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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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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27. 2021

그런 자세로 디자인을 하다간...

저는 자세가 안 된 디자이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내가 월요일날 무슨 일을 겪었는 지 알아요? 지난 인생의 과오와 내가 소홀히 여겼던 중요한 가치들을 뼈 속까지 인셉션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아마 제목때문에 디자이너 분들이 많이 들어오시겠지만, 사실 여러분이 누구든 동일하게 적용될거야. 제가 그래도 20대 때는 계단도 뛰어다니고 아시바도 치고 거리도 돌아댕기는 직종에 있었단 말이에요. 하루에 10mg 정도는 땀이 났고, 여튼 사람이 근육이란 걸 쓰고 살았어요. 근데 보자..내가 디자인을 시작한게 7년 정도 됐단 말이에요. 처음엔 디자인 공부한다고 쪼그려 있었고, 다음엔 시안 만든다고 앉아 있었잖아. 물론 저는 세상의 고독과 대자연의 손짓에 화답하는 타입이라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거칠고 험한 들판으로 배낭을 메고 나가긴 했어요. 근데 코로나 터지고 결혼하고 이건 뭐 해외는 커녕 집 앞 카페도 못가게 되다보니 어떻게 됐겠어. 사람이 점점 동그래졌을거 아녜요. 쉬프트잡고 늘린 것처럼. 그렇다고 홈트를 하겠어요? 홈트는 부처님이 와도 못해. 물론 몇 번 도전은 했지. 슬로우버피도 해보고 심으뜸영상 보면서 스쿼트도 했지. 근데 일주일 가겠어?..그렇게 예상했던 옆구리의 이슈가 발생했고, 복부에 살이 찌니까 허리는 점점 무리가 갔겠지. 그리고 망할 오브젝트 정렬 맞추려면 확대를 해야 하잖아요. 그럼 스크롤로 키우면 되지만..또 그게 속시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눈을 모니터에 가져다 . 목을 빼겠지.


어떻게 되었겠어. 그렇지 전 안그래도 일자목인데... 허리통증까지 시작되고 이건 뭐. 일어날 때마다 끙차끙차 해야하는 상황이 된거에요. 그래서 아 안되겠다. 몸을 좀 놀놀하게 만들어야 겠다 싶어서 스포츠 마사지를 예약했어요. 그리고 갔지.


평화로운 분위기와 은은한 인센스향기. 그래 마음과 몸이 정화되고 모든 것이 릴렉스되었어.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구멍 뚫린 침대에 누웠지. 사실 의아한 부분이 있긴했어. 왜들 그리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셨을까. 그 때 알았어야 했어. 그 분들의 대흉근과 등근육이 왜이렇게 발달해야 했는지. 그 구멍에 얼굴을 가져다 대는 순간 인생의 모든 시간들이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현생의 나는 죽고, 자세가 안좋았던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지옥에 들어건거야.


처음에 날개뼈를 조지드라고. 난 날개뼈가 내 몸에서 그렇게까지 분리 될 수 있는 지 처음 알았어. 원래 이렇게 잡아뜯어도 사람이 찢어지지 않는구나. 신기한 생각이 들 때쯤 그 분의 손이 나의 회전근개 어느 부분으로 다가왔지. 그리고 '그 부분' (뭐라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 을 손가락을 짚는데...아 이게 영혼을 거두는 고대의 신들. 레이스(wraith)랄지, 아즈라엘(azrael)이랄지, 이런 생명을 관장하는 신들이 영혼을 꽉 움켜쥐고 빼낸다고 했거든. 그 느낌이야. 영혼을 잡혔구나. 뒤졌구나.


어깨뼈에 대한 상상은 고추바사삭 치킨 먹을 때를 떠올려봤어.  아! 닭봉에 이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닭봉 먹을 때 손으로 잡는 그 손잡이 같은 부분이 인간에게도 있을 거 아냐. 동그란 어깨가 돌아가는 곳. 그곳을 팔꿈치로 조지는데 순간 강렬한 쌍욕이 나올 뻔했지만 목이 눌려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신음소리를 참는 것이었지. 왜 참았냐고?...생각해봐. 아 여기가 아프구나. 하면 그만하겠어? 치과의사들이 아프면 손들으세요 하는 건 '오냐 아픈 곳 찾았다 거길 조져주마.' 하는 거거든.


그리고 허리로 내려간다? 난 인간의 척추가 이렇게 단단한 건지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누르고 조져도 안뿌러지는구나... 경이로웠어. 그리고 뭔가 악마가 깃든 처럼 알 같은 게 잡히더라구. 그 분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진지했을거야. 그 분에게 그 알은 어떤 사명감 내지는 책임감 같은 걸 주었나봐. 단단한 두 손으로 그 알을 사정없이 깨부수기 시작하는데...이 정도라면 퇴마사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이 쯤되면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내가 왜 돈을 내고 이 지옥도에 발을 들였을까.. 난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산 걸까. 왜 인간은 가장 안 좋은 자세를 가장 편하게 느끼는 걸까. 이것도 일종의 원죄 같은건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지.


엉덩이로 내려갔어. 엉덩이는 물렁물렁하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어. 엉덩이가 아픈 기억이라곤 고등학교 쳐맞거나 스키장에서 자빠지는 정도? 뭐 그 정도였으니까. 아 근데 내 엉덩이가 액체괴물이야? 왜 이렇게 쑥 들어가? 그 분의 손가락이 엉덩이 뚫고 나비모양의 골반 어딘가의 하급악마를 움켜쥔 듯 했어. 여러분은 알런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사타구니 쪽에 장요근이란 놈이 있어. 런지자세하면 땡기는 그 안쪽 근육. 하루 종일 앉아있으면 얘가 수축되거든. 그게 계속 몸을 구부정하게 만들어. 그러니 늘려줘야 할 거 아녜요? 자, 거길 눌러주셨어.



아 진짜. 반성하게 되더라.




내가 왜 이렇게 살았는지. 난 왜 기본을 지키지 않았는지. 왜 태어날 때의 초심을 잃고 장요근을 수축시켰는지. 나도 애기땐 발이 목 뒤로 넘어가고 그랬을텐데.... 여러분 그거 알지. 너무 아프면 소리도 안나오는 거. 신음이 입안에서 빙빙 맴돌다가 후두부 어딘가로 뒷 문열고 도망쳐 버리는 느낌이야. 입으로 나가다가 들키면 뒤질 것 같아서.


이어서 허벅지는 거의 수타면이나 와플반죽이 되었고, 종아리......... 하아..



종아리를 맥주병같은 걸로 원래 푼대매. 태어나서 종아리를 그렇게 풀어본 적이 없거든. 나의 종아리는 하나의 큰 악어알 같은게 된 거야. 그간의 피로가 쌓인 퇴적암 같기도하고. 그걸 누르는 순간 아프다의 개념이 아니라 영혼의 어딘가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어. 아니면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역단층?.. 습곡?..  그런 느낌.


무언가가 부서진 듯 했다.


그리고 다시 목으로 올라오더라. 이제 거의 다 왔어. 15분 정도 남았거든. 후후... 끝날 무렵이니 이 분도 힘이 빠지셨겠지. 그리고 원래 목은 주무르면 세상 시원하니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아앙아아아아악!!!!!!!!!!


내 목뼈가 하나하나 순살이 되는 느낌이었다.


춘천 갔을 때 닭갈비집에서 닭목살만 따로 팔던데 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구나. 뼈와 살이 분리되며 내 목을 지나는 어떤 신경다발이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고통에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우왕좌앙하고 있었어. 목과 머리의 그 부분은 원래 누르면 시원한거 아니냐구? 아냐.. 시원한 건 그냥 고양이 꾹꾹이 같은 거고... 여러분의 지난 업보를 용서받으려면 '나는 레고다. 이제 내 목은 뽑힌다.' 라고 각오해야 하는 것이야.


모든 것이 끝나고 60분의 지옥체험과는 다르게 조금은 가뿐해진 몸을 느끼게 되었지. 사실 가뿐해진 건지 무서워서 정신승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어. 여러분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살고싶다면 지금 그 몸뚱아리 그대로 스포츠 마사지를 받으러 가보도록 해. 갑자기 의자를 쇼핑하게 되고, 빡빡이 아저씨의 스트레칭 영상을 찾아보게 될 지 몰라요.


목 집어넣고 골반 중립지키고, 어깨 수시로 풀어주면서 버티컬 마우스 쓰시고. 바른 자세로 일하세요. 고개 숙이지 말고. 내밀지도 말고. 수건으로 목도 땡겨주고...

더불어 디자이너 채용에 있어서 월1회 마사지샵 제공혜택은 참 좋은 직원복지같다란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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