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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r 09. 2023

대표님들이 다들 화성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

다들 맷데이먼


사실 마션의 맷데이먼은 우주비행사 따위가 아닌 것 같다. 화성에 도착하고 나서 위기(오예)를 마주하고 맨손으로 MVP를 만들고 린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전략적으로 움직이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투자를 맞이한 스타트업 대표가 따로없다. 시발저발을 외치며 점점 살이 빠지며 피폐해지는 모습도 똑같다.


컬처덱을 만들며 10개 기업중 5개기업은 GO MARS를 외쳤던 것 같다. 머스크병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관됐는데 이러다 조만간 화성 무슨 언덕 어드메에서 스타트업 커뮤니티 세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들은 어릴 적부터 포부를 크게 가지라고 했지만, 화성에 가라고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이쯤되면 꿈과 열정을 외치던 부모님들도 '아 이건 좀' 이라며 절레절레 할 것 같은 포부인 것이다.


대표님들의 포부는 정말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날 만큼 강력한 이탈속도를 지닌 것일까.




화성 이외에도 대표님들이 관심있어 하는 5가지가 더 있다. 철학, 양자역학, 선형대수학, 천체물리학(물리학 포함), 주역이 그것인데 이는 모두 세상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하려고 했던 ToE(모든 것의 이론 : theory of everything)의 일종인 것이다.


사업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다. 물론 꼬박꼬박 출근해서 묵직한 일들을 해내야 하는 실무자의 고통도 굉장하지만, 대표의 고통은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실무자의 고통이 '과도함'에서 오는 짜증과 피로라고 한다면 대표의 고통은 '불확실'에서 오는 무한한 불안과 우울이다.




매월 수천에서 수억의 비용이 꼬박꼬박 나가고, 이슈는 매일같이 터진다. 끊임없이 지갑이 비어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존나 부자인 줄 안다. 고충을 말하고 싶지만 실무자 중 대표의 고충을 나눠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대표에게 뭔가를 바라거나 서운해할 뿐이다.



투자자와 실무자와 아무리 외쳐도 당최 늘지 않는 고객과 지랄맞은 규제들과 때되면 삥뜯어가는 세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매 순간의 선택을 혼자 해나가야 한다. 잡플래닛에 미친 악플들이 달리고 블라인드에 미친놈 꼰대새끼 어쩌고 올라와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매월 5일이면 그들의 통장에 급여를 꽂아줘야 하니까. 물론 돈을 벌고 성공하며 명성 비슷한 것을 얻긴 할거다. 하지만 페북 메시지와 링크드인 메시지에는 아젠다 없이 일단 만나서 뭣 좀 조언해달라는 메시지가 가득하고 멋져요 좋아요 대박대박 댓글을 달던 사람들은 아주 조그마한 이슈에도 실망이다 한계다 하면서 줄행랑을 쳐버리는 것이다.


원온원을 해주지도 않고, 정해진 기대치도 없고, 해야할 일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그 어떤 가이드도 없는 게 편할까. 허허벌판에 물 한통 던져주고 알아서 걸으라고 던져진 화성의 방랑자 느낌이 딱 그것이지 않을까.


과장을 보태자면 수 백명이 죄다 나를 의지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상황을 개인이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대표님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이상한 것은 과도하게 길러진 내면의 노가다 근육같은거다. 나름 살아야하니까 생긴 모서리들이랄까. 개중엔 부처와 같이 인자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분도 계시지만 그런 분들은 취미가 이상하거나 엉뚱한 곳에서 괴팍함을 보이곤 했다. 긍정적으로 괴팍하면 덕후나 익스트림 스포츠로 갈 수 있겠다.


이런 중압감을 평범한 상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분명 내가 만든 회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이 고통을 웃으며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불안과 불확실이 단순히 우연과 혼돈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이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변동비율계획(VR schedule)이란 개념이 있다.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에서 비롯된 응용이론인데, 몇 번의 실패 이후 한 번의 간헐적인 성공이 주어졌을 때 행위는 더욱 강화되기 시작한다. 실제 실험에선 안정적으로 나오는 밥그릇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변동비율로 등장하는 '잭팟'에 목숨을 거는 비둘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것보다 서비스로 나오는 것에 숟가락이 가는 것처럼


대표들은 수많은 실패와 간헐적인 성공으로 이미 자극강화가 되어있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이런 무작위성은 통제가 불가능하단 것이다. 대표는 이런 상황을 못참지. 그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이다. 가장 공포스러운 건 실패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지. 그래서 꺼내는 무기가 바로 지각된 통제감(Perceived Control)인 것이다. 이는 통제망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위에서 말했던 철학, 수학, 물리학, 주역... 나아가 일종의 징크스와 미신을 동원해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를 쓰고 그 법칙을 찾아내려고 하고 가끔 자신만의 명제들을 만들어 하나의 독특한 '패턴'을 만든다. 물론 해탈의 경지에 올라 그런 패턴따윈 모르겠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는 ENTP 대표님들도 있지만, 그 분들 또한 공수레공수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순리의 원칙을 적용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엔트로피 원칙이 경영학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는 아닐 것이다. 솔개의 환골탈태는 말도 안되는 뻥임이 밝혀졌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솔개가 날개뜯는 것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 중력장이론이나 화성에 가는 궤도나 페르마 가설 등이 지금의 조직문화나 의사결정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대표님들은 우주나 대자연, 숫자의 원리를 '본질'로 규정하고 현재의 선택과 대우주의 원리 사이에 '가짜 연합'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선형관계가 아닌, 인과도 상관도 없는 무선적인 개념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걸 가짜 연합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나에게 닥친 이 혼란과 어이없는 이슈들,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불만과 짊어져야 할 수많은 미움들을 설명할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대표님들은 자꾸 고갤 들어 화성을 바라보는 것 같다.

눈물이 차올라서가 아닐거야.


화성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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