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도 충분한 작은 터널을 지난다.
터널이 액자틀이 되어 그 액자 안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시원한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빛 나무들이 있다.
여기로 나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이.
어느새 숲길에 다다라 요가매트를 펼친다.
언제부턴가 자연 속의 요가를 즐기게 되었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 숲 속 데크나 가지런한 흙 위에서.
요가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매트 하나면 된다.
수련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묘한 역설이 떠오른다.
수련은 분명 규칙과 반복,
그리고 절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완전한 자유다.
마치 강물이 바위를 피해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우리가 태어난 본연의 모습으로 되찾아간다.
정확한 자세를 취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호흡을 맞추고,
벽 앞으로 붙인 발을 정확히 90도로 맞추려 했다.
그때의 수련은 ‘올바름’을 향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완벽함이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서 처음 요가를 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바닷바람이 등 뒤로 스며들어와 온몸을 감쌌고,
발끝에 닿는 모래알갱이들이 마사지를 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원래 자연에서 왔고,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떠올렸다.
매트 위에서 느끼는 이 평온함은
어쩌면 그 본래 자리에 대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굴에서,
갠지스강 변에서, 보리수 아래에서 수련했다.
그들에게 요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숲 속에서 나무 자세를 취할 때,
나는 정말로 나무가 된다.
뿌리는 땅 깊숙이 내려가고,
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리고,
새가 지저귀면 함께 노래한다.
이때의 수련은 투쟁이 아니라 조화다.
나를 자연에 맞추려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
미국의 작가 애니 딜라드는 대지의 순례자로서
엄숙한 진심 속에서 빚어진 우리가
자연 속의 상처의 부패처럼
우주의 짙푸른 얼룩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수련도 마찬가지다.
몸을 정복하려 하기보다 리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은 흐름에 실어야 한다.
터널을 나서며 만난 그 초록 나무들처럼,
수련은 우리에게 '여기 와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비틀거려도 괜찮고,
중간에 멈춰서 나무 냄새를 맡아도 괜찮다고.
매트 하나면 된다는 말이 이토록 자유로운 이유는,
그것이 장소의 제약을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집 안 거실에서도, 해변에서도, 산 정상에서도.
매트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진정한 수련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든 자신이 될 수 있는 용기,
어떤 상황에서든 호흡할 수 있는 여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완전할 수 있다는 믿음.
요가 매트를 말아서 어깨에 메고 걷는다.
다음에는 또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나무가 나에게 그늘을 내어줄까.
어떤 바람이 내 등을 어루만져줄까.
수련이라는 자유는 바로 이런 설렘 속에 있다.
언제나 새로운 순간에 열려있고,
언제나 다른 나를 만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큰 흐름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돌아갈 그 자리는
매트만큼이나 작은 곳이리라 예감해 본다.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