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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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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03. 2021

대기업과 일한 게 자랑인 줄 알았는데.

그건, 연예인과 사진찍은 그런 느낌이고.

<여러분께서 물어보지 않은 그저 독백입니다.>


조그마한 에이전시 입장에서 대기업 의뢰는 심장이 뚜꿍거리는 기쁨이긴 합니다. 인정받는 기분이기도 하고, 어디가서 생색내기도 좋고. 잘 모르는 친구에겐 나 어디랑 한다, 어디꺼 만들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심플한 자랑을 늘어놓을 수도 있어요. 이름을 빌리면 쉽게 대단해 보이거든요.


큰 기업과 일하는 건 몇 가지의 장점이 있습니다. 한 그룹사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다양한 하위그룹, 계열사, 인수합병 업체까지 소문이 퍼지기도 하고, 매년 반복되는 유지관리 프로젝트로 고정 클라이언트가 되기도 합니다. 매출적인 면에서도 분명 매력적이죠. (이래저래 하면 남는 게 별로 없긴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기업들의 신규브랜드나 소개서, IR자료, 홈페이지 텍스트를 만들어요. 그러다보니 기업 내부의 이런저런 사정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더라구요. 공부가 많이 됩니다. 더군다나 큰 무대에서 일하시는 프로들을 만날 때면 정말정말 많이 배워요. 분명 스트레스와 부담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토록 원하던 큰 기업들과도 일을 해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어요. 일을 끝마치고 1년을 정리하며 남은 것들을 곰곰히 회고하다보니...


누구랑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쭉쭉 성장해나가려면 대기업로고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겠더라구요.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나 정우성 만난 적 있어!' '나 대통령이랑 사진 찍었어!' '나 영화배우랑 인친이야!' 이런 멘트같아요. 유명한 사람과 명함 주고받고 일 한 번 했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배우자님이 맨날 이런 충고를 했는데 사실 대기업과 일 해보기 전까진 잘 몰랐어요. '그래도 에이전시의 빠워는 네임밸류 아니겠어!?' 라며 큰 곳들 들어오면 으쓱했었죠...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어떤 브랜드 옆에 서는 것이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 아니구나. 저 썸네일 사진에 제 클라이언트사도 있어요. 뭔가 멋지죠? 근데 저는 망원역 여기에서 그냥 키보드나 뚜둘기고 있잖아요. 그 곳의 임시출입증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뭐가 된 것이 아니구나. 나를 증명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결과물들이구나.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넵병과 판교사투리 뭐 이런 것 이상의 색다른 시도들을 많이 해보려구요. 좀 새로운 글을 써볼거에요. 바빠죽겠지만 쪼개서 새로운 프로젝트도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강아지도 키울거에요. 색다르죠?


그렇게 색다른 걸 해서

만약 화제가 되면

그럼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오고

또 정신없이 그냥 쳐내다가

색다르지 않은 일상이 만들어지고

그러다 현타가 오면

또 색다른 걸 하며 돈을 쓰고

돈을 쓰면 신나고

그럼 그걸로 또 화제가 되고

또 연락들이 많이 오고

또 지겨운 일상이 반복되고...

그럼 또 색다른 걸 하고..

...


색다른 걸 했는데 

만약 화제가 안되면

쓴 돈이 좀 아깝긴 하지만 

아 의미있었다 하고 정신승리 하면 되고.


근데 색다른 걸 안하면?

응, 그냥 폐업행 직행열차구나.

노란우산 환급받겠구나.

이런 걸 새삼 느끼게 되는 2021년의 첫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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