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echnical writing 뿐 아니라 UI string, 마케팅 메시지, 온보딩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브랜드 텍스트에서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리디북스와 강남언니는 브랜드 텍스트가이드를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토스와 현대카드, 와이어링크 등 스타트업과 대기업 채용공고에선 UX writer 직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죠.
신한카드의 UX writing GUIDE 와 국민은행 'KB 고객언어가이드', SK의 '고객언어연구소' 등 대기업들도 커뮤니케이션 언어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증오발언 대응정책 녹서를 공개하고 대응원칙을 수립함으로써 언어로 생기는 사회적갈등이나 브랜드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의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좀 더 편하게, 좀 더 간결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여기엔 고객의 경험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외적명분이 있습니다. 매출증진, 브랜드이미지 고취, 마케팅관점의 FOMO(Fear Of Missing Out : 나만 뒤쳐질 수 없어!)현상 등의 내적동기도 있겠죠.
기업들의 시선이 '글'로 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야..야야야 왜 따라와!
<이미지 만능주의의 몰락>
과거엔 기업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채널이 외부에 있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각종 블로깅과 SNS의 그룹, 페이지, 채널을 열고 콘텐츠 경쟁에 목을 매던 시기가 있었죠. 자사 홈페이지를 아무리 예쁘게 꾸며놔도 수백만원씩 들여가며 파워링크를 걸지 않는 이상 이를 검색해서 들어와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을 겁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했고 기업 입장에서 SNS는 손만 넣으면 한 마리씩 잡히는 숭어잡이 체험장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때문에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인스타, 페북, 유튜브, 네이버블로그, 밴드마케팅 등 특정 소셜미디어 공략집들이 서점에 가득 등장했습니다.(지금은 투잡개념인 SNS로 돈벌기 위주의 도서가 많더라구요. 18~20년까지의 출간된 도서기준입니다.) 이 후 퍼포먼스 마케팅과 그로쓰해킹 붐이 일기도 했고, 같은 시기 '지적자본론(2015)'과 '나음보다 다름(2015)'을 시작으로 수많은 브랜딩 서적들이 물밀듯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케팅 수단에 집중하던 기업은 다시 아이덴티티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소비자 관점이라는 단어에 (새삼) 주목하게 되었죠.
아! 소비자 관점이었...
아시다시피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미지 또는 글'밖에 없습니다. 상품을 직접 사서 경험하기 전까지 소비자와 브랜드의 관계는 결국 보고 읽는 행위로 점철되죠.
기업이 먼저 주목한 것은 '보는 행위' 였습니다. 브랜딩이 화두였을 때 사람들은 디자인을 먼저 떠올렸을 것입니다. 지적자본론이 교리처럼 여겨지던 시기, 브랜드디자인 실무서들도 함께 출간되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강박증마냥 회사 디자인을 모조리 통일시킨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 지라도 디자인적 통일성이 매출과 긍정적 브랜드이미지 형성에 기여하는가? 란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을 겁니다. 온드미디어(Owned media) 채널의 운영은 공수가 너무 많이 드는데다 꽤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했고 그나마도 콘텐츠의 복불복이 심했습니다. 페이드미디어(Paid media) 운영은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투입되는 자금이 몹시 부담스러웠죠. 브랜딩을 한다고 디자인을 통일하는 것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텍스트 남았다.>
이 무렵 도널드 노먼교수가 93년도 애플 부사장 재직시절 자기 명함에 적어놓은 직함에서 유래했다는 UX Design 이 쓰나미처럼 웹앱서비스를 강타합니다. 그리고 '소비자관점'을 넘어 '소비자경험' 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머지 않아 UX, BX, CX, IX 등...다양한 X들이 만들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직관적이고 유연한 사용성을 만들어낼 지 고민하던 그들은 문득 와이어프레임의 빈 부분에 집중하게 됩니다. 바로 '글' 이었죠.
물론 '글'에 대한 관심이 최근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UX writing 이란 단어가 나오기 한참 전에도 UI디자이너들은 개발자와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정리해왔습니다. 텍스트 가이드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죠. UX writing 이란 단어가 정확하게 퍼진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시작이 이미 2000년대 초반이었고 몇몇 유명한 디자이너의 블로그에서 현재의 UX writing과 비슷한 솔루션으로 커머스 실적을 개선한 사례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UX writing 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2018년대 부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론 개발자와 AI전문가, 디자이너가 판치는 세상에서 문과생들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무브먼트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후 2018년 킨너렛 이프라의 '마이크로 카피' 란 책이 출간되자 아는 사람만 아는 단어였던 UX writing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몇몇 브랜드들이 웅성웅성댔죠.
이거 알아? 요즘 이런게 중요하대! 이게 뭔데? 글 바꾸는거야. 글? 소비자들이 알기쉽게.. 오 진짜? UX writing? 이름도 멋진데? 다른 데도 다 이거 하고 있대. 그럼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특히 웹/앱서비스를 메인으로 하는 스타트업에선 CTA(call to action)이 중요한 만큼 UX writing 이란 단어를 더 먼저, 빨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입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접하는 방식이 보거나 읽는 것뿐이라면 UX Design은 보고 행동하는 것을 설계하는 영역이고, UX writing은 읽고 행동하는 것을 설계하는 영역이었으니까요. 보는 것에 대한 가이드는 어느정도 잡혔으니 이젠 읽는 것으로 넘어가겠죠. 자연스럽게 '그래 이젠 글에 집중해야 할 때인가보다.' 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됩니다.
ㄴ아아아아아아!!
<UX Writing 뿐 아니라, 브랜드텍스트 전체로>
기업들의 생각이 이러할 무렵 시장에서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최근 2,3년간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념적 정의나 올바른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고 혐오표현과 대항표현(Counter-speech)이 만들어내는 Speaking Back(되받아치기)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통념은 의심받기 시작했고, 패러다임은 잘게 쪼개졌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윌리엄 라보브는 공동체의 구성은 '어떤 단어를 쓰느냐' 가 아닌 '어떤 언어규범(nomaility)' 을 지니고 있느냐의 따라 정의된다고 했습니다. 라보브가 말했던 언어규범이란 소위 말하는 '탈룰라'와 같이 암묵적으로(또는 종종 법적으로) 약속된 언어의 사회적 합의와 합의를 통해 부여된 언어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엄마를 건드리면 아주 되는거야. 같은 것들이죠.) 지금은 이 '규범'이 매우 세분화됐죠. 같은 언어와 문법체계를 지니고 있더라도 같은 단어에 다른 정의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돼지고기'는 맛있는 것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비윤리적인 대상' 으로 여겨집니다. 개념의 정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기 쉬워진 요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채로운 언어적 투쟁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투쟁엔 상징(Flag)가 필요하죠. 공동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메타포로 '언어'를 택했습니다. 언어가 '깃발' 이 된 것이죠. 이를테면 '안티-플라스틱', '플라스틱 프리' 와 같은 표현이 환경보호를 대표하는(정확히는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신념을 대표하는) 메타포로 자리잡았습니다. 역으로 그런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인식도 생기게 됐죠. 언어가 곧 개인의 이념적 소속을 증명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브랜드 입장에서도 언어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UX writing은 본래 합리적이고 사용자 중심적인 UI string의 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지심리학적인 접근과 합리성에 기반한 텍스트디자인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전환률을 높이거나 원하는 경로로 소비자를 안내할 수 있을 지를 고민했죠. 정량적 특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여기에 약자에 대한 배려, 혐오에 대한 저항, 젠더감수성, 환경감수성, 기업의 공적책임, 국민정서(동북공정, 반일감정, 특정 정책에 대한 분노, 코로나로 인한 피로) 등 복합적인 요소가 섞이기 시작하면서 정성적인 부분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에 내재된 이미지와 감정, 메타포 등 함축적 특성을 간과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급기야 기업은 서비스나 제품설명서, 마케팅메시지, 홈페이지, 안내문구, 채용공고 등 원래 가지고 있는 브랜드 자산에 대한 재점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브랜드 내외부로 퍼지는 모든 텍스트콘텐츠의 보이스톤과 사용성 개선에 앞장서는 플래그쉽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브랜드 텍스트 개편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
다만 유행처럼 퍼진 텍스트개편의 바람은 다양한 물음표를 가져왔습니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텍스트를 고민한다거나, 바꿔선 안될 단어들을 잘못된 뜻으로 풀이해버린다거나, 또는 문법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가, 타겟의 언어에 맞춰야 하는가 브랜드의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가...하는 등의 실무적 고민이 동반되었죠. 그러나 명확한 가이드가 없는데다(애당초 그런 것이 존재할 수도 없고), 딱히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도 전무한 상황에서(혹은 모두가 자신이 전문가라고 우기는) 실무자가 할 수 있는 텍스트브랜딩 작업이란 꽤나 제한적입니다.
단순히 x+y 를 A로 바꾸는 것은 치환입니다.
x+y를 □+☆ 로 바꾸는 건 그저 단어의 교체입니다.
x+y를 '엑스플러스와이' 로 바꾸는 것은 다른 언어의 사용입니다.
'엑스플러스와이'를 '엑스더하기와이' 로 바꾸는 건 번역이죠.
x+y를 '두 미지수의 합' 이라고 하는 건 풀이입니다.
x+y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두 개의 숫자를 더하는 것' 이라고 하는 건 한자를 한글로 바꾼 것입니다.
x+y를 x와 y 가운데 더하기 기호가 있는 것라고 표현한다면 묘사에 가까울 것입니다.
언어를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서비스나 제품에 삽입된 영단어를 쉽게 풀고, 어려운 한자어를 사전적 정의로 풀어내는 것이죠. 종종 구어체를 쓸 때도 있고, 단순히 번역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물리적인 변환은 종종 의미의 왜곡과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또는 쓸데없이 문자가 늘어나서 오히려 가독성을 해치기도 하죠. 실무자는 고객들에게도 깨지고 대표에게도 깨질 겁니다. 이게 뭐냐. 제대로 못하냐. 하지만 실무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문예창작학과 또는 국문학과 할아버지를 데려와도 기업 브랜드텍스트를 워싱하는 건 멘붕 그 자체일 겁니다. 물론 제 회사는 브랜드텍스트를 고치는 회사입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이걸 존나 잘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저희도 머리가 매우 아프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언어란 것은 그렇습니다.
브랜드 텍스트를 고칠 때는 3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어려워도 지켜야 할 3가지>
1. 단어의 변환에서 중요한 건 '책임과 결맞춤'
'투자' 라는 단어를 '돈벌기' 라고 바꾸면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왜 안될까요. '투자'엔 명백히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투자'가 지닌 언어적 의미는 단순히 돈을 벌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투자는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미래의 이익을 위해 시간이나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투자에서 돈을 버는 것은 '결과'이지 '행위'가 아닙니다. 행위는 명백히 '돈이나 시간을 쓰는 것' 이죠. 투자를 한다는 것은 현재 내 자산의 일부가 불확실한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것이고, 당장 그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린 소비자에게 투자를 야바위처럼 보이게 해선 안됩니다. 브랜드는 자신이 쓰는 언어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죠 '저가여행' 카테고리에 '배낭여행' 을 넣어놓으면 될까요? 안될까요? 2010년대 무렵 한비야가 새까매져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걸어서, 오토바이타고 유럽을 횡단하고 아시아를 횡단하고 세계를 일주하는 게 핵간지였던 시기였죠. 그 땐 돈없이 배낭만 짊어지고 발 다 찢어져가면서 걷는 게 '꿈의 상징' 이었습니다. 이러한 메타포는 지금도 이어져서 배낭여행이란 곧 '젊음, 꿈, 열정, 도전, 내려놓음, 자유, 미지의 세계' 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여기 '저가여행'이란 의미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가여행을 다니려면 패키지가 나을 수도 있죠. 배낭여행은 합리적인 여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배낭여행을 가는 게 '돈이 없어서' 가는 거라는 인식은 '꿈과 열정'이란 상위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느낌이 들죠. 만약 이런 것을 누가 문제삼기라도 한다면 배낭여행족들에게 꽤나 혼이 날 지도 모릅니다. 제목처럼 쉬운 단어를 쓴다고 썼는데...오히려 고객들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죠. 명백하게 배낭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돈이 있어도 배낭을 멜 겁니다. 배낭과 캐리어는 선호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이처럼 단어의 하이어라키를 잡거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꿀 때는 그 단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 뿐 아니라 대중들이 생각하는 (또는 타겟으로 하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의 손상이 없는 지 '결맞춤' 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2.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 지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뜻을 지니고 있어도 표현법은 모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규정한 한 가지 단어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출시' 에서 출시라는 단어는 '출시.런칭.오픈.두둥등장.선보이다.' 등 다양하게 바뀔 수 있죠. 글엔 목적성이 있습니다. 이 글이 누구에게 읽히고 어떤 행동을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죠. '콘텐츠,제안서,UI스트링,보도자료' 등 브랜드에서 걸어나가는 콘텐츠는 각각 다른 길을 걷습니다. 우아한 형제들에선 배민라이더, 소상공인, 고객에게 전달되는 언어를 모두 다르게 규정했습니다. 듣는 사람과 상황이 다르면 언어도 당연히 달라져야 하죠. 때문에 '출시' 라는 단어 하나도 각각 달라질 수 있습니다. IR피칭에선 '런칭' 이라고 하고, SNS콘텐츠에선 '오픈' 이라고 할 수 있죠. 홈페이지 상세설명 텍스트에는 '서비스 시작' 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린 이것을 잘 규정해놔야 합니다.
3. 나의 세계가 아카식 레코드가 되어선 안됩니다.
소비자를 위한 단어를 쓰고 있다면서 책상 앞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내 상식에서 단어를 꺼내고 그 정의를 적용하고 있다는 건 내가 브랜드를 대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내 욕망이 그대로 서비스에 담길 수도 있습니다. UX writer로 취업해서 넘치는 열정을 보여주고 싶다거나 수치를 개선해서 나를 증명하고 싶다거나,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싶단 욕망이 지나치면 '어그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글이 탄생하죠. 먹는 소비자들이 데이고 상처받는 글 말입니다. 우리 브랜드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들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 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의 유행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자의성을 지닙니다. 소리와 의미는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소리는 소리 나름의 의미를 별도로 가질 수 있단 얘기이기도 하지요. 무야호도 그러하고, 헐대박 같은 추임새도 그렇습니다. 우린 소비자 언어의 '억양, 속도, 높낮이, 강세' 까지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단어를 발음할 땐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 지도 알고 있어야 하죠. 제가 변태같이 스타벅스 옆자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도 고의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랄까요. 2016년 iFixit에선 Technical Writing Project를 통해 UX writing의 위키 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6,000여개의 제품, 22,000개의 사용설명서에 대한 개선작업이 이루어졌죠. 지금까지 8,500만명의 사용자가 엑세스하며 이를 활용하기도, 개선하기도 합니다. 집단지성이 만들어내는 합의의 언어가 다듬어지고 있는 것이죠.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언어의 개선작업이 단순히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반드시 의심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UX writing 에선 좀 더 너그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랜드의 정성적인 메시지에 개인의 상식과 신념이 반영되었을 땐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매우 커질 수 있습니다. 집단의 언어를 관찰하고 그 디테일을 파고드는 집념이 필요하죠.
<글은 욕망을 표현한다>
글은 고상해보이지만 명백한 표현방식 중 하나입니다. 춤, 그림, 노래 등과 같은 영역이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할 뿐 사실 글이란 건 굉장히 뜨겁고 발가벗겨진 욕망의 드로잉과 같습니다. 이 글에도 어떻게 해서든 멋져 보이고 싶은 욕망과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하는 욕망이 담겨있겠죠.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녀석들도 활자 곳곳에 숨어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욕망들은 독자들의 눈 속으로 파고들어가 독자의 욕망과 만납니다. 독자들은 이런 욕망의 침투를 무의식적으로 눈치채죠.
브랜드에서 텍스트를 손대는 건 고객 편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많은 고객이 더 쉽게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죠. 결국 매출을 늘리고 성장해야 하니까요. 브랜드의 욕망 뿐 아니라 UX writer로 입사한 사람의 욕망도 담길 것입니다. 회사 내에서 압박감이 심하다면 단어에도 많은 에너지가 담기겠죠. 글쓴이의 압박감은 단어의 뜻을 왜곡시키거나 깎아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중력장과 같습니다. 브랜드 텍스트를 쓸 때는 우선 이것부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지하고 있어야 하죠.
도가 지나치게 판매를 종용하고 있진 않은 지. 마땅히 설명해야 할 것들을 생략하진 않았는 지. 관심을 끌고 싶어서 너무 재미있는 언어에만 치중하진 않았는 지.
아마 이런 작업이 쉽게 되진 않을 것입니다. 원래 유행처럼 퍼지는 트렌드는 조립식가건물과 같아서, 기초공사가 힘듭니다. 아마 이런 브랜드텍스트 작업을 통해 브랜드의 토대가 낱낱이 드러날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옷과 악세서리로 브랜드를 꾸몄다면 이제 말과 글로 본인을 표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입을 열었을 때도 매력적인 브랜드가 될 지 소비자들이 주목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