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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11. 2018

<혹성탈출_종의 전쟁>-인격의 승리

보다 우월한 인격을 가진 종이 살아남는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다른 글을

찾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초의 오리지널 작품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이 연결성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영화 시리즈의 생명력은 엄청나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불속에 숨어서

깜짝깜짝 놀라며 보았던 찰턴 헤스턴이

나왔던 버전부터 이번의 “종의 전쟁”까지

내가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시리즈물

중에 하나로, 68년도부터 50년간의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고 있다.

당시 최고의 배우인 찰톤 헤스톤이 나온 오리지널 1편은 1968년작이다. 50년 동안 내려온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류가 계속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핵을 중심으로 한 군비 경쟁을

계속한다면, 원숭이에게 행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미친 놈들! 너희들이 다 망쳤어! 젠장! 다 지옥에나 가버려! (You maniacs! You blew it up! Damn you! Damn you all to hell!)

최고의 배우였던 "찰톤 헤스턴"의

배역은 "테일러"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 탐험가로 1970년대에 동료와

함께 냉동 상태로 우주여행을

하다가 이름 모를 행성, 일본식 한자로

"惑星(혹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이 행성에서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가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내용이

나오며, 이들을 지배하는 종족이

유인원이다. 행성의 유인원 과학자가

이중에 하나인 "노바"와 "테일러"를

"교미"시켜 연구를 하려 했다는

내용도 나오는 등, 지구의 현실이

역전된 행성이 그려진다.

거의 대사가 없었던 Nova에겐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종의 전쟁"에서 인류의 퇴화 현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소녀의 이름을

유인원이 우연찮게 주운 "Nova"라는

엠블렘에서 따서 짓게 되면서, 최초의

오리지널 작품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작품의 연결성을 드러냈다.

쉐보레의 차종 브랜드 이름으로 보이는 Nova가 그의 이름이 된다.

다만 오리지널 영화는 1970년대의

지구에서 엄청난 시간이 지난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반해서, 지금의

시리즈물은 가까운 시간 대, "오바마의

육성"으로 인류를 파멸시키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실제 시간의 간극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작품과 극 중 시간대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성탈출"시리즈도

큰 그림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뒤에 와서

검색을 해보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연결성은 관객의 뇌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기억을 찾아서라도

확인하고 갖게 된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인 인간"인지도 모른다.


"인간성에 부합되는 인격"을 상실해 가는 인류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우디 헤럴슨"이 맡은 역은 무자비하고

이성의 극단에 이르러 인류와 유인원을

가리지 않는 냉정한 폭력성으로

오히려 "인간성"의 너머에 있는

야수와도 같은 "멕컬러 대령"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안성기님 급의 물배우, 우디 헤럴슨. 킬러부터 바보까지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는 인류가 말을 잃고 퇴화하는

과정에 처해서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으므로, 이러한 현상을 겪고

있는 인간부터 말살하고 유인원을

잡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자신의

아들부터 살해하고, 부대원 중에서도

말을 잃은 자를 처형한다.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랜도"를 참고했다고 한다.

전쟁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대표적인 군인 케이스이므로.)


이에 비해서 말하는 유인원 "시이저"는

훨씬 더 "인간적인 인격"을 지니고

관용과 자비, 자신의 무리와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훨씬 더

"인간다운 모습"을 연기한다.


훨씬 더 인간적인 인상을 내보인다. 오히려 시이저가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 초반에 쳐들어온 인간의 군인과

싸우고 이긴 뒤에, 사로잡힌 자를

처단하지 않고 돌려보냄으로써

화평의 메시지를 전달코자 하며,


자신의 거처에 침입하여 아내와

아들을 죽인 "맥컬러 대령"에 대한

복수심으로 지휘자의 지위를 내려

놓고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부대를 향해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잠입하려 한다.


최초의 오리지널에서 리부트 판으로

인류에서 유인원으로 지구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 대한 상상은 거의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다.


냉전이라는 미 소 양국 간의 군비 경쟁이

사라진 세계에서 이제 영화의 주제는

"인간성에 부합되는 인격"을 상실해

가는 인류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대에 있어 인류에게 중요한

메시지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던

인류의 유산인 인격의 도야와 더 높은

품성에 대한 지향이 더 이상 아무런

필요도 없는 것처럼, 국가와 국가 간의

생존 경쟁과 인종과 인종 간의 차별,

보다 강한 것과 약한 것의 구분과 차별로

원초적인 삶으로 맹렬하게 후퇴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맥컬러 대령"과 "시이저"의 대비는

그저 인간과 유인원의 나열이 아니다.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내부에 있는 "인간성"이라

할 수 있는 것과 이것이 무너져 내려

"비인간화"한 "생존"과 "인종적 또는

국가적 우수성"에 강박적으로 몰입하여

인류가 쌓아 올린 "인도주의"와 인격적인

성장을 일소한 "힘의 논리"에  빠져드는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유인원"의 특성으로  더 가까이

다가 가고 있는 듯한 "맥컬러 대령"이나

본능적인 "코바"보다 “시이저”는

자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종의 전쟁"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전쟁 씬은 2번째 작품인 "반격의 서막"

이나 첫 번째 "진화의 시작"보다도

화끈하지 않다. 오히려 인류의 존속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인간의

다른 군대가 서로 싸우는 장면에서

전형적인 전쟁 영화 씬이 나온다.  


수많은 전차와 헬리콥터, 미사일, 폭발씬이 나온다. 전형적인 전쟁 영화처럼.

이성을 잃어가며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소녀 "노바"는 감옥에 갇혀

죽어가는 "시이저"를 살리기 위해

발견되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맥컬러

대령"의 부대 막사에 들어가 고문을 당한

"시이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그를 살린다.


퇴화하는 인간에게도 남아 있는,

도움을 준 존재에게 다시 도움을

기꺼이 주고자 하는 인간성이

한번 더 강조된 순간이었다.


오리지널에서 "노바"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퇴화된 인류의 모습을 드러내고

영화 마지막의 극적인 반전인, 정체모를

행성인 줄 알았던 유인원의 행성이

실제로는 "지구"였다는 내용에 대해서

그저 양념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면,


오리지널의 노바와 종의 전쟁의 노바. 일단 머리 색상은 다르다.


"종의 전쟁"에서의 "노바"는 오리지널의

스토리를 현실로 불러 내면서,

설사 말을 할 수 없고, 보다 이성적으로

발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동료를 돕고자 하는 인간성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 주는

장치로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말 등에 올라 "노바"를

뒤에 태운 "종의 전쟁"의 포스터는

오히려 "인류"의 "인간성"을 상징하는

"시이저"가 "노바"를 포함한 범 인류적인

"인간성"을 위해 비인간적인 것과

싸우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눈은 관객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시이저"는 "인간성"을

버리고 인간의 탈을 썼을 뿐인 적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


그는 유인원, 좁게는 자신의 가족의 복수를 위해 싸운 동시에, 존엄한 인간성을 위해 싸운 것이다.


그 지도자가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하고,

이제 오리지널의 시대에 이르는 방향으로

시리즈가 더 나올 것으로 결정된 가운데,

이 영화가 어떤 양상으로 그의 살아남은

아들인 "코넬리우스", 그리고 이제

무리를 이끌어야 할 오랑우탄 "모리스"와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갈지 궁금해진다.


감옥에 잡혀 있었던 유인원과 함께 새로운 곳에 도착한 시이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현시대의 가장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는

그저 자국 우선의 정책(더 나아가서

백인 위주의 정책)을 펴기로 하면서,

다른 국가 역시 자국 우선 주의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연설을 UN에서 하고,

박수까지 받았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맥컬러 대령"적인

연설이었다. 영화 속 상황과 일면 겹쳐

보일 정도다.


이후의 시리즈물은 현재의 국제 정치

경제 상황을 어느 정도 극화 속에 녹이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유적인 질문과

답변을 내놓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속편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있다.

"시이저"의 빈 자리도 잘 채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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