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감정 훈련

"거울 보고 웃는 얼굴 다섯 번 하고 와!"

by ROZY



“엄마 화났어?”


둘째 딸이 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다. 순간 아차, 했다.


“화난 게 아니고 집중하느라 그랬어.”

“아니 여기 인상 쓰니까 화난 줄 알았지. ”


내 미간을 가리키며 인상으로 지어진 골을 지적했다. 무언가 집중할 때 나오는 표정이지만 물리적으로 내 얼굴에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낯부끄러웠다. 더구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의 방향이 나의 미간을 가리키고 있다니! 꼭 약점을 간파당한 기분이었다.


“거울 보고 웃는 얼굴 다섯 번 하고 와”


학창 시절, 항상 내가 얼굴이 울상이거나 화가 난 표정일 때 엄마가 했던 말이다. 거울을 보고 오라고 해서 순순히 보러 가진 않지만, 결국엔 못 이긴 척 거울 앞으로 간다. 막상 거울 앞에 가면 못생긴 얼굴이 떡 하니 거울 안에 있는데, 정말 꼴 보기 싫은 모습이라 기분이 한 번 더 나빠진다. 다시 얼굴을 보면 나의 일자주름이 팔자주름이 돼버린다. 정말 못났다. 못났어.


‘다섯 번 하라고 했지만 난 세 번만 해야지.’


웃어지지 않는 표정에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본다. 정말 더 못생겨졌다. 내 눈썹이 일자인 것도 싫고 심지어 팔자주름처럼 잘 내려가는 것도 싫다. 한 번 더 억지웃음을 지어보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 된다. 그러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그놈의 현타에 정말 웃고야 만다.

“엄마, 내가 화났을 때나 속상할 때, 또 짜증 낼 때, 거울보고 다섯 번씩 웃고 오라고 했었잖아. 왜 그랬어?”


엄마는 7번째 막내딸이었다. 징징거리는 막내의 설움 또한 있는 법. 엄마가 어렸을 때 두 언니의 기에 눌려 어떤 날엔 방구석 모서리에 등을 바치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고 하셨다. 벽의 두면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기분이었다고. 엄마는 지금 보면 그것이 우울감과 비슷했는데 그런 마음들이 어렸을 적 본인 스스로 병을 만들었던 것 같아서 병원 생활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 당시 손거울이 얼굴만 한 크기로 집에 하나씩 있었는데 막내인 엄마는 언니들이 다 나가면 그 손거울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루는 시샘 많은 언니들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자 결국 울어버렸더니 언니들이 얄밉게 뽀르르 나가버렸다고 한다. 마침 손거울이 바닥에 있자, 집어서 우는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에 어린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봤어, 내 우는 얼굴이 이렇게 흉측하다는걸. 그래서 너희가 짜증 내거나 화가 났을 때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 거울을 스스로 보면 알게 될 거니까.”


자매의 기 싸움은 본능적이다. 우리 두 딸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팽팽히 대립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앉은자리 가지고도 기분 나빠한다. 삼세번 기회를 주어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때면, 여지없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울 앞으로 출발! 한 명은 안방 화장실 앞! 한 명은 삼촌 방 전신거울로!”

“거울? 으하하, 할미는 맨날 거울 보래.”


해맑은 작은 딸의 웃음으로 긴장은 풀어지지만, 아직 아이들은 어려서 깊은 뜻을 모른다. 그렇지만 킥킥거리며 대립된 감정들이 누그러지는 효과를 본다. 거울 앞에서는 화난 얼굴이 보기 싫다는 정도는 아는 거다.


예쁜 옷을 입고 머리와 얼굴을 치장하느라고만 거울을 보게 되지는 않을 거다. 조만간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점차 성장하다 보면 본인의 감정이 드러난 표정들을 거울로부터 점점 마주하며 다양한 자기의 모습을 알아가리라 믿는다.


더불어 나의 감정을 왜곡되지 않게 잘 마주할 수 있을 때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거울’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 그것이 할머니의 감정 훈련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가 <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한마디로 말하면 ‘감정’인데 이는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며,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여러 가지 변화에도 잘 적응하고 지속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집중하다가 의식적으로 표정을 고치곤 한다. 언젠가 화난 것처럼 인상의 골이 더 선명해질까 봐서 미간을 움직여본다. 이제는 나의 일자눈썹도 사랑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감히 제안드립니다.

가까운 거울 앞에서 미소 3번만 지어보세요!

신기하게도 미소가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겁니다.

그리고 푸하핫, 하고 박장대소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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