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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16. 2021

회사소개서와 제안서는 뭐가 달라요?

일단, 소개서와 제안서, IR, 컬쳐덱 등 뭐가 어떻게 다른 지부터.


소개서가 제안서 아닌가요? 무엇이 다르죠?


대표님은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들어왔습니다. 얼굴에 살며시 내려앉은 미소로 짐작하건대 무엇인가 일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것입니다. 윗옷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켠 대표님이 조금 상기된(그러나 애써 침착하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은 소식 있어요, 좋은 소식…, 오늘 JN 그룹 담당자님과 미팅하고 왔는데 저희 서비스를 엄청 궁금해 하더라고요. 우리 쪽에서 자료를 보내 주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ASAP로 답변 주시겠다고 했어요. 우리 그 올 초에 만든 제안서 있죠? 거기에 JN 그룹 로고 넣고 수치만 업데이트해서 내일 오전까지 발송할 수 있죠?"

"네네 발송은 가능해요. 근데 이번에 소개서 리뉴얼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대답의 주인공은 기획자이자 콘텐츠 마케터이며, 어도비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 서글픈 김대리였습니다. 

"아 맞다, 근데 어차피 그건 당장 급한 건 아니었으니까 일단 있는 것에 자료 보충해서 보내 봅시다."

"네에..."

제이미는 대답을 마치고 기존에 있던 파일을 열어 보았습니다.

20211021_NAcompany_introduction.pdf(딸깍)


올 초에 꽤나 고생해서 만든 소개서입니다. 여기서 잠깐! 앞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대표님은 분명 제안서라고 했고, 제이미는 소개서라고 했으며 파일명은 인트로덕션(소개서)입니다. 음? 이게 왜 다르지? 대표님은 제이미가 ‘소개서’라고 했을 때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이미는 소개서를 보내면 될까요? 아니면 기존 소개서의 이름만 제안서 바꿔서 보내야 할까요? 이도 아니면 애초에 개념 정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소개서와 제안서는 친척인가? 사촌인가? 닮은꼴인가? 다른 건가? 

소소한 단어에 집착하면 피곤하단 소릴 듣지만, 그럼에도 우린 이 두 단어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해요. 사실상 둘은 많이 크게 다르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개념 정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소개서와 제안서는 완전히 다른 문서입니다. 심지어 제안서와 소개서 조차도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각 문서의 개념부터 파악해 보겠습니다.


회사소개서

by aftermoment

회사소개서는 그 회사의 미션, 철학, 제품/서비스 카테고리, 비전, 컨택포인트, 파트너스, 조직도 등 일반적인 내용을 담은 공식 프로필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하는 문서이며, 영어로는 Company profile 또는 Introduc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Company profile이 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회사소개서는 말 그대로 정보를 정리해놓은 아카이빙 자료입니다. 이것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일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굉장히 정적입니다. 초면에 길게 인사하는 CEO인삿말도 있고...우리 스스로 혼잣말 하는 듯한 비전과 철학도 잔뜩 적혀있습니다. 소개서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스토리는 제안서에서 중요하죠.) 잘 정돈된 회사정보와 다양한 브랜드가 맥락별로 정리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소개서는 하나 떨렁 만들어놓고 천년만년 쓰는게 아닙니다. 기준이 되는 소개서가 만들어졌다면 해가 갈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하고 디자인도 보완해서 버전업시키는 것이 좋죠. 매번 새로 만들어버리면 안된다구...



제품/서비스/브랜드/상품소개서

 주로 의뢰 이 후에 어떻게 진행되는 지 설명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전달해요. by aftermoment

한 가지 앱이나 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있지만,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팀은 세분화되고, 독립적인 사업자를 갖기도 합니다. 또한, 제품마다 구매 고객이 다르고, 영업 전략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품마다 개별 소개서가 만들어질 때가 있죠. 이 개별소개서에 기업의 철학이나 비전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좀 오바스럽죠. 여러분이 비스포크 냉장고를 샀어요. 근데 냉장고 설명서나 카달로그에 삼성의 철학과 비전, CEO말씀과 조직도까지 있으면 당황스럽겠어요 안 당황스럽겠어요?

그보다는 해당 제품을 누가 써야 하고 어떤 점이 좋은지, 가격은 어떻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나 FAQ, 사용 방법 등을 잘 정리해 놓는 게 더 중요하겠죠.

제품소개서는 말그대로 제품별 특징과 카테고리, 주요성능 등 구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정보를 리스팅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서비스소개서는 우리 웹/앱/오프라인서비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용설명서와 같은 거에요. 예를 들어 온라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개별강사, 크리에이터 또는 B2B 대상으로 인사팀에게 사용법을 설명해 줄 목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같이 해보자!' 라고 협업제안을 하는 경우엔 제안서에요. 소개서엔 말그대로 이런 게 있다...는 식으로 소개와 설명만 담습니다. 물론 소개서를 보고 오 좋다!! 싶어서 협업을 제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소개서엔 '제안의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여기선 Introduction이란 표현이 좀 더 어울립니다.



제안서

모노랩스 IAM의 B2B 맞춤영양제 제안서 by aftermoment

제안서와 소개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료를 받는 사람입니다. 소개서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만든 문서라면, 제안서는 특정한 대상과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는 문서입니다.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구면일 수도 있고, 초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구절절한 회사의 스토리와 철학보다는 우리가 수행할 일과 그 효과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용역 입찰이나 협업 제안, 입점 제안, 제휴 제안, 후원 제안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제안서의 특징은 경쟁 구도에 있습니다. 소개서는 나를 매력적으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지만, 제안서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이 많음으로 실질적인 차별성과 이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온라인 클래스 회사의 경우, 제안서를 만든다면 이런 게 들어갈 거에요. '당신 회사의 직원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 지, 이것이 어떤 식의 복지가 되는 지, 생산성이 얼마나 좋아지는 지...' 등 상대가 가져갈 수 있는 베네핏.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떤 것에 제한사항이 있는 지 등등 친절하고 상세한 협업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이 함께 들어갈거에요. 이게 좀 다른 점이죠. 

영어로는 Proposal이라고 표현합니다.



투자제안서

by aftermoment

제안서라고 표현하지만, 앞서 설명한 제안서와는 결이 아주 다릅니다. 일반적인 제안서는 지금 당장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므로 현재의 역량과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왔는지를 어필합니다. 하지만, 자제안서는 성장 가능성과 미래가치에 초점을 둡니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그러기 위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투자금을 확보한 후엔 어떻게 운용할지 등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영어로는 IR(Investor Relations)이라고 표현합니다. 제안서를 뜻하는 Proposal과는 좀 다르죠?

IR의 원래 의미는 투자자와의 전략적 신뢰를 뜻합니다. IR에서 기업 가치란 '잘 팔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죠. 부정한 방법으로도 많이 팔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은 오래도록 살아남기 힘들죠.

그러므로 기업은 투자자에게 투명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고, 이것을 위한 자료가 바로 IR입니다. 이 또한 다양하게 목적이 나뉘어지는데, IPO를 위한 IR은 정확하게 정해진 양식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일정 기준이 충족되어야 준비를 할 수 있죠. 주주총회를 위한 IR은 공개용IR입니다. 기업의 정보와 현황, 계획, 의결사항 등을 담고 주요 안건들에 대한 합의절차도 진행합니다. 스타트업의 IR은 투자유치를 위한 IR입니다. 우리의 가설을 검증하고, 각 단계별 마일스톤을 달성해서 쭉쭉 성장합니다.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킨 후 투자자에게 큰 이윤을 주겠다는 자기어필 내지는 거래와도 같은 것이죠. 



컬쳐덱/컬쳐북

띵스플로우 컬쳐북 by aftermoment

한 때 스타트업에서 유행했던 것입니다. 이는 내부구성원들을 향한 자료에요. 기존 구성원들이 만든 사내문화와 각종 제도, 업무방식, 우리의 목표 등을 정리해서 선언하죠. 대외적으론 새롭게 들어올 예비 구성원들이 우리 회사를 사전에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새롭게 들어온 신입 구성원들의 빠른 적응과 업무투입을 위한 자료가 되기도 하죠.

사내 문화라는 개념이 중요해지던 시기 + 독특한 스타트업만의 기업문화(실리콘밸리에서 들어와 한국식으로 변형된) + 인재가 갈급했던 성장기업의 니즈가 맞물려 탄생한 기업의 바이블같은 형태입니다. 기업의 총체적인 내용을 우르르 담고 있기 때문에 페이지수가 많아요. 아무리 적게잡아도 50페이지 이상은 훌쩍 넘어가더라구요. 그리고 업데이트가 자유로워야 해서 인쇄물보단 주로 PDF형식으로 만듭니다. 약간 위키백과같은 느낌으로 만드는 곳들도 있었어요.


기업의 문화를 담은 자료인만큼 그 형식과 페이지구성, 톤앤매너도 기업의 색깔이 물씬 드러납니다. 전 구성원의 참여가 있다면 훌륭한 선언문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대표 개인의 불안이나 쇼잉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만들어진 후에도 컬쳐북이 생동감있게 유지되긴 힘들죠. 


영어로는 뭐라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컬쳐북인가..?







소개서와 제안서는 종종 불안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브랜드가 나오거나 매출이 그로기상태에 묶이거나..또는 투자를 받아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때 중간정리하는 느낌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물론 불안을 잠재우는 게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소개서의 역할입니다. 대표님의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소개서를 제작할 때 그 목적과 방향성을 분명하게 잡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대표님을 진정시켜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내부구성원에게 전달할 선언문인지, 아니면 우리 브랜드를 팔기위한 대외영업용인지. 소개서나 제안서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갖춰야 할 스토리나 소스들도 모두 달라지거든요.

그럴려면 우리가 이런 사소한 단어라도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 하죠. 여러분은 지금 제안서를 만들고 있나요? 아님 소개서를 만들고 있나요? 우린 누구에게 이 말을 전하고 있을까요. 요것을 한 번쯤 정리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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