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은 방과 후 어린이집

그렇게 우리는 조부모와 연대하는 육아가 시작되었다.

by ROZY

"내가 이렇게 딸을 둘씩이나 낳을 줄 알았나, 뭐"


작은딸 산후조리원에서 수유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눈물은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외할머니 집에서 2주 이상을 지내는 큰딸은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고 했다. 잘 지내주는 큰딸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마웠던 감정이 들었다. 동시에 내 품에 있는 핏덩이 작은딸은 ‘둘째의 숙명'을 타고났다 생각하니 서러웠다.


조리원에서 돌아와 '두 아이 육아'와 관련된 육아서들을 모조리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리한 두 아이 육아의 포인트는 '아이의 감정 수용하기', '존중하는 대화'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출산휴가가 끝나 바로 복직할 워킹맘으로서 현 육아체제를 유지한다고 보았을 때 친정가족의 협조는 불가피했다.


"같이 키워야지, 별수 있나. 우리 할 수 있잖아!"


흔쾌히 친정 부모님은 두 팔 걷어 손녀들 육아에 동참했다. 매일 손녀들을 보지 않으면 허전해하는 유난스러운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표현도 가득했다. 작은딸이 돌이 되기 전 친정 식구들이 모여 오키나와로 자유여행도 떠났다. 우리 삼남매, 두 사위까지 9인승 승합차에 딱 맞는 인원이었다.


"언니, 나 임신했어."


우리의 멤버가 1명 추가되었다. 이제 친정 식구가 여행을 가려면 기본 10인승 이상의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소식이기도 했다. 여동생의 출산 후 손자의 등장은 우리 ‘삼남매’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했다. 엄마가 자녀를 셋 낳을 시절에는 [하나 낳아 잘 기르자!] 표어가 여기저기 붙어 있어 셋을 데리고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려고 하면 야만인 취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 딸, 아들’은 막내아들의 탄생으로 자녀 출산의 미션을 완수했기에 엄마는 자랑스럽게 여기곤 하셨다.

우리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여동생도 프리랜서이지만 워킹맘이기에 육아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3월 이후로 입소하자. 그때가 4~5개월 되니까, 지금 입소 대기를 걸어놓으면 상반기 안으로 입소가 가능할 거야. 내가 바구니 카시트로 출퇴근하면서 등하원을 할게.”


그렇게 나는 친정엄마의 어린이집에 우리 두 딸을 보내고, 내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 조카를 보내게 되었다. 등원할 때는 각자 등원했지만, 하원할 때는 내가 세 개의 카시트를 달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이코, 셋 낳느라 고생했어. 요즘 드문 젊은 엄마네!"


본의 아니게 세 아이의 엄마로 비칠 때면 어르신들이 잘 낳았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1, 8, 노, 아, 허 , 5, 9”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큰딸은 하원 후 자동차 번호판을 함께 읽었고, 할아버지는 퇴근하시면 자전거 뒤에 둘째 딸을 태워 아파트 단지와 탄천을 돌았다. 조카는 유모차를 타고 한 손은 떡뻥을 들고 한 손은 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때로는 여동생이 셋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모래놀이하기도 하고, 어느 날 저녁은 내가 셋을 데리고 작은 방에서 야간 육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부모와 연대하는 육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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