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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l 30. 2015

<데인저러스 메소드> - 위대한 정신분석가들의 사생활

중은 자기 머리를 못 깍는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2012)

A Dangerous Method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비고 모르텐슨, 마이클 패스벤더, 뱅상 카셀, 사라 가돈

정보: 드라마, 스릴러 | 영국, 독일, 캐나다, 스위스 | 99 분 | 2012-05-10


이 영화를 보면서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는 관객들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인식되고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에 대해서 적어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던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다소 젊었을 때의 배우들과의 싱크로율은 높다.

(물론 최근에는 3인자인 아들러가 더 유명해졌다.)

위의 두사람들을 살짜기 조롱하는 듯한 사진이다.

실제로 비고 모르텐슨과

키이라 나이틀리, 뱅상 카셀 정도가

팬덤을 형성하고 있을만한 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영화 속의 주연은

마이클 패스벤더라고 하는 당시에

적어도 나에게는 인지도가 애매모호한

배우였다.


에로틱함을 표방하는 포스터로

유혹을 시도했던 바도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보고 싶어 했던 바는

이 정신 분석학의 두 거두인

두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이 영화가 그려낼 것인가였다.


십 수년 전에 읽었던 책인

"니체는 왜 눈물을 흘렸는가?"라는

실질적인 정신분석학의 태동을 가져온

프로이트의 스승 격인 브로이어와

이성주의의 거두 니체,

그 시대의 여장부인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그린 책의 주제와도

일면 상통하는 바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나의 흥미를 크게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루 살로메라는 자유연애의 화신인 여장부의 미모다
니체는 루살로메에 대한 연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경증에 빠진 존재로 그려진다.
프로이트가 흡수해버린 이름

이 책은 신경증의 치료법을 발견해가는

과정 중에 있었던 브로이어가 창안한

내담자 심리치료요법의 시초를 그려주면서

합리적 이성주의와 반지성적 심리주의의

사상의 이동과 혼융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니체는 언제 눈물을 흘렸는가

저자: 어빈 D. 얄롬 지음

출판사: 지리산 | 1993-09-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 소개: 미국 정신의학교수의 장편소설.

19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함.


이 영화는 그러한 신경증 자체에 대해서

보다 완성된 이론을 정립해가는 과정 중에

있었던 프로이트와 융이 실생활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었는가의

다소 가십적인 측면을 흥미거리로 해서

만들어낸 영화이다.


상담치료를 전개하는 중에 있던 융이

마치 할리우드의 "최종 분석"같은 영화처럼

심리 치료 중 의사가 환자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에 피가학적 성욕을 그려내는,

영화 "비터문"이나 "거짓말"같은 요소가

첨가되어 에로틱한 재미도 추가하였다.

케미가 엄청났던 영화였다.


화제를 끈 주제였다.
문제작품이었다.

물론, 실화를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은 관객들을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도록 이끌어주었다.


가벼운 신경증적인 증상조차도

자신 안에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는

"리비도" 이론을 통해서 인간의 행동의

동인을 성적인 내용으로 한정코자 했던

프로이트가 얼마나 수많은 논쟁의 적들을

두려워하고, 이를 미리 막기 위해서,

이론의 과학적인 확고한 지위를 위하여,

자신의 이론의 설명 범위를

치열하게 한정하면서 또한 정치적으로도

올라서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단어는 너무 선명히 각인되어서 지우기 어려울 정도로 퍼져 있다.

프로이트와 융이 어떤 이유에서

사상의 궤를 같이 하다 서로 멀어져갔나를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유대 인종과 아리아인간의 갈등이

나름 첨예했던 시대상을 그려내 준다.


비극적인 생의 

종말을 맞았던 프로이트와

융의 연인이었던 샤비나와,


반대로 거의 천수를 누리고 사라져간

융의 모습까지는 그려내지 않은 


그 시대의 비극에 대해서는 일부 함구한

영화는 영리하게도 주제 너머의 범위까지

영화적인 시공을 확대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프로이트의 정치적인

성향은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1. 일단, 유대인과 아리아인의 경계를

그려넣어, 샤비나(융의 환자이자 애인)를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는 모습.


2. 자신의 꿈을 해석하는 내용을

서슴없이 들려주는 융에 비해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숨기며 결국에는

품위를 잃기 싫어함을 드러내는 모습.


3. 성욕 이론을 넘어서는 종교 등을 포함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넣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는 행위.


세 가지를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으로서의 칼 융은 보다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1. 그는 자기가 치유하기 위해 만나게 된

환자들로부터도 듣고 배우는 경청을 한다.


2. 프로이트와는 다른 학문의 목적,

구도하는 삶, 인간적인 배움에 대한 갈구

그 자체를 지향한다.


3. 사랑에 투신하여 자신을 찾는다.


이를 통해 학문의 순수한 목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이라는

인간성의 오래된 주제가 잘 드러난다.


니체가 언제 눈물을 흘렸는가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폴리페서 또는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학문을 사용한 사람으로 두 매체에서

그려지는 프로이트의 모습만큼은

일관성이 있어서 적어도 그의 모습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만큼은  재확인되었다.


성적으로 문란한 환자(뱅상 카셀)가

샤비나의 유혹에 대해서 고민하던 융에게

"사막을 지나가다가 오아시스를 만나면

지나치지 말고 물을 마시고 가시오"라는

대사를 했던 부분이 기억이 난다.

뱅상 카셀은 욕망을 드러내는 자아의 모습을 연기한다.

우리의 위대하고 고고한 융이

무너져버린 대사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심리분석이라는

주제가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생물학

등으로 분화되고 뇌과학까지 이어지는

보다 정밀한, 첨단의 시대까지 이른

발전상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위대한 인류의 정신분석을 시도했던

학자들조차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낼 수 있는 주도적인 능력은

실상 없었다는 진실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지옥도를

통해서 인간성을 분석해야만 할 동기를

발견하고 이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정신분석학의 인류에 대한 공헌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왜 이 시대에 아들러가 인정 받는지에

대한 힌트가 이 영화에 녹여져 있기

때문에 바둑의 포석을 두듯이

먼저 이 글을 띄우고 있는 것뿐이다.


내가 이해한 아들러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 시간이 생긴다면 적어보려한다.

어쩌면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더 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기대를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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