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달구고 식히는 타파스

by ROZY

매트 위에서 호흡을 고르며

종종 요가수트라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2장 43절,

“kāyendriya-siddhir aśuddhi-kṣayāt tapasah”

카엔드리야-시디르-아수디-크사얏-타파사

수련을 통해 육체와 감각기관이 완벽해진다.


여기서 타파스는 ‘뜨거운’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뜨거운 불로 금속의 불순물을 태워내듯,

자기 단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타파스는 거창한 고행이 아니라

감각기관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조절’이다.


요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매일 같은 강도로 수련하는 것보다,

파도처럼 리듬감 있게 흘러가는 수련이

훨씬 지속가능하고 깊어진다.

어떤 날은 아쉬탕가나 빈야사, 하타집중으로 몸을 달구고,

다음 날은 휴식하거나 하타기초, 도구요가로 몸을 달래준다.

이렇게 달구고 식히는 패턴으로 수련하니

몸이 더 깊이 반응했다.

마치 대장간에서 달궈지고 식혀지는 쇠처럼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매일 강도 높게 수련을

이어가다 어깨나 무릎, 허리 등

관절을 다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수련은 파도와 같다.

끊임없이 일렁이면서 멈추지 않는다.

흘러가듯이 몸을 맡겨보자.

하루에 단 10분만 할 수도 있다.

그 10분이 강렬한 빈야사가 될 수도 있고,

부드러운 호흡명상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매일 매트 위에서 만나는 그 행위,

바로 타파스이다.


나는 10개월 동안 살람바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에 정성을 들였다.

처음에는 넘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벽에 기대어만 연습했다.

“넘어져도 괜찮고, 잘 넘어지는 걸 알면 된다”는 말을 듣고도

몸이 더 굳어만 갔다.

용기 내어 과감히 넘어졌을 때,

막상 제어가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부상의 두려움이 더 커졌다.

그래도 저녁 식사 전에 꼭 머리서기 시간을 가지면서

되든 안되든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계속 몸을 살피다 보니 변화가 찾아왔다.

특정 아사나, 특히 고난도 자세에서는

몸이 전반적으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요한 근육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수련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아사나가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했다.

드문드문하다 보면 바로 하기 힘들지만,

경험할수록 몸이 기억하게 된다.

어깨의 안정성, 코어의 강화, 목의 유연성,

무엇보다 온몸의 협응력이 다 준비되어야 가능한 아사나였다.

이런 과정에서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보이지 않아

누군가는 ‘너무 분석하지 말고, 생각을 줄여보세요.’고 했지만,

나는 이 섬세한 관찰이 진정한 요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요가수트라에서 말하는

요가의 여덟 단계 중에서 다섯 번째,

프라티아하라(감각의 제어)가 바로 이것이다.

외부에 흩어져 있던 의식을 안으로 돌려서

몸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는 것.

몸의 기억은 연속성이 있어야 쌓인다.

피아니스트가 온몸으로 음악을 기억하듯

요가도 몸 전체의 패턴과 리듬을 익히는 일이다.

강함과 부드러움, 집중과 이완, 노력과 내려놓음.

이 대비들이 파동처럼 순환할 때

요가는 흐름 속에서 깊어진다.

파도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하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듯이.

오늘도 매트 위에서 몸에게 묻는다.

오늘 내가 맞이하는 수련은 어떤 흐름일까?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