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분의 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Apr 05. 2022

아파트10층 높이에 매달려서 멘탈 나간 썰

왜 나는 벽을...오르고 있는가.

실내암장에서 1년 내내 홀드를 잡고 매달리고 했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클라이밍이란 게 살을 빼려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 살을 빼고 해야 하는 운동이거든요. 물론 격하게 훈련을 하면 빠지기는 하겠지만, 효율로 따지자면 PT를 받는 게 훨씬 좋을 것입니다.


클라이밍을 해보지 않으신 분들에겐 이런저런 용어도 생소할 것이고, 대체 왜 벽에 매달려서 낑낑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것이므로, 지난 1년의 얘긴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번 주말의 일에 대해 얘기해드리죠. 실내에서만 벽놀이를 하다가 자연암벽을 타보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우자님과 함께 자연암벽반을 신청했고 이제 그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죠.


저희는 다양한 장비들과 이런저런 것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중력가속도와 힘의 방향 이런거 기억나시나요? 킬로줄이 102kg 정도이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충격력은 1톤 정도라고 합니다. 그 이상이 되면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죽는다... 줄이 이쪽 방향으로 떨어지면 죽는다.... 안전벨트를 제대로 안매면 죽는다... 선생님과 함께 교재를 보며 이론공부를 하는데 책의 결말이 대부분 '응 너 죽어.' 더군요.(하지만 실제로 클라이밍의 사망율은 0.001%미만입니다. 5만명 중 한 명 정도?)


일단 굉장히 쫄아있는 상태에서 아침부터 눈을 부비며 무의도에 도착했습니다. 유튜브에 무의도를 쳐보시면 뭐 K-세렝게티라고 해서 약간 척박한 느낌의 해변에 백팩커들이 어마어마하게 있는 광경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텐트치고 모닥불피우며 '오늘은 비오는 소릴 들으며 캠핑을 할거에요...' 라고 ASRM하시는 유튜버 분들이 많죠.


저희가 도착했을 땐 어젯밤 촬영분을 다 찍으시고 이제 짐싸서 집에 가시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저흰 장비를 들고 돌벽에 올라섰죠.


어. 돌벽.

어. 돌벽.

어. 돌벽.....


저희가 오르는 곳은 미끄덩미끄덩한 잡을 곳도 없는 슬랩구간이라는 곳입니다. 높이는 30미터니까 아파트 9~10층 정도 되겠네요. 지금부터 10층을 어떻게 기어올라가는 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밑에서 저 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난 여기 왜 왔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환불이 되나. 저길 오른다고? 저게 가능한가? 왜 오르는 거지? 뭘 잡으란 거지?


어..그리고 무작정 오르라고 해서 무작정 오르기 시작하는데. 하아..여러분 그런 기분 아시나요. 난 죽는다. 난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 이건 예외가 없다. 난 오늘 살아돌아가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더군요. 아..맞다 우리 멤버들 월급줘야 하는데...미안해...안녕....  이런 생각도 들고. 일단 손으로 잡을 곳은 거의 없습니다. 마찰력으로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데 뭐 스파이더맨 이딴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냥 발로 벽을 꾹 누르고 버티고 있는 것이었죠.


1분도 안되서 다리가 후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아 ㅅㅂ

원래 저거 잡으면 안되는데 살려고 잡았습니다.


 

응.. 뒤지겠고 아주. 중반쯤 올라오니 '어떡해..어떡해..시발..살려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손가락과 발 힘이 다 빠지고 나니..이제 의지할 건 로프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9.5mm짜리 줄이 어디 믿을 만 한가요. 안그래도 살쪄서 지금 근 80kg에 육박하는 돼지같은 육신을 이 갸냘픈 로프놈이 견딜 수 있을까!? 도저히 몸을 맡길 수 없었던ㄷ 것이지. 할 수 없이 애꿎은 손가락이 고생합니다. 불신을 한가득 안고 남은 힘을 모두 싸서 손가락에 모아보았습니다. 이쯤되면 바위가 뚫릴것도 같았죠.


저는 제일 왼쪽입니다. 오른쪽에 선배님은 슉슈규슉슈규슉슈규슉슉슉 올라가더니, '어 거기 잡을 데 없어요. 왼쪽으로 가셔야 해요.' 라고 하는데..아아아아아!!!!!!!!! 왼쪽은 커녕 지금 눈동자도 못 굴리겠다고.

저 위에 보이는 저 턱같이 생긴 게 낮아보이지만..실제로 앞에 가보면 내 인생을 가로막은 역대 최대의 존나 거대한 시련같아 보입니다.



보세요..엄청 시련이죠? 저건 배우자님입니다.


그리고


아파트 6층높이부턴 다리가...미친듯이 떨리고 허벅지 안쪽에 쥐날 것 같더군요. 손가락은 이미 뭐.. 너덜너덜해졌고.


7층부턴 내 체력은 왜이렇게 쓰레기인가..아니야 쓰레기야 미안해.


8층부턴... 머릿속으로 내가 죽으면 통장속의 돈은 어떻게 되는거지? 아..그럴거면 어제 사놓은 크림리조또 먹을걸.. 클라이언트한테 돈 받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갑니다.


9층부턴 진짜 공포가 극에 달했습니다. 거의 다 왔거든요. 한 5발자국만 더 올라가면 되는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해요. 윗쪽은 그래도 잡을 게 조금이라도 있어서 막 손가락을 우겨넣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긁힙니다.


웃으래서 웃는 표정....


어찌어찌 꼭대기까지 오르면, 로프하나 매달고 달랑달랑 버티고 있다가 하강준비를 합니다. 여러분 겁나 높은 곳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찍으려고 하면 떨어뜨릴 것 같아서 손에 땀나는 기분 아시죠? 그 상태에서 뭘 풀고...집어넣고 잠그고, 묶고 해야하는데 손이 달달 떨리더라구요. 그래서 위에선 사진도 못 찍었어요. 애시당초 폰을 들고 올라갈 수 없었음. 저건 다 선생님이 미리 올라가서, 웃으면서 여기봐 여기봐 ㅋㅋㅋㅋ 하신거.









여튼... 저걸 8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01. 몸을 붙이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네, 몸을 붙이면 발을 벽에 붙일 수 없어요.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서있어야 하죠. 원래는 몸을 떼야, 발 앞쪽이 벽에 닿아 마찰력이 생깁니다. 근데.. 높이 20미터가 넘는 곳에서 몸을 뗀다는 게 가능하겠어요? 개 무섭잖아요. 그래서 거의 엎드려서 찰싹 매미마냥 붙어있는데... 이런 상태에선 어딜 잡아야 할 지 보이지도 않고 앞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왜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개무서움을 극복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대부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생도 그렇겠죠.




02. 손가락 끝으로 대고만 있어도 몸은 앞으로 나간다.


클라이밍이 손가락 뿌셔지면서 하는 운동이라고 알고계시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잘 모를 때야 손가락이나 팔로 버티지,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간 5분도 못 버티거든요. 클라이밍은 다리로 버티는 운동입니다. 손가락은 걸치고만 있을 뿐이죠. 대신 중심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안떨어지는 각도가 있거든요. 손가락 하나로 그 무게중심만 잘 유지하고 있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신기하죠. 몸을 움직이는 힘은, 뭐 엄청난 추진력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손가락 하나'로 맞추는 밸런스에서 시작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단한 뭐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결국 몸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전진이 필요한 거겠죠.



03. 옆에서 으악거리면 더 무섭다.


아...정말 이건 찐인데. 옆에서 같이 등반하시는 분이 '엄마야!!! 어어어어어 어떡해!!!! 으아ㅏ아아!!' 그러면 진짜 10배로 무섭습니다. 진짜 이대로 나도 같이 죽을 것 같은 물귀신공포감이랄까... 이 클라이밍을 할 때 가장 도움이 된 건 선배님들의 '다왔어요.' 였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어떤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 자신감은 배가 됩니다. 물론 희망고문이기도 하고, 다오긴 뭐가 다와요!!! 라고 하고싶지만... 둘 다 겪어본 결과 비명보단 태평한 소리가 더 좋더라구요. 삶도 그래요. 주변에서 모두 비명만 지르고있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경사를 스스로 만들어내게 됩니다.


04. 높이에 적응되진 않는다. 주의를 돌리는 법을 깨달을 뿐


여러분 무의도는 섬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풍경이 보여요. 이건 올라기가 전에 바닥에서 찍은건데 위에서 찍으면 더 지리겠죠?

'와 바다도 쫘악 보이고 풍광 지리는 거 아냐?'

생각하시겠지만... 음.. 10층 높이에서 바다를 보고있으면 그냥 개무섭습니다. 이게 6,7번을 오르락 내리락해도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대신, 어디에 주의를 돌리면 무섭지 않은 지 깨닫게 되더라구요. 높이를 계산하고 있으면 계속 무섭고, 올라오는 사람의 행동에 집중하면 어느새 높이감각이 사라졌어요.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머리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 결정하는 느낌이었달까요. 나중엔 다양한 방법으로 애써 두려움을 외면했습니다. 농담따먹기도 그 중 하나고, 말이 많아지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 구경하기 또는 저 밑에 해변가에 유튜버는 조회수 몇 나올까 고민하는 것도 방법이죠.

삶도 그런 것 같은게... 결국 내가 집중하는 곳에 따라 몸은 반응합니다. 명상할 땐 반응을 선택하라고 했는데, 사실 이렇게 높은 곳에선 반응을 선택할 순 없더라구요. 대신, 반응을 만드는 '대상'을 선택할 순 있었습니다.



05. 동작은 하나씩 해야한다.


우리 클라이밍 선생님은 실전에 저희를 내던지셨어요. 사실 뭐 스트레칭 조차도 없이 그냥 '올라가봐' 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신기한 건 뭔줄 아세요? 또 그걸 올라간다? 사람이 미칠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더라구요. 저희가 실내암장에서 배웠던 기술은 하나도 쓰지 못했어요. 저런 미끄러운 직벽구간에서 쓰는 기술은 따로 있는데... 저런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대신 그냥 본능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잡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급하니까)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번에 동작은 하나씩 해야한단 거에요. 발과 손이 같이 움직이거나, 두 발을 같이 이동하면 몸이 그만큼 많이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손 하나 뻗고. 발 하나 옮기고.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가야했어요. 근데 저 앞에 뭔가 잡을 만한 게 있으면 빨리 거기로 가고 싶잖아요. 그걸 겁나 참아야해. 거기 가겠다고 후다닥 움직이면 백방 떨어지거든. 근데 이게 영화처럼 떨어지는 와중에 탁!! 잡을 수 있는게 아니여....


일도 삶도 참 그래요. 뭔가 위급한 상황이나 곧 죽을 것 같을 땐 하나씩 차근차근 삶을 움직여야지..이게 다급하게 막 여러개를 멀티태스킹한다고 될 일이 아니더라구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저에게 약간의 인사이트를 주는 시간이었습니다.(그러나 돌아오니 다시 다급하게 하고있습니다.)





근데. 아직 3번 더 남았어요. 이번 주엔 강화도 마니산감...

R.I.P

매거진의 이전글 이걸로 대한민국 디자인 컨셉은 얼추 정리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