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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y 24. 2022

개척자 하지마.

개척자 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개척자의 위대함. 제가 요즘 돌을 오르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클라이밍할 땐 적어도 2사람이 필요해요. 아무것도 없는 벽에 확보물(떨어져도 적당한 곳에서 몸이 걸릴만한 안전장치)를 걸면서 먼저 루트를 개척하는 선등자가 있고, 그가 설치한 확보물을 회수하면서 올라오는 후등자가 있습니다.

뭐 대충 이런 느낌



후등자는 선등자가 위에서 줄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아요. 하지만 선등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혼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머리도 몸도 바쁘고 힘들고 개무섭습니다. 떨어지면 상당한 높이를 떨어져야 하죠.


아 물론 이렇게 떨어지진 않습니다. 어디에서 걸리죠.


스타트업에서도 개척자 정신을 많이 얘기합니다. 단어가 촌스러운 만큼 파이오니어(Pioneer) 라던지 퍼스트펭귄, 퍼스트무버 등의 단어를 쓰죠. (느끼기엔 계피말고 시나몬좋아요라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단어가 멋있는 탓일까요. 개척자 정신은 굉장히 위대하고 멋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맞는 말이죠. 인류는 지난 수 만년간 꾸준히 신체와 지적능력을 향상시켜왔습니다. 늘 기록은 갱신되고, 새로운 속도와 높이, 힘과 아이디어가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대가가 따릅니다. 인류는 이상한 본능을 하나 지니고 있어요. 대부분의 동식물은 위험을 최대한 피해가려고 합니다. 하다못해 저희 집 강아지도 위험한 걸 느끼면 더이상 가지 않으려고 하죠.


하지만 사람은 그걸 '도전'이라고 부르며 기꺼이 맞이합니다. 아니 왜 죽을 수도 있는 걸 자꾸 하냐고. 맨손으로 암벽을 오른다거나. (떨어지면 그냥 즉사), 굳이 하늘에서 뛰어내린다거나, 바다에 나가서 뭘 탐사한다거나 이런 일들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버터가 만들어진 계기도 누군가가 굳이 상해서 굳은 우유 윗 부분을 맛봤다는 얘기잖아요? 먹었는데 운좋게 안죽고 맛있었던 거지. 수많은 식재료를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를 움켜쥐고 죽었겠습니까.


먹던 걸 계속 먹으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걸 자꾸 찾아내고 계속 걸어다니며 새로운 곳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물론 최초에는 식량이나 기후문제 등 생존을 위한 이동이었겠죠. 이동하다보니 먹을 것이 달라지고 살아야 하니까 이것저것 만지고 먹어봤을 겁니다. 아마 끊임없는 사냥과 이동의 기억이 전승된 탓일까요. 더 이상 사냥할 게 없는 요즘엔 다른 일을 하며 에너지를 풀고 있는 듯 합니다. 이 행위의 원천을 호기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도전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개척자정신을 지닌 사람은 온전한 위험에 몸을 내던집니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그렇진 않죠. 항상 그런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제가 돌타고 기어오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선등을 하진 않아요. 그건 개무섭기 때문이죠. 

후등이니까 웃고있는 우리들.


개척을 한다는 건 일단 여러가지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먼저 개무섭죠. 그 무서운 정도가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이 지릴 것 같습니다. 공포는 온몸을 긴장하게 만들고 긴장하면 현실이 왜곡되죠. 완만한 경사가 갑자기 수직벽처럼 느껴지고, 뻔히 잡히는 홀드도 보이지 않습니다. 옆에서 동료가 어딜 잡으라고 소리쳐도 들리지도 않죠. 공포는 오롯히 당신을 혼자만의 공간에 가둬버립니다. 근육은 경직되고, 점점 힘이 빠지면서 다리는 달달 떨립니다. 곧 발이 미끄러지면 난 거의 2~3층 높이를 자유낙하하겠죠. 까맣고 어두운 미친 혼돈의 공간속에 자아가 갇힙니다. 

개..개무서워!!!!




다음은 아픕니다. 선등은 누가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오롯히 혼자 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힘은 두 배로 들고, 각종 확보물을 챙겨서 올라가야 하다보니 몸도 무겁습니다. 무엇보다 떨어지면 한참을 떨어지는데 제대로 착지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어디 발에 줄이 걸려 몸이라도 뒤집히면 머리부터 벽에 부딪히거나 어디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지는 사태가 생깁니다. 후등은 떨어져도 고작 1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아요. 무릎이나 까지고 말겠죠. 하지만 선등은 최소 극한의 고통을 맛봐야 합니다.

어..어 ..... 난 괜찮아...



마지막은 어렵죠. 후등자는 선등자가 이미 한 번 갔던 길을 봤기 때문에 어디가 미끄러운지, 어디를 잡아야 할 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등자는 잡았던 돌이 쏘옥 빠져 나락으로 함께 떨어지거나, 믿었던 돌이 나를 배신하며 미끄러웠다던가, 돌 사이에서 지네가 나오기도 합니다.(진짜 그러더라고요) 처음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딜 잡아야 할 지도 스스로 찾아서 결정해야 하죠.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후등자가 여길 잡아라 저길 잡아라 하는데 그건 지가 안붙어봐서 하는 말이죠. 밑에서 보면 졸라 쉽지만 정작 벽에 붙어있는 사람은 10cm 조차 까마득하거든요. 그래서 몸도 피곤하고 머리도 피곤합니다.

거기 잡을 데 있어.  어디!! 어디!!!! 잡을데가 어디있냐고!!!!!!!!!!!


부가적인 고통은 누구도 선등자가 힘든 걸 잘 몰라준다는 점입니다. 사실 클라이밍에서야 자기가 선등경험이 있으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세계에선 니가 개척을 하든 말든 사람들은 '어머 미쳤나봐' 정도로 생각하지 '와 감사하다. 존경스럽다'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의료보험체계를 만들어낸 장기려 박사님이나 최초의 국내 두유를 탄생시킨 정식품의 정성수 회장 등 우리는 잘 모르지만 뭔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고독한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죠. 짧은 다큐나 인터넷 기사에서 감동적인 자기계발 스토리로 다뤄주면 또 모르지만, 일상에선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세상은 수많은 선등자가 먼저 올라가 걸어준 줄에 의해 당겨지며 움직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선등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높은 확률로 늘 후등자의 역할입니다. 물론 선등을 해보고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선등은 자신 뿐만 아니라 후등자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결국 팀 전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119에 실려 내려와야 하죠. 그래서 선등은 강요할 수 없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원할 수도 없습니다. 굉장히 많은 연습과 인내가 필요하거나,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죠. 


공포와 고통을 느끼는 정도보다 호기심을 해결하고 무언갈 정복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커야 합니다. 이건 기질이죠. 그러니 개척자나 리더는 그런 사람이 되면 됩니다. 우린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겠죠.


애시당초 벽을 오르지 않고 호캉스를 즐기는 편을 택하거나

안전한 후등에서 적당한 플레이를 즐기거나

엄청 쉬운 코스에서 초보 선등자 놀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정도로 만족하는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과 개척, 호기심과 투쟁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하나의 특성이지 미덕이 아닙니다. 그걸 지닌 사람은 막 존경스럽고, 지니지 못한 채 팝콘먹으며 배나 두드리고 있는 나는 뭐하는 존재지? 라고 굳이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죠. 


만약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는데 그 길을 먼저 다져놓은 선등자가 있다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편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라고 그 분야의 선등자에게 감사하면 될 일입니다. 개척은 힘든 일이기에, 굳이 개척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서 안전하고 즐겁고 행복한 쪽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삶을 즐기려고 왔지, 뭘 정복하고 개척하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난 살빼서 선등해보고 싶다. 개무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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