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시티와 알아차림
"엄마! 선생님께서 말해주셨는데
'헨젤과 그레텔'하고 '해님과 달님'은
실제라면 무서운 이야기래.
동화책으로 우리가 읽어서 무섭지 않은 거지."
둘째 딸이 건넨 말이 내 생각에 물꼬를 터주었다.
같은 이야기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는 것.
내가 최근 고민해 온 '바라본다'는 개념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마치 요가 수련에서 늘 어려워하는 부분처럼.
“드리시티 코 끝”
아쉬탕가 요가 수련에서 코 끝을 바라보라는 지시가
쉽게 들릴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참 어렵다.
실제로 시선을 코끝으로 보려 하면
눈동자가 더 모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왜 코 끝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곤 한다.
드리시티(Drishti)는 산스크리트어로
'집중된 응시'를 의미한다.
요가철학에서 단순히
눈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집중과 명상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감각을 억제하는 단계에서
진정한 집중으로 넘어가는 핵심 도구인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하나는 내 앞에 당장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건너 보는 것이다.
딸의 말을 건너 보듯 무심히 흘려듣다가
곱씹을수록 내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펼쳐졌다.
숲 속으로 유인당하는 아이들,
동아줄에 매달린 위태로운 순간들.
동화라는 포장지를 벗기니
현실의 무서운 면들이 드러났다.
뉴스 안 아픈 모습들과도 겹쳐졌다.
내게 요가도 그랬다.
처음엔 그저 동작과 정확성에 초점을 두다가,
요가철학을 만나면서
내 삶의 일부로 머물던 요가가
삶 전체로 확장되었다.
시선이 바뀌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사실 이러한 ‘바라보기’의 힘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지혜가 모두 말해왔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서 깊이 관찰하는 것,
세밀하게 살피는 것까지 바라보기에는 층위가 있다고.
또한 아무 데도 머물지 않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시선이라고 말이다.
코 끝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눈이 보통 멀리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 자체가 의미가 있다.
그것이 드리시티의 핵심이다.
바라보는 것은 곧 알아차림과 연결된다.
몸, 느낌, 마음,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
여기서 '관찰'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아쉬탕가 수련에서 코 끝을 보려고 애쓰는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의 산란함을 알아차렸다.
눈이 더 모이는 것 같다는 불편함도,
왜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모두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의 한마디 말과 매트 위의 나를 의식하며,
나는 오늘도 깨어있는 바라보기를 연습한다.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