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서 죽을 것 같다가도, 우리는 뭉쳐야 결국 산다.
5살이 된 조카는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자동차와 레고에 흥미가 높은 편이다. 크고 작은 장난감으로 소위 아이템빨 놀이의 선구자다. 작은 레고도 척척 조립하는 모습이 신통하다. 작은 입술을 움직여 가며 가이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모습은 아주 똑부러져서 든든하기까지 하다.
“너희 집에 색종이 좀 있니?”
“색종이는 왜? 저번에 준비물 주고 남은 양면 색종이 있을 거 같아.”
“아까 너 퇴근하기 전에 여기서 놀 때, 셋이 영상 보면서 종이접기를 곧잘 하더라고.”
내일 오후 시간을 위해 집에 있는 색종이들을 모아 현관에 챙겨놓았다. 친정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필요할 만한 것들은 자기 전까지 하나둘씩 현관 앞에 쌓인다. 엄마가 챙겨준 반찬통이나 여벌 옷이나 물티슈 같은 것들이 생기면 아이들 등굣길에 친정집 앞을 꼭 지나며 전달하고 출근한다. 그래야 오후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전달할 양면 색종이 1/2박스만으로도 내일은 실컷 종이접기를 하고 놀기에 딱 맞다 싶었다.
"정말 이걸 너희들이 접었어?"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 종이접기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곤충과 자동차 이름을 알려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했다. 퇴근해서 들어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예쁜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손끝 야무진 거 보라며 연신 칭찬하는데, 신난 조카는 이모 앞에서 하나 더 접어보겠다고 색종이 사이를 헤집었다.
"레드 찾아?"
색상 영어 단어, 특히 레드에 빠져있던 조카의 마음에 들고자 아는 척을 좀 했더니, 이번엔 블루란다. 그런데 단, 조항이 붙었다. 뒷면이 하늘색인 블루 색종이.
상자 안에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 같은데 보니까 마지막 한 장이 둘째 딸 손에 들려 있었다. 못 본 척하려고 다른 색으로 유인하는데 꼭 그 색이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한다. 둘째 딸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자물쇠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상황은 알고 있는 듯이 그 색종이를 들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조카는 그 모습을 보고 주장이 더욱 강경해지더니 이내 고집으로 돌변했다.
아이들이 접어놓은 종이접기 작품을 칭찬하며 그쯤에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내가 괜히 부추겼나 싶었다. 나도 슬슬 직업병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영유아 간의 갈등이나 문제 상황에 닥칠 때면 현명하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는 소리를 듣지 않고 대화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속상해하긴 했지만 결국 공평하게 그 한 장의 파란색과 하늘색 양면 색종이는 1/2 조각이 되었다. 그러고는 여동생이 퇴근해 들어오자, 서둘러 각자 귀가를 하였다.
2~3명의 아이들이 원만하게 잘 놀다가도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흐름이 깨질 때가 있다. 항상 즐겁게 노는 시간이 지속되지 않는다. 부부가 매일 붙어 있거나, 부모와 아이가 매번 붙어있다고 해서 서로 좋은 영향만을 주는 건 아니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래서 많은 식구가 함께 육아에 참여할 때는 다 같이 있을 때와 적시에 적당히 살짝 떨어뜨려 각자 놀이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래서 다 같이 모여있는 시간을 2~3시간 이내로 조절하곤 한다.
"4명 이상 집합 금지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4인 이상 집합 금지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게 실제상황인가 싶었지만, 중대본(중앙안전대책본부)의 발표는 무한 반복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안내되었다.
“언니, 우리 만날까? 우리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어?”
코로나 휴원령이 내린 지 2개월 차쯤이었다. 내 평생 ‘코로나19로 인한 휴원령’이란 제목으로 공문을 이렇게 받아볼 수 있었을까 싶은 영화 같은 지난 날이었다. 어린이집에 코로나 관련 파일만 해도 코로나19 관련 체온 체크 일지, 대처 매뉴얼, 자가진단키트 배부자료 등 3년 동안 엄청난 두께로 보관했었으니 이젠 바이러스 상황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그 당시 다들 기억하겠지만, ‘4인 모여! 3인 모여!’ 하고 집집마다 현관문을 잠가 숨기 놀이 하듯 지낸 적이 있었다. 우리 역시 그 시기에는 영상 통화를 하며 소식을 전하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온갖 집콕놀이를 했다.
“집에 있는 온갖 장난감과 재료들, 저번 주부터는 온라인몰에서 종이집 큰 거 사서 일주일째 색칠했어, 오늘은 물감으로 색칠하면서 스트레스 풀었지. 아, 오늘 아침에는 요즘 유행하는 건데, 방바닥에 테이프 붙여서 땅따먹기해봤거든. 재미있더라, 나도 이젠 모르겠다. 요즘 1일 1 애니메이션이야.”
집콕 놀이의 한계가 왔다며, 우린 이제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와 여동생이 머리를 맞댔다. 그 당시 남자들은 재택근무를 했어야 해서 우리가 집을 나가야 했다.
엄마, 나, 여동생이 아이들 한 명씩 끼고 가는 셈이었다. 집합 인원 영유아 예외 적용으로 다행히 예약이 가능한 키즈펜션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 1박 2일의 떠나는 작전은 우리 가족 모두를 충족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절을 통틀어 제일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였다고 자부한다.
먼저 세 집의 남자들은 일제히 반가워했다. 그들은 가급적 우리 앞에서 격한 환영의 반응을 자제하였다. 하지만 미소에서 뿜어 나오는 표정으로 보아 ‘아주 좋은 선택’을 했다는 메시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삑삑거리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각자 생활할 수 있는 약 36시간은 기본으로 확보했을 터, 우리가 나간 후 환호를 한 번쯤은 외치지 않았을까?
그에 상응하여, 우리 여자들은 집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홀가분했다. 남자들이 없는 여행이라니! 아이들이 있어 완벽한 자유는 아니지만, 이 또한 집구석에서 일탈하는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캐릭터로 꾸며진 숙소로 놀러 간다, 떠난다!’에 신나 했다.
신나게 점프하고 미끄럼틀도 실컷 탔다. 바리바리 싸들고 간 놀잇감으로도 놀았다. 수영하는 시간으로 쌓여있던 에너지를 분출하니 얼굴들이 활짝 피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그때 아이들 셋이 한창 빠져있던 겨울왕국 2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어른들은 와인 한 병의 마개를 열었다. 이렇게 모이니까 숨통이 트인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뭉쳐서 죽을 것 같다가도, 우리는 뭉쳐야 결국 산다.
“각자 원하는 빵 하나씩만 골라야 돼. 싸울 수 있으니까 잘 고르고. 저번에 꽈배기로 다툰 거 알지? 잘 생각해. 내가 어떤 빵을 먹고 싶은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고른 메뉴를 보고 마음이 바뀔 수 있는 거야. 처음 고른 것과 바뀌어도 되니까 대신 1개만 고르는 거야.”
조카와 우리 두 딸은 좁은 빵집이어도 세 갈레로 갈라져 빵을 살핀다. 피자빵을 고른다고 했다가 에그타르트를 보았다가, 식빵을 집었다가 한다. 선택의 시간은 다가와 셋 다 하나씩 쟁반에 올려놓는다. 꽈배기 3개. 셋 다 지난번 꽈배기 다툼 사건을 잊지 않았나 보다. 기특한 아이들.
에잇, 기분이다! 하며 주스도 하나씩 더 고르라 했다.
우리는 오늘도 무언의 연대감을 느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