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뭘 전하고 이해하고 그런 관점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소통'이란 단어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듯 합니다. 공자의 말을 빌려 오늘의 주제를 대신해보고자 합니다.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고, 행동이 후덕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그 뜻이 통할 것이나, 말이 성실하지도 않고 신의가 없으며, 행동이 후덕하지도 않고 공경스럽지도 않다면 비록 자기 고장이라 할지라도 그 뜻이 통하겠느냐?’라고 하였다.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로고스와 파토스와 더불어 말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 즉 에토스의 개념을 역설하였습니다. 이 때 에토스는 단순히 정치적인 태도나 행동, 또는 외모나 목소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지닌 패턴과 그것이 만드는 유추의 신뢰를 포함하죠. 논어의 구절은 이러한 에토스와 맥을 같이 합니다.
아마 조직문화에서 우리가 말하는 '소통'이란 단순히 명확한 정보 전달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에서 문제시되는 '소통'이란 설득과 솔직함, 발화와 경청의 문제죠. 이해의 범주가 아닌 행위의 범주에서의 소통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아마 이 중 가장 어려운 과제이자, 소통의 궁극이라 말할 수 있는 설득이 지금의 회사들이 말하는 소통의 정확한 뜻이겠죠.
그러니, 소통이란 그저 언어로 서로의 '상'을 일치시키는 전달과 이해의 영역을 넘어 '신념'을 꺼내보이고 이것에 감화되도록 만드는 만드는 일이라고 함이 적절하겠습니다. 물론 감화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썼지만 이것은 '신념에 긍정'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나의 신념에 반응해 자신의 신념을 깨닫고 그걸 입으로 내뱉는 일 또한 포함하죠. 상대로 하여금 나와 같은 수준의 저변에서 언어가 시작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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