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그 간극

은밀한 우월감의 그림자

by ROZY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는 네 가지 선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마음,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 마음에는 계산이 없다.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조건을 달지도 않는다.

그저 순수한 연민과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측은지심이 순수한 것일까?

때로는 그 측은한 마음 뒤에 교묘한 우월감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은밀한 나르시시즘’은

겉으로는 배려심 많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도우면서도

은연중에 그들을 무력한 존재로 규정하고,

자신을 구원자의 위치에 놓는다.

한 요가 스승과의 만남에서

이런 왜곡된 측은지심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처음엔 진심어린 염려라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비’가 조건부였음을 깨달았다.

감사나 순종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차가워지고,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진정한 자비와 우월감에서 비롯된 동정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수련처를 떠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그분은 나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며 미안하다고말했다. 내가 품고 있던 오래된 의문에 대한 작지만 명확한 대답이기도 했다.

요가철학에서 카루나(Karuna)는 자비를 의미한다.

진정한 자비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서 지켜보는 것이다.

하지만 왜곡된 자비는 다르다.

상대방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한다.

이런 자비는 실제로는 폭력이다.

상대방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미묘한 폭력 말이다.


진정한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건강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를 존중하되 의존하지 않고,

품어주되 통제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공자


이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상호적임을 의미한다.

때로는 제자가 스승을 가르치기도 하고,

스승이 제자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간극은 권력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스승은 자신의 권위를

제자를 통제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제자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데 사용한다.


맹자의 측은지심으로 돌아가 보자.

그 순수한 마음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려 할 때,

그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우월감을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간극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겠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시작된다.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