이라는 기획의도를 가지고는 어떤 정보를 어떤 식으로 전할 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텍스트 콘텐츠는 읽었을 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지가 중요합니다. 이 글을 사랑하게 만들 이유가 있어야 하죠. 10가지 정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주자.
글은 생각입니다. 주로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독자는 내 생각을 통해 위로받기도 합니다. ‘나와 같은 생각인 사람이 있구나!’ 라고 말이죠. 게다가 그게 브랜드의 콘텐츠로 발행된 것이라면 훨씬 크게 위로 받는 느낌일 것입니다. 난 오이가 너무 싫은데 친구들은 오이가 모두 좋다고 합니다. 늘 오이때문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다가, 어느 날 문득 오이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라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독자는 이것 좀 보라며 친구들에게 이 글을 공유할 겁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릴 겁니다. 오이를 싫어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겠죠.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 별 효력이 없습니다. 소수의 의견에 동의해야 소수는 위로받고, 다수는 반응하죠.
블록체인, 핀테크, 건축시공기술, 금융플랫폼,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전략기획, UX기획 등 단어만 들어도 너무 어려울 것 같은 소재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소재일수록 쉽게 풀어냈을 때의 매력도는 상승합니다. 보통 이런 주제의 글은 검색을 통해 들어옵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죠. 어떤 재미나 가독성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막상 들어와서 글을 읽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으면 화들짝 놀랍니다. 지금까지 이런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하는 곳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뉴스를 쉽게 정리해주는 시사 뉴스레터 서비스 ‘뉴닉’ 이나 기업회계장표를 흥미롭게 분석해주는 ‘돈 밝히는 여자 Cathy’ 등이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말에 알러지가 있거나 누군가를 가르치기 좋아하는 성향의 글쓴이 분들이라면 도전해보세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들은 빵 터집니다. 강의장이나 행사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자목록을 적었던 글이나,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의 대화특징들을 적어놨던 글, 스타트업 사람들 특유의 말투를 관찰했던 ‘판교사투리’ 등 깊게 신경쓰지 않고 지나쳤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들을 느낄 때 독자들은 신선함을 느낍니다. 뭔가 흩어진 퍼즐이 맞춰지면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한 느낌을 받죠. 일상의 디테일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목록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 글의 특징입니다. 이런 디테일함은 다양한 웃음포인트를 선사하기도 하죠. 글 쓰는 분들이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다면 선택해보셔도 좋을 컨셉입니다.
정말 구체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글이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모든 오류 대처방법 알려드림’ 과 같은 글이죠. 정말 딱 프로그램 오류가 났을 때 찾아보게 되는 글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글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대신 검색어가 매우 한정적이고, 트래픽이 많이 나오진 않으니 실질적인 유입을 만드는 용도로 활용합시다.
반면 정말 저장해놨다가 다음에 읽어보고 싶은 인사이트 콘텐츠도 있습니다. 주로 굉장히 길고, 분석자료가 다양하며 상세한 의견이 가득한 글입니다. 쓰는 데에도 엄청난 공수가 들죠. 이는 브랜드 자체의 위상을 높여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엄지를 들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트래픽보단 이미지형성과 저장, 장기적인 재방문을 목적으로 많이 작성하죠. 다만 매우 힘들고 복잡한데다, 진위여부를 파악하려면 많은 검수가 필요합니다. 보통 이런 글은 근엄해서 농담이 잘 먹히지 않거든요.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서비스 제작기, 비하인드 스토리, 조직의 실수,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스토리, 솔직한 자랑 등 겸손 뿐 아니라 순수한 자랑, 후회, 반성 등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콘텐츠입니다. 그게 비록 광고라고 해도 너그러이 용서해줄 정도죠. 이런 글의 특징은 하기 힘들 수도 있는 어려운 얘기를 너무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는 점입니다. 담백함과 무겁지 않은 깔끔한 뒷맛에 오히려 독자들이 감정적으로 감화되는 경우죠. 술을 좋아하시는 글쓴이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방식입니다.
브랜드입장에선 다소 어려운 색깔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브랜드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공공의 선을 향한 의견이거나 아주 당위적인 주제일 경우엔 시원한 어투로 쏟아부어주는 것도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코로나 시대엔 ‘집에 있어줘’ 라는 아젠다가 되겠고, 명절 때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정도가 되겠죠. 다만 어떤 주제는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하도록 합시다.
클라이언트들이 사용하는 ‘샤하게, 쨍하게, 모던한데 빈티지한 느낌’ 같은 용어들이 있습니다. 정확한 디자인 용어는 없는데 뭔가 표현을 해야하니 등장하는 단어들이죠. 이런 용어들을 정리했던 ‘디자이너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 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발행하고 한 달만에 8,000회가 넘는 공유를 기록했었죠. 대부분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공유가 되었을 겁니다. 클라이언트들도 담당자끼리 주고 받았을 것이고요. 주요 유입은 카톡유입이었습니다. 단톡방이나 개인톡으로 공유하며 퍼졌던 글이죠. 글이 퍼지는 이유는 공유때문입니다. 글을 읽고 전달하고 싶은 한 사람이 떠올라야 합니다. 누구나 겪는 상황인데 그 상황이 꽤나 풀리지 않는 숙제여야 합니다. 완벽한 해결책을 주진 못해도 웃으며 해소할 수 있는 ‘대화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는 가치있어 집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방에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잘 눈여겨 봅시다.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글이나, 반려동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환경보호를 위해 애쓰는 브랜드 등 좀 더 감정의 동인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감동이나 애정, 슬픔 등 본능적인 부분을 목적지로 합니다. 잘 작동한다면 굉장히 반응이 크지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주로 동물, 아기, 문화유산, 사랑, 부모님, 정성, 죽음 등과 같이 이해관계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의 영역이죠. 이런 부분을 건드릴 때는 절대 광고성 멘트나 그 소재를 이용하려는 태도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콘텐츠를 썼다는 것만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자꾸 제품을 사라고 하거나, 당장 가입하라는 식으로 종용하면 굉장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글을 읽고 독자들의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흐뭇한 미소가 났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양자역학의 개념을 도입하거나, 생굴에 대한 홍보를 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등장하는 경우입니다. 저도 추석에 전 부치는 방법으로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를 쓰거나,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으로 브랜드 전략을 설명했던 글을 써보았죠. 신선함과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선택이지만 완성도에 신경쓰셔야 합니다. 예상치 못한 두 개념의 등장은 소비자를 굉장히 긴장시킵니다. 이런 색깔로 글을 쓸 때는 둘의 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결합을 만들어낼 것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고 시작해야 합니다. 두 개념이 쫀쫀하게 묶이지 못하면 오히려 매우 뜬금없는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위 10가지 컨셉 중 어떤 색깔을 보여줄 것인지 정해봅시다. 그리고 만약 '예상밖 조합' 을 노렸다면 그 색깔에 맞는 소재들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1) 블록체인과 전쟁의 역사
2) 월드워Z의 좀비들로 알아보는 블록체인의 원리
3) 블록체인이 만드는 부대찌개는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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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하위항목들을 쪼개는 것이죠. 이런 세부 콘텐츠 기획,작성은 이제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입니다. 텍스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기막힌 배경지식과 필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하지만 글쓴이가 맘껏 필력을 뽐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기획의 역할입니다. 말씀드린 10가지는 우리의 목적을 어떤 색깔을 통해 달성할 것인지를 나열한 것입니다. 색깔이 너무 왔다갔다하면 독자들은 헷갈립니다. 제 글은 근본이 없긴 하지만, 대부분이 3번에 초점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잘하는 게 그거거든요.
우리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한 번 골라보세요. 우리 블로그의 색이 점점 선명해질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