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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28. 2022

연차사유에 '내일 생일'이라고 적는 게 불편함

연차사유는 공손하고 반듯하게 적어줘야 한다.


최근 연차사유에 '연휴 전날', '생일', '애인과 데이트' 라고 적는 MZ세대가 있다고 기사가 뜨더라. 댓글을 보니 아주 가관이다. 찬성측은 '연차쓰는 데 이유를 물어서 답했을 뿐이다.', 반대측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더라. 우리 한 번 생각을 해보자.


..?



일단 연차쓰는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나. 원래 쓰라고 만들어준 제도를 쓰겠다는데 이유를 왜 물어. 탕비실의 네스프레소 내려 먹을 때 이유를 말하고 먹던가? 사실 연차의 이유는 명확하다. 


'쉬고 싶으니까'



윗 분들이 연차사유가 궁금한 이유는 소위 '그래서 쉬는 날 뭐할래?' 라는 건데... 남이 휴일에 뭐하든 사실 그건 회사가 궁금할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어디 놀러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산재처리 해야하니까 사유를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있던데 아쉽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 제1호 가목에 의해 개인 휴가중에 사고는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연차사유에 휴가 전날이라고 쓰는게 구체적이지 않으면 뭘 더 어떻게 쓰길 바라는 걸까. 망향휴게소 하행선에 들려 비빔국수에 계란추가할 예정이라고 적어야 하나.


물론 이런 생각은 든다. 좀 더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적당히 회사가 원하는 것을 쓸 수 있겠지. 그것을 최소한의 예의라고 부른다면 쓰읍 글쎄. 그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예의나 무례의 영역이 아니지.


연차는 제도이자 권리일 뿐이다. 예의란 건 서로가 양보해야 하거나, 누군가의 시간, 에너지, 재화를 빌리거나, 감정과 기억을 건드려야 할 때 필요한 것이다. 연차는 그저 제도일 뿐이니 양보가 아니고, 회사가 제공한 휴가를 쓰는 것이니 자원을 빌리는 것도 아니며, 연차사유를 보고 감정과 기억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게 '최소한' 이라는 단어까지 붙일만큼 당연한 것일까? 연차사유를 묻지 않는 게 오히려 상식인거지. 연차사유를 묻는 행위를 십분 이해했다고 치자. 하지만 연차사유에 욕을 했나, 반말을 했나, 엉뚱한 단어를 적었나, 나루토를 그렸나. 생일파티라는 단어가 그렇게 상처가 되었다면..당신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 겁니까..


아파도 참고, 애낳고 3일만에 회사에 복귀하고, 링거맞으면서도 일하고, 몸살에 땀 줄줄 흘리면서도 영업을 뛰던 얘기가 영웅담처럼 퍼지던 시대는 지났다. 철저한 충성충성문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파격적인 연차사유를 적는 이 시대의 반항아 MZ세대!! 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니, 파격적이라고 할 거면 연차사유에 '어쩌라고' 정도는 적어줘야 신선한 것 아니겠나. 생일이란 사유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딱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서 어..어..그래 생일. 생일은 못참지... 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생일.. 생일은 못참지



아무래도 불편함이 생긴다면 이런 지점때문이 아닐까. 연차가 너무 신성한거야. 

회사의 연차가 얼마나 신성하고 소중한데... 감히 네놈따위의 생일에 비할 수 있을쏘냐! 적어도 다리가 뿌러지든가, 어머니가 병환에 몸져누우시던가, 가족의 대겹경사 정도는 되야 겨우 하루를 빼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회사란 말이다!!


라는 마음인거지. 연차는 회사가 베푸는 온정과 시혜같은 거고, 우린 은총을 누리고 있으니 영광다해 연차를 소중하고 신성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느낌. 왓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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