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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ug 06. 2016

<아저씨>-절박함

"아저씨, 왜 나를 구해주셨나요?"

맨 처음 아저씨라는 작품에 원빈이 출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좋은 시나리오가 얼마나 주어지지 않았으면 이런 작품에 출연할 생각을 했을까,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제목도 아니고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출연작 중에는 세 글자 "우리 형"도 있고, 이 영화는 원빈의 출세작 비스무레 한 것이 되어 버렸다. 군대를 다녀온 연예인들이 재기에 성공하는가 못하는가는 대다수의 경우 복귀작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는 법인데, 갑자기 "마법의 성"이라는 '웃기지도 않고, 야하지도 않은' 조루 콤플렉스를 지나치게 강조한 영화에 출연한 뒤로 몇 번의 드라마에서도 김 빠지는 역할들을 맡고, 근육질로 폼을 잡았다가 이전에 갖고 있던 만만한 미남 소년의 이미지마저 잃고 말아 거의 무대 뒤로 사라진 것만 같은 구본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의외의 흥행을 밟고 있다고 하니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세 글자 제목 영화처럼, 제목이 읽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영화가 보통은 뜬다는 이야기를, 이 영화가 혹,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저. 씨. (2010)

감독

이정범

출연

원빈, 김새론, 김태훈, 김효서


결론을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복귀작으로 이 영화를 아주 현명하게 선택했고, 설사 그 선택이 현명하지 않았더라도 영화의 성공을 위해 자기 몸을 잘 던졌다.  


1. 승부의 첫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연출력.

원빈은 이 영화에서 절대로 심각한 목소리와 간지를 잃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뮤직비디오 영화처럼 스타일리시하고, 삐걱거리는 흔들림이 없는 그야말로 액션과 심각한 상황에 몰입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사도 많지 않고, 섣부른 코미디가 적어도 원빈의 모습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인의 납골당에 들렀다 오기 위해서 입은 것으로 나오는 검은 슈트와 검은 남방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몸에 딱 맞게 걸쳐져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사람들이, 좀 더 특별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 관객들이 갖고 있는 시선의 템포, 심리적인 간극, 영화 속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속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씬과 씬 사이의 연결은 스피디했고, 적절한 점프컷과 속도감 있는 공간 이동, 군더더기의 설명이 별로 없는 극의 진행의 측면에서 매우 잘 만들어져 있었다. 제목은 아저씨였지만 영화의 나이는 속도감 있는 사고를 즐기는 20대의 감각을 알고 있는 젊은 나이였다. 이 영화는 얼핏, 3D 액션 게임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2. 아역 배우는 원빈의 매력을 가릴 정도로 귀엽지는 않았다.

원래 이런 영화에 출연해서 매력과 귀여움을 한껏 선사한 아역 배우는 성인 배우들의 씬 스틸러가 되어서 성인 배우들의 인기를 압도하면서 화젯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아역 배우는 원빈의 보조 역할, 또는 원빈의 이미지를 서포트하는 배역이 될 수 있을 정도의 딱 부성 본능을 일으키는 정도의 외모와 동정심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연기력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연기력의 일부였다면 정말로 뛰어난 배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원빈의 존재감을 흩어 뜨리지 않았다.


레옹에서 우리는 마틸다의 모습에 매료당한다. 그녀의 매력은 레옹의 마음을 흔들고, 장 르노라는 배우가 맡았던 레옹이라는 역할보다 마틸다의 존재감을 더 많이 기억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누가 아저씨의 소녀 역을 맡은 배우의 본명이나 외모를 영화가 끝나고서도 떠올리겠는가? (원 빈 씨의 기사는 굳이 김새론 씨의 키워드와 연결되지 않지만, 항상 김새론 씨의 기사에는 원 빈 씨라는 키워드가 얽힌다. 기사 작성 시에 이런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모습이 이 영화를 은연중에 롤리타적인 배경을 뒤에 깔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고, 원빈이 이른바 매우 정의로운 사람 또는 자식과 같이 아내를 잃어 사랑을 부을 수 있는 대상이 잠시 가까워진 이웃집 여자애뿐이었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해준다.


3. 악당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매우 비인간적이었다.

일단 악당들이 사용하는 어휘, 그리고 행동 양식, 주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무대들은 사람들로부터 적절한 공분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설정을 매우 잘 해두었던 탓에,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장기 적출을 주업으로 하는 악당이라는 설정은 어쩌면 정말로 이 시대에도 저런 악당들이 버젓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영화 속 현실 안에서는 꼭 있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리얼해 보였다.


하드고어 영화에나 나올 정도로 잔인하게 눈과 장기를 빼앗기고 봉제인형처럼 바느질된 모습으로 나타난 아역 배우의 클럽 댄서 엄마의 나신은 악당들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나쁜 놈들인가를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전달한다. 먼저, 살인 기계였던 '아저씨'가 경악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경찰들도 놀란다. 그다음에 관객들도, 이렇게 이 영화가 잔인하게 전개되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또한 영어를 구사하고 싸움실력이 극 중 특수부대 출신을 자처하는 원빈의 수준에 이른 외국인은 그 눈빛 연기와 민첩한 액션 연기, 그리고 원빈처럼 커다란 눈을 하고 있어 맞상대이자 비슷한 (살인, 행동, 소녀를 아끼는 마음 등의) 감성을 갖고 있는 라이벌의 느낌을 잘 자아 내주고 있다.


4. 영화 속의 강력한 자극, 폭력.

눈알을 뽑고, 머리에 총을 쏘아서 머리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며 죽고, 손이 꺾이고, 다리가 부러지며, 차에 타고 있던 채로 트럭이 들이받아 차 밑바닥에 피가 고인다, 칼로 찔리고 총에 맞고, 칼을 들고 치고받는 과정에서 무수히 찔리는 영상과 이에 맞는 음향효과와 소리들은 이 영화가 매우 정밀한 연출과 구성, 치밀한 각본과 콘티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배우들의 수많은 연습과 스태프들의 훈련된 조직력을 통해서 만들어졌는가를 금세 느낄 수 있게 해준다.


5. 원빈은 몸을 던지다시피 연기를 했다.

표정은 최대한 절제되어 있지만, 전당포 주인 답지 않게 잘 가꿔진 근육질의 몸매와, 되는대로 전자 이발기로 밀었지만 미용실에서 1-2만 원 주고 자른 머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잘 다듬어진 스타일리시한 머리 스타일이 금세 영화의 자연스러움을 약간 지워버리지만, 원빈이 이 액션 속에서 대역 배우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액션 연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자기 몸을 던졌는지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부분에서 체감할 수 있다.

연기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배우의 진정성이 영화의 성공의 또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면, 원빈은 성공적인 연기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서 원빈은 군대 가기 전에 전반적으로 있었던, 다른 배우에 묻어가는 듯한 연기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정을 해냈다. 물론, 대사 수는 현저히 적었고, 표정 연기와 낮게깐 저음의 목소리, 슬픈 눈빛, 무술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한 몸놀림들을 제외하고서, 그가  액션물을 제외한 다른 영화에서도 이와 같은 평가를 낳을 수 있을까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자면, 그는 앞으로 이제 무슨 역할을 하게 되건 이 영화를 기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은 이미 반이 넘는 부분이다.


악당들 앞에서 왜 자기들을 찾아왔는지를 물어보는 질문에 "옆집 아저씨(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장면마다 관객들은 움찔거리면서 조금씩 웃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성공적인 복귀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라고 배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려서 웃겼다.


마지막으로 소녀에게 학용품을 잔뜩 넣은 가방을 사주고, 한번 안아보자며 소녀를 안고 슬픈 눈매를 보이는 영화 끝장면에서 나는 일부 영화팬들이 이야기한 '정의로운 변태'라는 호칭을 붙인 감상평들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원작은 어떤 면에서 롤리타를 다룬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독 역시 젊은 아저씨들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은연중에 깔고 연출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영화 속 아저씨의 눈빛보다 원빈의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눈빛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아저씨나 원빈이나 그 소굴에 뛰어들어 싸운 것은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a. "아저씨"는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려 아무 의미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아 있을 이유를 찾기 위해서,

b.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끔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씻고 살아남아 있을 이유를 찾기 위해서,

c. "원 빈씨"는 군대 있는 동안 잃어버렸던 인기라는 대기를 다시 찾아 배우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그 절박함이 맞붙어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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