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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r 16. 2021

회사소개서로 브랜딩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곤 하는데.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일단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해요.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회사소개서란 무엇인가. 사실 제가 생각하는 브랜딩이란 '기준' 이에요. 일을 하면서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이걸 올릴 지 저걸 올릴 지, 이 프로모션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사소한 업무부터, 투자사 선택, 사무실 이전, 급여선택, 직무구분 등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요. 

뭘 올려야 하지.. 누굴 선택해야 하지.. 과자는 뭘 사야 하지..

그 순간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할 지 결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냥 이래야 될 것 같아서, 또는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라는 기준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이 기준이란 건 원래 되게 모호해요. 작은 회사에선 대표님의 직관에 의해 움직일거고, 큰 회사라면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기준을 명확히 공표하고 모두가 인정한 문화가 되는 것을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뭐 어쨋든 이건 제 생각이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브랜딩은 또 다를 수 있겠죠?


브랜딩이란 게 되게 김치찌개 같은 거에요. 모두가 뭔진 대략 알고 있는데 서로가 생각하는 정의도 다르고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 지 알 수 없는 묘한 개념... 그런 거죠. 하지만 큰 의미에서 회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볼게요.


자, 브랜딩은 회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회사소개서는 무엇일까요. 


이제 여기서 정의가 좀 갈리는데, 저는 소개서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결국 소개서를 쓰는 이유가, 뭐 '우리 이런 이쁜 거 있어요!!' 라고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목표가 있단 말이죠. 굉장히 분명한 목표가. 제휴를 하던가, 판매를 하던가, 투자를 받던가, 섭외를 하던가... 이루고 싶은 것이 분명한 목적지향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혹자는 이것 자체가 회사의 메타포다.. 또는 회사를 대표하는 중심이다..이렇게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직접 만드는 입장에선 그렇게 까진 엄청난 의미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게 자칫 제가 하는 일을 과소평가한단 느낌이 있지만. 이렇게 말해볼께요. 


쓰읍..그것까진 아닌데..?


회사소개서를 사용할 일이 사실 많진 않아요. 사업을 하면서 몇 번 정도의 소개자리가 있겠죠. 데모데이나, 투자받을 때, 또는 제휴제안, 입찰제안 등... 횟수 자체는 많진 않지만 중요도는 굉장해요. 돈이 걸려있거든요. 그것도 꽤나 큰 돈이 오고가는 과정에 소개서가 존재해요. 아마 이런 이유로 소개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해야 전달이 잘 될 거고, 전달이 잘되면 설득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소개서는 그저 브랜드의 내용을 

가시화시킨 하나의 자료에 불과하단 의견입니다.


사실 명확한 정체성은 명함이나 찌라시, SNS콘텐츠, 워드로 만든 사업계획서 등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이 많거든요. 오히려 앱이나 제품같이 명확한 프로덕트를 보여주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그런데 정말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이런 말을 하세요.


"소개서 만들어주시면 그걸로 브랜딩을 해보려고 해요."

"브랜드를 정립하려고 연락드렸어요."

"브랜드의 컬러나 문서의 템플릿으로도 함께 쓰려고 해요."


물론 이해는 갑니다. 소개서라는 게 회사에서 쓰이는 도큐멘트의 기본이긴 하죠.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많이 응용하고 싶은 건 당연할 거에요. 디자이너님에게 요청하는 김에 컬러도 정하고 폰트도 정하고 디자인 컨셉도 뽑고싶고...사실상 적지 않은 돈을 들였으니 뽕을 뽑고 싶은 마음은 십분 공감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둥글둥글하게 얘기하는 편입니다. 소개서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아무래도 남이 만들어 준 거다보니 추후에 많이 바뀌실 수 있다.." 이 정도로 갈음하죠. 


물론 저는 최고의 소개서는 다른 사람이 써준 소개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원래 중이 제 머리 못깎는 법칙에 따라 본인 브랜드를 본인이 소개하는 순간 사족이 엄청 붙게 되거든요. 게다가 생산자의 단어들이 가득하니 오죽하겠어요. 어렵고 복잡하고 길어지고... 할 말이 많을 수 밖에요. 그래서 남이 써준 소개서가 깔끔하긴 한데 문제는 당신의 소울이 담겨있진 않아요. 많이 노력해서 기획하고 디자인하긴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게 아니다보니 어차피 나중에 수정과 입맛대로 변경이 동반되는 것이 소개서입니다. 그래서 저도 디자인 원본과 소스까지 모두 드리는 거구요.


결국은 바뀌는 소개서.


얘기가 자칫 길어질 것 같아서 결론만 얘기하자면, 소개서 자체로 브랜딩을 하겠단 얘기는 좀 모순이 있어요. 스팸 김치찌개를 끓이는 데 소개서는 스팸같은 거거든요. 물론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김치찌개는 김치가 메인이에요. 소개서는 콘텐츠일 뿐이죠. 또는 디자인물..도큐멘트 뭐가 되었든 수단에 불과합니다.


브랜드가 있고 소개서가 있는 거지 어떻게 소개서가 있고 브랜드가 있겠어요. 20페이지 남짓되는 PDF만 보고 고객이 '우와..이 브랜드는 이런거구나!' 라고 감동받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소개서는 그런 용도가 아닙니다. 서로가 가진 이해관계를 확인하는 검토자료에 가깝달까요. 물론 디자인컨셉과 같은 부분이 메시지에 힘을 더하긴 하지만.. 디자인이 멋지다고 해서 이 회사랑 계약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소개서 자체는 그저 브랜드디자인의 일부이고...

브랜드에서 만들어진 매터리얼 중 하나다...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오히려 '돈을 버는 도구' 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소개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열반에 드시는 분들이 있어요. 소개서란게 잘 생각해보세요. 회사에서 하는 일이 한 두개에요? 엄청나게 많아요. 오늘 여러분이 하신 일만 어림잡아도 10페이지는 넘는 분량일거에요. 근데 회사 전체가 하는 일을 20페이지로 요약한다?? 이러니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이 필요하겠어요. 쳐낼 걸 쳐내고 고를 걸 고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거든요. 머리가 아프고 위장도 아프고 그렇습니다.



이런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뭔갈 깨닫는 분들이 계세요! 

아, 이러면 안되겠구나. 우리 회사는 이런 초심을 지니고 있었구나! 아 이 방향으로 가야겠구나!! 

라고 본이 아니게 어떤 유레카가 생기는 거죠. 이건 소개서 때문이라기보단 당신 자체의 역량과 과정에서 생기는 부수적인 서프라이즈일 뿐이에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소개서란 게 엄청 놀라운 스토리를 지니고 있거나 그러진 않아요. 열 몇개의 플롯 안에서 움직이거든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포맷안에 비즈니스를 녹이려다보니 빈 부분과 잘하는 부분들이 드러나는 거고 그러면서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실천까지 가야 유효하겠지만, 소개서를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뭔가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 거죠. 아마 이건 타이밍과 대표님의 평소 고민, 잘 전달된 몇 개의 인사이트가 만들어낸 증폭효과 같은 게 아닐까요.




전 소개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브랜드의 언어를 소비자의 그것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제 일은 브랜딩 중에서도 아주 외곽에 위치해있어요. 고객접점의 시작이자 내부에서 나가는 문서의 마지막 단계죠. 큰 돈을 주고받기 위해 발송되는 문서인만큼 매출적인 측면에서 소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만...


이걸로 브랜딩이 된다는 건 너무 갔다라는 생각이에요.


오히려 


원래 소개서는 그냥 우리를 정리해 놓은 문서일 뿐인데(돈도 벌어다주는 도구이기도 하고)그걸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건 당신의 능력이고 인사이트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르긴 몰라도 이런 분들이었다면, 길가는 돌멩이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으셨을 거에요. 저는 정확히 특정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소개서를 제작합니다.(보통 그 결과란 게 매출증대와 가깝죠) 


전 브랜드라는 게 몇 페이지의 종이 안에 담길 정도로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브랜딩은 소개서를 의뢰하고 제작하고 다루는 그 태도 자체가 아닐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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