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각과 후각>

사이좋은 두 사람, 애정의 곡선, 이름의 운명적 파자 해석

by Roman

1. 사이좋은 두 사람

2. 애정의 곡선

3. 이름의 운명적 파자 해석



1. 사이좋은 두 사람


나는 미정을 선각이라고 불렀다. 먼저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 그리고 미정은 나를 후각이라고 불렀다. 나중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 도장에 처음 간 그날 입도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와 커피숍에서 3~4시간에 이르는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도인에 가깝고,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대사들이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내용들과 닮은 것으로 보아, '도'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꼭 도장이 아닌 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푸는 것을 미정이 감동에 찬 눈으로 지켜보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어설픈 심리학 지식과 이전까지 읽었던 책들을 모두 '도'라는 대상에 연결시키는 과정이었다. 신비로운 현상 자체에 완전히 혹하고 나니, 그 과정 중에 먼저 있었던 그가 신비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말들을 늘어놓는 내가 그에게는 도장에 찾아온 사람들 중에 상당히 특이한 변종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았다. 그렇다, 누가 노자도덕경과 하루키를 연결시키겠는가 예전이었든 지금이었든 간에... 어지간히 비약이 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요 '도'라는 것은 먼저 수련했다고 항상 먼저 더 깨달아가는 것은 아닌 거예요. 그리고 도에 도달하는 길은 산에 들어가거나 초야에 묻힘으로써만 생기는 것이 아니죠. 시장판 도라고 얘기해요. 단지, 도장이 있는 것은 그 수도하는 의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집중력을 갖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자리죠."


"그 도장에 선인들과 다른 몇몇 도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단지, 그 깨달음에 모든 것을 다 붓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죠. 나의 경우에도 프랑스 유학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선인 님의 말을 따라 한국에 남아 있는걸요. 선인 님이 그런 말을 하셨어요. 앞으로 2-3년 내에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이때 도를 닦지 않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고요."


"나는 이제 3개월 정도 지나면, 입대를 해야 돼요."
"가지 말라는 말은 않겠어요. 내가 살려줄 테니까요."

이때,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옆자리로 다가가 앉을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비극은 연속되고 있는 것이다......


2. 애정의 곡선


그 이후로도 그 두 사람은 꼭 붙어 같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도장은 아침 7시와 저녁 7시, 정오와 자정 네 번에 걸쳐서 수도를 했다. 거의 매일 수도를 하러 가게 되면 컴컴한 방에 들어가 촛불을 켜놓고 오로지 주문을 외워 머리를 맑게 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이른바 교화 시간이라고 하여, 전경을 해석하거나 도를 빌어 세상을 이해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는 이른바 관심이 가질 않았다. 도저히 머리 속에 그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집어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QT라고 하여 교회에서 행하고는 하는 명상이 수도라는 이름에서 이곳에서는 수행되고 있는 것이라 그럭저럭 비슷한 습관에 연결시킬 수는 있었지만, 성경으로나 상식으로나 그 어느 쪽에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 교화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다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일종의 신비현상이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에 건강이 찾아온다는 수도가 나날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었고, 이를테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같은 것도 왕성하게 일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을 보다 보면,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도'를 찾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려지고 있죠. 이를테면, 그 상황에서 최적일 수 있는 행동과 말을 하는 것에 그들은 아주 능통합니다."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그에게 건넸다.


"가져가서 읽어도 되나요."

그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깊어갔던 이유 중에 하나는, 9살 연장자인 그가 단 한 번도 존댓말 하기를 그만둔 적이 없었고, 나를 어른답게 대접하고 있어서 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야기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듣고,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이 시작되면, 7시부터 밤 9시까지 그 대화는 그칠 줄을 몰랐다.
"무언가 얻고자 하면 먼저 주라고 하는 도덕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그 한 가지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미정 씨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이 책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를 먼저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상대방이 받은 것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어느새 말투마저 비슷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얼 받고 싶은 건지요? 후각님은?"

지금 생각하면, 그것들 중에 어떤 의미 있는 통찰이 있었는지는 단 한 가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감동할만한 말들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따른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다.
"최적의 인간관계요, 더 이상 좋아질 이유도, 그렇다고 나빠질 이유도 없는 아주아주 딱 좋은 그런 관계를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인연이라는 것을 도장에서는 여러 생을 통해서 계속해서 접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아마도 이전 세상에서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만남은 때로 너무 좋았거나, 반대로 너무 나빴었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최적의 좋은 만남이 되기 위한 순간인지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렇지 않을까요 후각님?"

그 눈빛은 내가 느끼기엔 너무나 뜨거웠다. 그리고 휘어잡아오는 것 같은 목소리는 내내 귓속 깊숙이로 부드럽고도 끈끈하게 파고들어오는 것 같았다.

저절로 끌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왔다.

이 도장이 제공하는 교화의 내용이 다루는 영역은 실상 대단히 넓었다. 불교적인 윤회설과 상제님이라 부르는 강증산을 '나는 길이요 진리라고 하는' 예수화 시킨 기독교적 색채와 이슬람의 강력한 의식 존중의 계율 그리고 셔머니즘과 기복신앙이 조합을 이룬 종합 선물 세트인 것이 바로 이 도장이 말하는 짝퉁 도교였다. 그러나, 그 종합 선물 세트 안에서 진정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미정의 애정과 셔머니즘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배합은 실제의 삶 속에서 그렇게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신비한 현상에 조금씩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극은 이제 바야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3 이름의 운명적 파자 해석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화 시간은 따분한 이야기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러니까, 선인들이라고 하는 도인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무척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순간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른바 감화력이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파자 놀음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교화를 펼쳐나가는 이야기의 한 방식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던 중에, 이 '도장'에 또한 흐르고 있는 사상은 필연과, 숙명,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결정주의적인 사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자를 끄집어내어 이를 해석하고 있었다.


"朴 正 熙라는 이름의 한자를 분해하면, 박(朴)이라는 글자는 열 십(十), 여덟 팔(八), 점 복(卜)으로 이뤄져 점을 쳐보니, 18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을 갖고 있고, 정(正)은 한 일(一)에 그칠지(止)가 합쳐져 한 번에 그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끝으로 희(熙)는 신하 신(臣)에 뱀 사(巳), 몸 기(己)에 마음 심(心)으로 구성됐는데, 마음 심(心)은 불 화(火) 변과 같은 뜻이지요. 즉, 박정희(朴正熙) 이름을 파자(破子)한 의미는 그의 18년(十八)년 집권이 신하(臣)가 자신(己)을 향해 쏜 네 발(火)의 총으로 인해 단번(一)에 멈춰진다(止)가 되지요. 그 한자 이름의 파자대로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도인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파자 놀음에 어안이 벙해진 표정이 되어버렸다. 전경이라는 책을 해석하는 논리는 다름 아닌 이러한 방식의 해석이기 나름인데, 바로, 이 아귀가 딱 들어맞는 파자에 놀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 파자 놀음 속에 있는 어떤 숙명적인 암호 발견의 지혜라는 것이 도를 닦음으로써도 파악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납득시켰던 것 같았다.


파자 놀음을 보다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이러한 숙명론적, 운명론적인 해석에는 착실하게 따라붙는 오류들이 여러 군데 숨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난 뒤에서였다.


'박'자가 18년간의 치세와 연관되는 것이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박씨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정'자를 가진 사람들도 어떤 비극적인 결말과 유사한 맺음을 해야 하는데, 이름에 바를 '정'이 들어갔다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불화 자와 신하 신자라는 분해가 정당하려면 같은 한자를 가진 사람들의 운명도 같은 이치의 결과를 맞아야 한다. 그러나 이름에 그 한자를 사용했다고 다들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자든 숫자든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은 누구나 달라질 수 있는 반면에 이미 죽은 사람 또는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우겨 넣을 수 있는 해석이 보다 잘 만들어진다.

하나하나씩 파자를 해갔던 논리를 뜯어보면, 단지, 그것은 도장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무언가 숙명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호응하기 위한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든가, 정체불명의 말들로 남아 있는 이른바 해석이 이미 내려져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많은 동서양의 파자 놀음은 바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운명과 숙명, 그리고 결정론적인 인생관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달콤한 선물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파자 놀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점 하나는 다름 아닌,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을 때, 그 온전한 아귀가 맞춰지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지 그 전에는 그런 해석의 가능성 자체가 사실상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파자 놀음을 듣던 중에 이렇게 물어보긴 했었다.


"그럼, 내 이름을 한번 파자해 주십시오"

선인은 내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그렸고 약 4~5초간 생각을 하며 그 글씨를 쳐다보았다. 그다음에 그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이름의 울림을 들어보시지요. 기운이 가득히 들어있는 이름이 아닌가요? 벌써, 딱 '도'를 닦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이 이름 안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진지하면서도 삐딱하게 그 선인의 이야기에 대해서 한쪽 입술을 실룩이며 들어 올렸다. '적어도, 작명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도는 파악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정말로 내게 남아 있게 될 도장에 대한 미련은 단지, 두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미정과 이제 또 나타날 신비현상이었다. 비극이 갑자기 잠시 미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