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중고 서점 사랑

아이들에게는 목적지가 어른들과 같지 않다.

by ROZY

[*** 매장에서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매에 대한 만족도 평가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림톡에 이어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


“세계사 만화책 4권이 없더라고, 직원한테 물어보니 재고가 없어서 개인 중고로 사라는데? 무슨 말이야? 한번 구해봐. 상태 좋은 걸로. 내가 오늘 3권하고 5권까지 샀으니까 4권만 구하면 돼!”


아이들의 방학 기간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육아 돌봄의 손길이 절실한 시기이다. 코로나 이후의 방학은 더욱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특히 작년 겨울의 경우, 학교가 천장 공사를 진행하느라 무려 40일의 방학 대장정이 진행되었다.


방학 중, 할아버지께서 일을 쉬는 날은 특별한 일과가 있다. 내가 아이들을 친정으로 데려다주면, 아이들은 아침 식사를 한다. 30분 정도 휴식 후 오전 숙제 타임을 갖는다. 하루의 숙제는 아침에 해버려야 한다는 규칙이다. 미션을 해결하듯이 숙제를 완료하고 나면, 할아버지는 그날의 아이들 컨디션을 살펴 한 명씩 선발하여 데리고 나간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부름에 거부감 없이 따른다.


겨울 날씨가 워낙 변덕스럽고 넘어질까 봐 몸을 사리는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에게는 눈이 오고 비가 오는 것은 그저 기상변화일 뿐이다. 그깟 신발, 젖으면 된다는 게 할아버지 방침이기에 웬만한 이유는 통하지도 않는다. 방학 초반에는 할아버지와 외출이 좋아 오히려 아이들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실랑이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나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도대체 아빠의 어떤 매력이 통한 거지?’


손잡고 내려가는 과정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결과, 할아버지의 무기는 자전거였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가게 되면 간단하게 아파트 동 앞의 주차장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살짝 원을 그리듯이 아파트 단지 밖을 돈다. 그러면서 근처 지하철역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곳에 할아버지표 목적지가 있다. 바로 중고서점이다.


“새벽 시간이 제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간이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지!”


내가 제일 싫어했던 아빠의 잔소리였다. 아니, 목소리마저도 싫었다. 학창 시절에는 맛있는 아침잠을 자고 있는데 그 잠을 깨우는 소리가 다른 소리도 아니고 ‘아빠의 말소리’라면 정말 싫었다. 꽉 막힌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투처럼, 집에 와서도 우리를 집요하게 달달 볶는 것만 같은, 그런 아빠가 참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지금은 부지런한 아빠의 모습을 우리 삼 남매 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닮은 듯 하지만 그땐 정말 왜 그렇게도 부모님의 그대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른들의 눈에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중고 서점으로 간다는 결과론적 판단을 하게 되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목적지가 어른들과 같지 않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선발을 즐기는 이유는 그저 ‘할아버지와 즐거운 외출’인 것이다.


최근에 친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날이 있었다.

할아버지도 마침 휴무일이라, 또 외출 선발이 진행되었다.


“나갈 사람?”


그날따라 아빠의 목소리가 새롭게 들렸다.


“중고 서점 가자.”라는 말보다 “나가자.”라고 하시는 제안의 말.


“나도 갈래!”


나도 아이들과 함께 나선다. ‘같이 가기만 해도 왠지 나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질지 모른다’라는 기대감이 든다.


요즘 아빠의 관심사는 큰 손녀에게 세계사를 만화책으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빠는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 깊이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내가 중간에서 적정하게 수위 조절을 한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자꾸 강요하면 삐뚤어지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기에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말이다.


자전거나 산책으로 시작하는 할아버지와 외출은 오늘도 역시나 중고 서점을 들려 손에 쥐어지는 책 선물이나 소소한 간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다 보면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라고, 오늘도 살짝 집요한 질문은 동반된다.


“세계사 3권 어디까지 읽었어? 거기 보니까 로마와 바티칸에 ….”


어쨌든 할아버지와 중고 서점에 다녀온 기억은 시간이 지나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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