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을 정확히 하자
감정 없이 딱 일에 관한 얘기만 한다는 건 멋져보인다. 합리적이고 아무 뒤끝없는 쿨한 느낌마저 준다. 또한 위험하다.
우리가 그토록 배척하고 지워내려고 하는 '감정'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과 부딪히며 기빨리는 환멸과 눈치싸움, 정치질, 친목질, 뒷담화, 까내리기, 미세공격까지. 오래 전부터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경험했을 그 수많은 부대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표현하자. 난 정치질이 싫다, 미세공격이 싫다, 친목으로 의사결정되는 것이 싫다, 모욕적인 언사가 싫다. 이렇게 또렷히 문제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문제를 부풀린 후 가장 익숙한 단어로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문제도 해결책도 온데간데 없이 오롯히 감정으로 단순해진 결론이 아닌가.
'감정 없이 일만 열심히' 라는 말을 듣고 어떤 시간이 떠오르는가. 조별과제부터 사내연애, 미친 팀장님까지 그동안 사람에 치였던 수많은 시간을 자극한다. 악몽같은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선동이 쉬워진다. [우린 그렇게 하지 말자]며 완전히 다른 프레임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지극히 근거없이, 감정은 일과 대척점에 선다. 그저 그 전의 경험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반대편으로 달리는 것이다.
모든 감정이 악으로 치부되는 듯한 표현은 분명 위험하다. 감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 배려, 라포, 선의, 적당한 뽕과 조직의 일부로써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적 충성심도 포함한다.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으며 때론 위험해지는 이런 감정들의 충돌과 혼란이 모인 인간들을 서로 죽게 했고, 또는 발전시켰다.
제아무리 객관적인 피드백도 결국 감정 위에서 춤추기 마련이고, 모든 말이 끝나면 결국 감정과 상황만 남는다. 우린 정보만 전달하고 일얘기만 한다고 단언하는 건 굉장한 자기오만이거나, 철저한 현실부정에 가깝다.
설령 그것이 진짜로 해내고 싶다면, 오히려 그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감정을 누르고 정보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자기 관찰과 언어를 극도로 벼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메시지의 정갈함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말투와 공기, 미묘한 표정, 머뭇거리는 몇 초, 단어의 선택 모든 것이 감정이다.
합리성으로 포장된 진솔함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빠져나갈 수 없고, 반박의 여지도 없으며, 상대를 무력하게 하고, 죄인으로 만든다. 어떤 상황도 변명도 노력도 합리의 잣대에선 모두 물거품이 된다.
수치로만 얘기하는 데이터드리븐이나, 객관적인 피드백, 감정없는 일얘기 등으로 점철된 메마른 문화는 나태 그 자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은 극단적 선택지다. 또한 누군가의 개인성향과 완벽주의, 강박에서 비롯된 지극히 기형적이고 폐쇄적인 개념인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가 '멋진 것' 또는 '일을 잘하는' 문화로 우상화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이 모였으면, 정중해야 하고 따뜻해야 하며 휘몰아치는 감정도 주고받고 그것을 현명히 해결하고 소화시킬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게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일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