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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Dec 24. 2020

[올해의 결산 겸]우리는 늘 뻔한 반전을 만들어왔다.

2020년, 애프터모멘트는 한 해 동안 어떻게 일을 했을까.

늘 연말이 되면 올해 무슨 일을 했는 지, 얼마를 벌었는 지 등을 상세히 알려드리곤 했습니다. 2018년엔

이것을 썼었구요.

https://brunch.co.kr/@roysday/279


2019년에는 스페인 가기 전에 이런 글을 썼었죠.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우려도 있었습니다. 배우자님 조차도 '그렇게 쓰면 너무 돈자랑 하는 것 같으니까 숫자 같은 거 쓰지마.' 라고 말했었습니다. 솔직히는 반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20대 나름 힘든 시기를 거치고 드디어 사업다운 사업을 한다는 느낌에 여기저기 알리고 싶었어요. 드디어 나도 뭔가 안정적인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구나! 나도 결혼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구나!! 


https://brunch.co.kr/@roysday/454

저에겐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던 결혼을 2020년 2월에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이후엔 꽤나 안정적인 삶이 시작되었고.. 사업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뭔가 엄청난 사건이 있진 않았답니다. 2020년은 그냥 조용히 넘어갈까 하다가... 이번 년도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해서 키보드 앞에 손을 얹어보았습니다.




01. 사업적인 측면에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올해의 매출은 작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1.5배 정도 성장했죠. 클라이언트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작년까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많았다면... 올해 후반기엔 큰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저는 금액을 정찰제로 고정해버린 터라 큰 기업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진 못합니다. 사실...그래서 대기업을 하면 할수록 손해긴 하지요. 다만 레퍼런스가 쌓이는 터라 스튜디오 입장에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더라구요. 좋은 제안이라면 몇 군데 더 해보려고 합니다. 


브랜딩이란 단어는 좀 내려놓았습니다. 작년까진 브랜딩을 한다! 라고 말했었는데..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브랜딩인가... 1인기업이 혼자 쳐낼 수 있는 것인가? 현타가 많이 왔습니다. 쓰레기통 스티커부터 사원증까지 사실 회사 내의 모든 디자인을 혼자 할 순 없었거든요. 그래서 올해 초에 과감히 다 버리고 '회사소개서' 만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를 해요.


반응은 매우 좋았어요. 정말 소개서 의뢰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브랜딩의뢰도 마찬가지로 들어오더라구요. 가격을 공개해놓으니 견적문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문의가 바로 프로젝트 킥오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수는 적어졌지만요. 저는 여러가지로 이 선택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유독...'글써달라' 는 의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 텍스트, 상세페이지, 텍스트 가이드, 슬로건 등등...다양한 의뢰가 있었죠. 올초에는 정말 감을 못잡았어요. 클라이언트님들도 당황할 만큼 엉망진창이었죠. 7월이 넘어서야 프로세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결과물을 정립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은, 좀 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2021년에는 본격적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갈 글' 을 상품으로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2021년에는 드디어..사무실을 하나 만들고 직원을 뽑을 생각이랍니다. 올해는 프리랜서 3분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 전까진 모두 제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제 디렉션 실력에 대한 의심도 있었고...전 무엇보다 리더쉽이 똥망이거든요. 하지만...막상 프리랜서 디자이너님들과 함께 해보니...그들은 너무도 훌륭했고, 제가 원했던 퀄리티를 바로바로 내주곤 했습니다. 매우매우 감사할 따름이죠. 정말 현명하고 똑똑한 분들과 함께 해서 많은 일들을 쳐낼 수 있었어요. 루경님, 서원님, 혜인님 모두 감사합니다!




02. 책은


올해는 3권의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바로 이 친구들이죠.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는 3쇄를 찍었고, '어느 날 대표님이...' 는 4쇄를 찍었답니다. 지금도 조금씩 계속 나가고 있더라구요. 객관적으로 보면 저조한 성적에 호들갑을 떠는 거고... 개인적으론 중쇄까지 갔단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사실 올 해 가장 뿌듯하고 잘 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제 브랜딩을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단어를 감당하기엔 제가 너무도 부족하단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브랜딩 관련해선 '어느 날 대표님이...' 가 마지막 결과물이 될 것 같단 생각이에요. 



2021년 2월쯤에 다산북스에서 책이 하나 더 출간된답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에요. 글에 대해서 올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하게 되었거든요. 쓰기 매우 힘들기도 했고... 또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계약의 힘은 어떻게든 손을 움직이게 만들더라구요. 계약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년엔 저것과 한 권 더 준비를 해보려고 해요. 




03. 반성의 시간


이 말을 안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동안 제가 글을 안썼었죠. 올해 10월 쯤,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분들을 비난하는 어조로 글을 썼거든요. 전후 사정이야 있었지만... 그게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이후론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SNS도 모두 멈췄고, 글도 쓰지 않았고... 강의나 멘토링도 멈췄습니다.


저는 글의 힘을 좀 얕보고 있었어요. 잘 쓴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써도 사람들이 좋아해줄 거라고 자만했습니다. 이런 자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기 마련이죠. 저에게도 마찬가지구요. 글을 열심히 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었어요. 전 사람들이 알아봐주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이게 살아가는 에너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식적인 겸손을 떠는 것도 꽤나 으쓱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아직 그런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깜냥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할 때였던 것 같아요. 이름보단 내력을 쌓았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젠 그냥 가벼운 글들, 스쳐가는 생각들,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아무 감정없이 적으려고 해요. 감정은 매우 큰 에너지였습니다. 글에 감정을 녹인다는 건 높은 스킬과 내공을 필요로 하더라구요. 아직은 휘둘리고 있습니다. 감정에 휘둘린 글은 어딘가가 날카롭죠. 누군갈 다치게 하고요.



04. 뻔한 반전


코로나와 함께한 1년이었습니다. 6월까진 정말 2019년의 1/3토막이었어요.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이 후에 좀 살아나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요.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한 해인만큼 다양한 장면들과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너무도 뻔한 클리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보통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보면 한 주인공이 안좋은 상황에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뭔가 일이 잘 풀리는 시기가 있잖아요. 보통 그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돌리기 까지가 오래걸립니다. 그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죠. 주인공은 대부분 까칠하고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아요. 그러다 무언갈 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턴 갑자기 속도가 빨라져서 장면들이 챡챡챡챡 지나갑니다. 몇 가지 장면들로 시간이 훌쩍 흘렀다는 걸 보여주죠. 그렇게 모두가 행복할 것 같은 장면까지 순식간에 다다라요.


저에게 2019년까지가 딱 그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빠르게 장면이 흘러갔고, 이대로 모든 게 행복해 질 것 같았고 관객들은 수직상승하는 행복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죠. 


이윽고.


갑자기 장면이 어두워지며 절망이 찾아옵니다. 주인공의 행복은 뭔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누군가가 상처받거나 일을 꼬이게 만든다는 걸 깨닫죠. 주인공의 말은 사라지고, 슬픈 음악이 깔리고. 주위의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아, 물론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저 혼자 잠시 잠수를 타고 있을 뿐이죠.) 


2020년엔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며.. 개인적으론 많은 것들의 부족함을 느꼈고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시기였어요.


이 후의 장면은 주인공이 한층 성숙해지고, 진실과 마주한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아직 그 장면이 찾아오진 않았지만... 2021년엔 훨씬 진실된 제 모습을 마주하고 싶어요. 사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게 영화였다면 누가 보겠냐 싶을 정도로 뻔하디 뻔한 스토리겠지만...놀랍게도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이 뻔한 반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리아드부터 퀸스갬빗까지. 주인공의 시련과 각성의 시퀀스는 언제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죠. 우리 삶과 가장 닮아있으니까요. 


드라마는 거기서 마지막화를 맞이하기에 해피엔딩이라고 합니다. 삶은 계속되기에 다시 행복이 또다른 시련을 부르죠. 네버엔딩입니다. 행복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게 우리 삶입니다.  때문에 인지하기 힘들었을 뿐 사실은 우리의 모든 순간이 감동적인 명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한 번의 드라마를 맞이하는 이맘때입니다. 저 또한 올해의 실수들과 코로나, 발전을 위한 과감한 투자 등을 이겨내고 뻔한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2021년엔 조금 더 성숙한 행동들로 삶의 시퀀스를 채워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내년엔 2배 성장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사무실과 정식으로 채용한 직원분과 아웅다웅 고민많은 한 해를 보낼 것 같습니다. 전 두렵고 무서워요. 사업을 한다고 말하기도 무색할 정도의 고민이지만... 이 또한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요. 많은 클라이언트와 더욱 깊이 있는 일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애프터모멘트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디자인스튜디오 입니다. 이제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소개할 지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우리가 소개한 곳들이 알려질 수 있도록.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드는 곳들의 가치가 빛나도록... 애프터모멘트의 힘을 그쪽으로 조금 돌려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엔 르포형식의 레포트도 함께 제작할 거에요. 알려져야 할 곳들이 응당 알려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선한 공명심으로 움직일까 합니다. 당연히 또 어떤 결말 이후 다른 시련이 오겠지만... 기꺼이 맞이해야죠.


글도 사업도 마음도 더욱 커지는 내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드라마도 너무도 익숙한 그런 뻔한 반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겨내고 각성하고 성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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