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한글 한자 교실

수업 중이라고 하면 나는 쉽게 친정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by ROZY


독서하다 보면 책이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듯, 음악도 음악을 잇는다. 이렇듯 우리 두 딸의 등굣길 차 안 선곡은 엄마를 따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수 잔나비의 음색에 빠진 엄마를 따라 주야장천 잔나비 노래만 골라 들은 적도 있었다. 내가 가수 아델 음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한번 듣더니 ‘멜로디 좋았던 아까 그거 틀어달라’며 그 이후로 무한 반복 연습하여 함께 불렀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한참 보던 시기엔 가수 헤이즈의 ‘마지막 나의 인사’를 하도 들어서 코인 노래방에서 두 딸은 그 노래를 불러 100점까지 나올 정도였다.

문득 나의 선곡이 너무 내 위주였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딸들의 취향도 한 번씩 반영해 보기도 한다. 키즈 뮤지컬 노래나 가수 블랙핑크, 뉴진스의 음악을 말하다가도 가수 윤하나 헤이즈 노래로 선곡 마무리가 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나와 딸들의 음악감상의 성향이 꽤 비슷해졌다.


최근 차 안의 뮤직박스에 변화가 생겼다. 요즘 이틀에 한 번꼴로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열띤 강의의 목소리가 나온다. 배움에 목말라 있는 엄마 때문에 자기 계발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강의 들으면서 가도 돼?”


혹시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두 딸에게 동의를 구한다.


“응”


고맙게도 둘이 동시에 대답해 준다. 앞자리에 앉은 둘째 딸은 눈을 감은 채로 매우 시크하게, 뒷자리에 앉은 큰 딸은 생각보다 매우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희로애락인 거죠!”


강사님의 목소리가 호탕하게 울려 퍼진다. 사실 엄마는 좀 미안하긴 하다. 이동하는 시간도 아껴 뭔가 열심히 하려는 엄마 탓에 겨우 7년, 10년도 못 채운 인생살이 친구들에게 나다움을 찾고 마음 비우기, 내면을 성장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니! 그렇지만 한 편으로 이 세상 살아간다면 차라리 얼른 애늙은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를 시켜본다.


"엄마, 희로애락은 기쁠 희에 노여할 노, 슬플 애. “


갑자기 뒤에서 ‘희로애락’을 한자로 풀어내는 큰 딸이었다. 그 말에 뒤에서 화살촉이 내 등을 뚫고 지나간 거처럼 느껴졌다.

‘역시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 건가?’

희로애락이라는 한자어를 듣고 말하는 자체가 기특했다.

“응, 알고 있었구나? 락은? 즐거울 락이지? 맞아, 인생이 곧 희로애락.”

그러고는 힐끗 둘째 딸을 쳐다보았다. 꼿꼿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난 그녀가 잠이 들진 않았지만, 그녀의 귀가 열려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의 대화를 듣고 흡수하는 중이었다.


“할머니랑 한자 공부했을 때 나온 사자성어야. 논술 학원에서도 나오더라고.”

“그랬구나. 잘했어, 책을 읽다 보면 사자성어랑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 도움이 될 거야.”

어렸을 때, 나에게는 엄마가 봐주는 한글, 글쓰기 수업과 한자 시간은 도망가고 싶은 시간이었다. 지루했던 펜글씨 교본, 흐트러지면 지적받는 연필 잡는 자세, 일기는 필수요, 정석을 따르는 독후감 기록, 획순에 맞춘 한자 암기. 뭐 이런 순서대로 엄마의 수업은 진행되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셨지만, 꼭 테두리 끝이 뾰족한 안경을 착용한 사감 선생 같은 느낌이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방법 역시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하셨던 방식으로 진행된다. 통글자보다 개별 자음과 모음의 조합원리로 접근한다. 온 집안의 물건이 한글을 깨치는 재료가 된다. 국자가 나오고 냄비가 나오고 밥그릇이 나온다. 과자를 먹다가도 이름이나 단어를 만들어 본다. 그다음 단계는 할아버지가 모아놓은 달력종이나 이면지에 네임펜으로 단어 카드를 만든다. 그리고 만든 카드들을 집 안 구석구석의 물건에 붙인다. 세면대에는 거울, 냉장고에는 냉장고, 방문 앞에는 방 혹은 문, 이런 식으로 다 붙여놓는다. 그다음 진도는 그림일기, 받아쓰기로 한글 수업은 수준별로 진행된다.

한자를 공부할 땐 이미지화해서 알려주신다. 그 방법은 시중 문제집에도 많이 활용되는데, 아이들이 재미있게 한자를 배울 수 있는 방식이라 큰딸도 재미있어한다. 한자를 꾸미듯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방학마다 한자 급수 시험을 준비하는 큰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와 쿵짝이 맞는 날이면 평화로운 공기가 거실을 맴돌지만, 서로 핀트가 맞지 않은 날이면 공기마저 옴짝달싹을 못 한다.


나는 우리 엄마, 즉 할머니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할머니 앞에 앉아서 나에게 구해달라는 눈빛 신호를 보내는 딸들을 보면 일부러 외면하고 본다. 어떨 때는 수업 중이라고 하면 나는 쉽게 친정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업의 흐름을 깰 수 있을뿐더러 오히려 내가 없는 것이 더 도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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