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Mar 07. 2023

어디나 참 고생이 많다.

애쓰는 일기

아침에 기분이 꿀꿀했다. 영상 6도를 기록해 훈훈했던 공기사이로 한숨을 푹푹 밀어넣는 이유를 또렷히 알긴 어려웠지만, 생각해보면 원래 출근하면서 한숨을 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출근의 호흡 제1형)


응..


월요일에 일을 시작하려면 몇 가지 루틴이 있어야 한다. 요즘엔 속이 너무 안좋아서 모닝커피 대신 고상하게 오설록 티를 즐겨보기로 한다.


화산암우롱찬가? 그것은 적당히 쌉싸름한게 마가렛트랑 먹으면 찰떡이다. 마가렛트는 회사를 위해 만들어진 B2B상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느 회사나 마가렛트가 있는데, 지겨울 법 하지만 이게 또 입에 챡 달라붙는 설탕덩어리인지라 한 봉다리만 까기엔 손이 서운하다.


오늘은 11번가 미팅이 있었다. 최근에 신임대표님이 오셨는데 성격이 엄청 급하시단다. 한민족 그 잡채인 것이다. 대표님 성격이 급하셨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사실 클라이언트 미팅을 하다보면 놀라움과 멋짐, 안쓰러움, 현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를 키워내기까지 소주 몇 짝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모두가 나름의 목적과 생계를 걸고 다닐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 과정이 똥이든 된장이든 멋진 일이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고충은 어디에나 똑같고 일이 지니는 태생적인 모순은 대표든 실무자든 안쓰럽게 만드는 것이다.


모순이란 이런 것이다.


원래 인간은 풀이나 뜯고 과일이나 따면서 가끔 주먹도끼로 사슴머리를 내려찍어 만찬을 즐기는 정도의 노동을 했을 것이다.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그런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수만년을 살아왔다. 사람에게 '시간'의 개념이 본격화된 건 산업혁명 이후이다.


규격화된 시간과 규칙을 만들어 모두가 같은 행위를 하며 손을 놀리는 것이다. 피곤을 견뎌야 하고, 수단일 뿐인 도구와 돈, 수많은 재화를 위해 내 일부를 끊임없이 침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건 분명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린 그걸 "성장"내지는 심지어 "행복"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행복한 일터...뭐 이런 식으로. 사실 일터가 행복과 가까운 단어였던가 싶네. (기왕 다닐거 사소한 행복이라도 찾아보자 이런 의미겠지)


(물론 일에서 행복과 쾌감을 찾는 분들도 꽤 많았다. 승부욕과 집요함, 성취의 아드레날린을 원하시는 분들. 어찌보면 그분들에게 일은 일이 아니라 삶이나 자신 그 자체로 여겨지는 듯 했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않다.

트루니에도 그렇게 말했다. 그게 자본주의든 자본주의 할아버지든 쉴 시간을 줄여가며 일을 해야 하는 건 제아무리 좋은 표어와 문화를 갖다붙여도 퍽킹갓댐잇. 





실제로 뭘했나


생각해보면 엄청 뭘 한 건 아니다. 미팅을 하고, 돌아와서 이런저런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이나 놀리며 토도도독 하는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인데. 왜케 피곤하지. 역지사지로다가 이렇게 피곤해 뒤지겠는데 우리 조직문화가 어쩌고 이러면서 원팀을 지키세요 이러면 바로 눈감고 이마 짚을 것 같긴 하다.



개피곤한 와중에 한동안 못나갔던 클라이밍장가서 볼더링 푸는데 오늘따라 몸이 겁나 무거워서(살이 찐거다) 땀 줄줄 흘리며 붙다떨어지고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확실히 체력적으로나 집중력 측면에서나 이 쪽이 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할텐데 이건 재밌단 말이지.


돌아오면서 느낀 건 일이 힘든 건 그 자체가 뭐 빡세고 버겁고 무거워서가 아니다. 물리적인 칼로리소모나 근육의 피로 뭐 그런 게 아니다. 물론 두뇌를 쓰는 건 엄청난 칼로리를 소비하지만 사실 뭘 딱히 안해도 그냥 출근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거 보면 이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내지는 본능 그 자체의 문제인 것 같다.


그냥 기분이 나쁜거여. 그냥. 일단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DNA 그 어딘가에 깊숙히 박혀있는 '졸라짱남의 기억'을 자극하는 것 같아.


오늘은 누워서 왜 일은 졸라 짜증나는지 이유를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런 정보가 없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