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와 신비, 상실의 시대와 상실의 추억
1. 유토피아와 신비를 꿈꾸며
2. 상실의 시대와 상실의 추억
1. 유토피아와 신비를 꿈꾸며
교회에도 일주일에 한 번 나가고, 도장은 매일 나가는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한 달 여가 흘러갔다. 도장에서는 입도식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게는 이 사람들이 자본주의와는 상관없는 사회를 꾸며가는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 와 있는 사람들은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오손도손 없는 가운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교화에서는 이른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리만 남발하였지만, 그래도, 도장이라는 곳에는 나름대로 유토피아의 꿈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공동체의 그런 이상 비슷한 것이 조금씩 맘에 들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적어도, 직업화된 종교조직의 세계는 아니었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가진 도인이 인정받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자기 뒤편으로 많이 끌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있었다. 한창, 신앙에 몰입했을 때는 전도 같은 것도 거리에서 잘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꼬셔서 교회에 데려가는 일도 잘하곤 했었으니까.
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 이상의 도인들을 입도시켜야만 한다. 그러자면, 거리에 나가 포덕을 죽자고 해서 수십 명 이상을 도장에 데려와야 하는데, 말발이 안 통하면 사기성, 사기성이 안 통하면 외모, 외모가 안 통하면 다른 매력이 있어야 아마도 그런 성과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 불합리한 교화에 따라올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그치질 않았다.
선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특출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점이 아마도 미정이 나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발휘되었던 것 같은 "도"라는 대상과는 조금 비켜나간 입도의 이유를 만들어내는지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정은 나를 데려온 뒤로 더 이상의 포덕에 열중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충분한 교화를 겪지 않은 후각을 챙겨서 포덕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도장에 융화되고, 교화를 통해서 온전하게 도장의 논리를 잘 흡수한 도인이 아니면, 일단, 포덕을 시키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장을 다닌 뒤에 교화 시간에 질려버렸던 나는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핑계로 저녁 7시의 수도만을 하고 집에 들어가기로 작정을 했다. 적어도, 제정신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4번의 수도를 모두 마치고 4번의 교화를 받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교화는 보통은 상식적으로도 올바를 수 있는 문구로부터 시작하나, 그 과정에서 귀신과 도인에 대한 신비가 되풀이되어 이야기되고, 종말론이 반복된다. 2-3년 내에 사람들이 종말에 임하기 전에 도통하거나 의통하여 사람들을 살려야 하고,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되어야 한다는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들...... 100년은 족히 지났을 그 강증산이라는 분의 전경에 있는 단어들로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은 귀신과 환생을 엮어 넣는다.
그건, 생각해보면, 하나의 납득할만한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몸부림일 따름이다. 선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부분은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 이외에는 아무런 신비한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이 도장에 있는 그 이유, 그리고, 이렇게 도교를 전파하여야 할 이유를 그들은 끊임없이 만들어내어야만 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그것을 다른 도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상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개구리 선인은 또 한 번의 암시를 걸었다.
"때로, 도인들 중에는 수도 도중에 발바닥에서 불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되거나, 자세를 취한 팔 주변에 기운이 빙빙 도는 것을 느끼게 돼."
그가, ~지요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순간 불쑥 화가 났다. '왜, 갑자기 반말이야?'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많이 친해진 것은 맞는 탓에, 20세나 많은 삼촌뻘의 그에게 눈을 부라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요?"
"물론. 곧 느끼게 돼, 그리고 그걸 느끼지 않는 도인은 거의 없어."
"오오..."
수도를 할 때마다, 그런 현상이 내게도 벌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해보았다. 그러나 몇 주간이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고 머리를 아무리 비워내어도, 그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현상마저 벌어지지 않는다면, 도장에 나올 이유는 단지, 미정 때문일 것이었다.
"미정 선각님, 왜 제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가요?"
"글세요, 나조차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이 없었어요. 난, 도인들 중에 미간의 가운데에 3번째의 눈이 열려서 수도 중에 자기의 전생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주 깨끗한 영상으로 전생의 자기의 모습이 보였데요. 마치 영화관에 앉아서 자기가 출연하는 영화를 똑똑히 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미정 선각님, 우리가 그런 말들을 꼭 믿어야 하는 걸까요?' 그 말은 입속으로 쑥 돌아들어가 버렸다. 도장에 대한 의문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정 선각이 이 도장을 다니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며 알아가고 싶었다.
미정이 말하고 있는 그 경지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경지에 닿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동시에 미정이 닿을 수 없는 경지에까지 올라, 미정을 내려다보고 끌어올려주고 싶었다.
교화는 말하고 있었다. '남을 잘되게 하라'라고,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잘되게 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교리로 갖고 있는 집단이라면, 그것이 설사 허위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더라도, 뭐가 나쁜 것이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미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도장을 나서서 압구정의 거리를 활보하면, 몸도 마음도 깨끗하여, 머리도 깨끗해진 상태로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인을 옆구리에 딱 붙이고 있는 남자였으니 그 이상의 행복한 경지는 또한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또한 들었다.
더구나 미정은 나의 집안이나 돈이나 지위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벗어나서 느껴보게 되는 순수한 애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비극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2. 상실의 시대와 상실의 추억
"상실의 시대를 잘 읽어보았나요?"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후각님이 주는 책이니 아주 정성스럽게 읽을 수밖에요"
"그 속에서 도의 발현을 볼 수가 있었어요."
"정말로요?"
"그 "나"라고 하는 인물의 말들과 행동, 그것은 더 이상 그 이상의 적정이라는 것이 없을 만큼 이치에 합당하고 주변의 공기를 읽어낸 것 같은 것들이에요. 도덕경에 보면, 도는 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이 나와요."
"교화 시간에도 예전엔가 나왔던 말이었지요"
그랬었나? 들어본 기억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주인공의 행동이 꼭 그러했단 말인가요?"
"주전자라는 틀이 있으면, 물은 주전자 모양을 하고 그 안에 담깁니다. 그리고, 사각의 틀에서는 사각으로, 세모에서는 세모로, 원에서는 원으로"
"맞아요."
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덕에 말 많은 나는 정말로, 기쁨에 가득 찬 마음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수가 있었다.
"우리가 도장에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도장이라는 틀이 제공하는 환경에 맞춰, 우리만의 도를 찾아내게 되는 것이지, 어디선가 형태가 완전히 굳혀진 '도'라는 대상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우리라는 존재의 내외부에 맞는 가장 적정의 바로 그 이치에 합당한 것이 다름 아닌 '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렇다면..."
"작가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겠지만, 주인공은 자기가 속해있는 환경 속에서 가장 멋있는 것이나, 감동적인 것, 너무 재미있거나 가장 흥미진진한 것을 대사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장 적절한 것만을 선택하고 있죠. 그 환경과 그 상대, 그리고 그 입장, 그 스토리의 상황."
"그것이 바로 '도'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로 진심으로 그 이야기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꼭 열어보고 싶었던 보물상자를 여는 키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그것이 바로 도가 발현하는 모습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도가 발현된 모습에 사람들은 같은 동감을 느꼈던 것이죠. 그래서 그 책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가 팔려나갔습니다."
깊은 성찰 속에서 그 말들을 생각해서 꺼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그 자신 과연 그렇게 같이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가장 들었을 때, 좋아하고 이른바, 감동할만한 말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의 시선을 따라, 그의 미세한 변화를 따라 해낸 말이었으니. 그 속에 올바른 사색의 흔적이 들어있었을 리는 만무하였다.
또한 사실상 하루키라는 그 작가는 감각적인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그 과장된 어법에 있어서의 매력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막연히 적절이나 적정, 최적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글을 단정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미심쩍은 사유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화 상대자가 이미 예전부터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정은 그 순간 그 말에 진심으로 감탄했던 것이다. '맞아요, 맞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껏 애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볼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홍조가 떠올랐고, 촉촉함에 젖은 눈망울이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감싸 안은 그녀의 어깨에서 어떤 진동과 뜨거움이 느껴져 오고 있었다.
"나, 지금 후각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오고, 몸안의 테스토스테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느끼면서 동시에 가슴이 벌렁 이고, 콧구멍이 수축하며, 동공이 일순 확장되는 현상을 겪었다.
"...... 그런데,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을 거야......"
약간 끄는 목소리에 가득히 묻어있는 애교가 마치 문어의 따뜻한 촉수라도 된 것처럼, 귓불을 스쳐 달팽이관을 향해서 스멀스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 같은 종류의 화학작용이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으로 겪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매우 당황하였다.
"그렇죠?"
그러고 나서 미정의 눈은 반쯤 감기는 듯하여, 그 표정은 고혹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물대로 여문 육체 그리고 감동의 흥분이 회오리치는 그의 머릿속...... 나는 초속을 벗어난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눈이 내린 도로, 압구정 역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서 도로 한복판을 차지한 채로 멍하니 약 5분 동안의 긴 침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제목: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연상녀 앞에서의 연애 초짜가 해본 초스피드의 사색
9살 많은 여자라... 9살. 일단, 그를 애인이랍시고, 집에 데려가면, 부모님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건 무시하고라도,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그와 헤어져야 한다. 그가 그 2년남짓, 더 멋진 후각을 하나 더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과연 어느 보험사가 해준단 말인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그는 혼기를 한참 놓친 30중 반이 된다. 그가 그 기간 동안 선 같은 것을 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이 사회가 해줄 수 있는가? 제대하고 취업까지 마치고 나면, 그는 30대 후반에 다다르게 된다, 과연 그가 그때까지 지금의 아름다움 울 유지 하리라는 보장은 어느 피부과와 성형외과에서 그 처방을 준단 말인가?
취업을 한 뒤에 자신의 집안 형편을 생각할 때, 온전한 가정을 이루거나 안정적인 결혼을 할 수 있기까지는 대략 3-4년은 들 것이다. 그럼 그의 나이는 얼추 40이다. 그때까지 둘 간의 사랑이 유효하다고는 그 어떤 생물학자나 사랑의 전문가가 보증서를 지참해서 안심시켜준단 말인가? 그를 고생시키고, 그가 원하는 것을 바로 줄 수 없는 그 고통의 나날들은 어떻게 버텨갈 것인가?
그 무엇보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살게끔 해주는 돈과는 상관없는 도장에서 우리 둘이 계속 벗어나지 못한 채 살게 된다면, 도대체 우리 앞날에는 무엇이 있다고 그 어느 도인이나 선인이 미리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생각들 중에는 진정으로 미정을 생각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인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말하는 단순한 성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성욕만으로 맺어진 관계로는 가장 적절한 관계의 거리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사랑이 오가도록 이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납득할 수가 없다(드라마틱한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사랑은 왜 이루어지는 것일까. 사람을 사랑으로 이끄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는데, 그중에 한두 가지 정도의 조건은 혹,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에 그 어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이다. 아니다. 알고 있기로는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남을 돕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부정확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를 몰고 들어가는 것은 그를 돕는 일이 될 수 없다......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답도 제대로 안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득히 머리를 채우더니 난수 계산과 프로그래밍된 공식의 연산이 완료되어 산출된 결과 값으로서 대답이 나오게 되었다.
그 시점의 나는 인생 전반에 걸쳐서 완결되는 사랑을 바라는, 이를테면, 연애계의 애송이 내지는 풋내기였을 뿐이었고, 너무도 소심하기 그지없었기에 아래와 같은 아주 엉뚱한 답변이 나오게 되었다.
"...... 우리 앞엔 아직 많은 시간들이 있고,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해요......"
그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팽팽하게 피어오르던 긴장감이 일순 잠잠하게 가라앉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그 무언가는 잘 상상해낼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다른 최적의 것을 찾게 되겠죠......"
그렇다, 나는 하루키 소설 속에서 항상 지금 최적의 대답이 무엇인가를 척척 알아내는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독자가 생각하는 최적에 호응하는 것이 그 소설 속의 현장에 있는 주인공이 요구하는 최적의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극화와 현실은 결국 동일시될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을 갖고 있는 것임을.
비극은 왜 그렇게 다가오다 약간 비켜나가는 듯 하기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