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는 발바닥
3. 불타오르는 발바닥
3. 불타오르는 발바닥
"매년 이 날이 되면, 1년 중에 가장 기가 많이 내리지요. 자정 12시를 기해서 서울에서 가장 큰 도장인 망우리 도장에 서울의 각 도장에서 온 도인들이 한 곳에 모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 지역에 가장 큰 도장에 도인들이 모입니다."
"몇 명 정도나 모이게 되는지요?"
"직접 가야 얼마나 되는지 알겁니다. 그동안 모인 도인들이 얼만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개구리 선인은 씨꺼멓고도 둥근 얼굴과 커다란 몸집으로 내려다보며 능글맞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사기성 가득한 말들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이 온 사람들을 제일 처음 대면하는 것은 주로 그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또 하나의 선인과 꽃미남같이 생긴 좀 젊은 선인이 한명 더 있었는데, 그는 왠지 말발이 좀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교화 시간에 시선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그는 전면에 나서는 법이 별로 없었다.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그리고, 도장에서는 가끔 입도식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해 받는 돈 이외에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돈 같은 것이 있는지, 지속적인 종교적 헌금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그냥 도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돈은 도를 닦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하고, 돈을 혐오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를 밥먹듯이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돈에 주리고 힘든가를 오히려 확실하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있었다.
바로 잠시후, 망우리 도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간 순간, 이 돈이 어떻게 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종교조직의 노란색으로 도색된 최신형의 45인승 버스가 눈 앞에 보였다. 도대체 이것을 만드는 돈은 어디로부터 들어오는 것일까...
도장은 5층 정도, 정치 정당 당사 건물 수준의 어느정도 큰 평수를 지닌 건물이었다. 밤 11시를 기해서 그 건물의 주차장에는 같은 도색을 하고, 이 도장이 따르고 있는 교파의 이름이 새겨진 차량들이 수십대 이상 가득히 차 있었다. 건물에 들어가서야 말로만 듣던 이 집단 내 도인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정신 나간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수천 명 이상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층의 식당에서 식탁위에 순식간에 음식이 차려지고, 먹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자원봉사자인 무급의 도인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경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교회 행사라고 하더라도, 거의 완벽한 무급의 봉사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입도식 때 입는 종류의 하얀 한복을 걸쳐입고, 서서히 계단을 걸어올라가 2층과 3층, 4층, 5층을 채워갔다. 어림잡아 1층에는 천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화시간을 맞아서 일단, 간략한 문구 해석을 하고, 생활 속에서의 그 문구의 적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바야흐로 12시, 자정, 108자의 주문을 모든 도인들이 눈을 감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 침잠한 느낌에 빠지게 되었다.
교회의 경우에는, 부흥회라고 하여 광적인 찬양이나 기도문 낭독, 통성 기도를 통해서 구성원들의 마인드를 조절하고 일종의 흥분상태로 몰아간다. 도장의 이 연중 행사는 바로 교회의 부흥회라고 보면 딱 맞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회의 그 의도된 광란과는 이것은 약간 차원이 다른 파동을 갖고 있었다. 음이 달리지는 않았으나, 이른바 성조라고 불리우는 것이 주문을 말할 때 붙게 되는데, 그것을 각각 다른 층에서 3-4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약간씩 다른 타이밍으로 부르기 시작하니,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마치 주문의 바다가 바로 앞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연출하고 있었다.
바하가 작곡한 종교음악들과는 또한 다르게, 비장미와 웅장함 그리고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느낌과 애환, 사회적 궁핍과 모종의 억압 너머에 잠재한 본성들이 차분히 자기 고백을 하면서 점점 개방되고 있는 그런 기분이 밀려들어왔다.
그 순간 말로 표현도 못할 정도로 뜨거운 느낌이 발바닥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눈을 뜨고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20여명 중에 한명꼴로 발바닥에 뜨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외의 사람들은 그러한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바닥에 손을 대어보니 분명히 돗자리가 깔려진 차가운 마룻바닥에 불과한데 발바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불이 그 안으로 스며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뒤의 선인은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1시간 정도의 암송이 끝나면서, 천천히 그 뜨거움은 가라앉아갔다.
그것은 물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암시에 연관되는 최면효과가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사람들 중의 일부, 즉, 최면 감응이 어느정도 잘 이루어지는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이고, 분명히 20분의 1정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그 어느 종교집단에 가서든, 그 내적인 최면 현상을 똑똑한 음성으로 증언하거나 보여주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교에 관련된 내적기적이 일어나는 현상을 똑똑히 때마다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종교에 대한 더한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조건반사와도 같이 일정한 환경과 일정한 자극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그리고 그 환경과 자극이 끝나는 시점에 그것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또한 주변의 신뢰할만한 누군가가 모종의 암시를 제공하고, 망우리의 도교 도장과 비슷한 환경하에서 주문을 수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켜준다면, 갑작스럽게 발바닥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마냥 암시된 일이 나의 내부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감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은 물론, 이러한 최면으로부터 어느정도는 자유롭다. 그러나 아는가, 우리는 언제나 모종의 암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그것. 알마니의 양복이나 크리찬디올의 넥타이, 휴고우먼의 향수가 광고와 그 색채, 상품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처럼 암시를 걸고, 그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느끼게끔 이끌어준다는 것을?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느꼈던 그 모종의 통합감은 끊임없는 암시와 이에 따르는 최면이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끊임없이 매스컴과 사람들이 암시하는 시대를 지나쳐왔던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정권으로 경제개발과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을 뿐이었던 그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비극은 뜨겁게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