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道)를 닦으며, 도(刀)를 팔다>

미정에게 최고급 커피를, 칼에 대해 아세요, 종교 집단이 다른 점

by Roman

1. 미정에게 최고급 커피를
2. 칼에 대해 아세요?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집단이 다른 점


1. 미정에게 최고급 커피를


미정에게 따뜻하고도 맛있는 커피를 압구정동의 “채플린”이나 “현대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주고 싶었다. 적어도, 무너져 있는 무엇인가를 다시 따뜻하게 불 지르고 싶었다. 용기 없이 도망쳤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그에게 끌어당기는 것과 그를 끌어당기는 마음 한구석의 미련이란 것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발바닥이 뜨거워진 이야기는 좋은 대화 소재였다.


"그렇게 뜨거운 느낌이 신체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이를 두고 사탄이 들었다 내지는 악령이 씌었다고 했겠지요."
"도장에서는 신이 내렸다거나 기가 올랐다, 기가 돌았다고 표현하지요."
그의 눈동자가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정 선각은 그러한 일이 없었나요?"
"글세요, 많은 사람들이 겪었다는 이야기들은 들어보았지만, 정작 나는 그러한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요."
뭔가, 그보다 한걸음 앞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그에게 보란 듯이 값비싼 커피 한잔 사주질 못하고 있었다.


미정의 가정형편은 그다지 잘 사는 편이 되질 못해서, 홀어머니가 아침에 장사를 나가서 그를 부양했고, 취업 연령도 지나친 그는 그저 도장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다.


의통하고 싶은 것일까? 정말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 순간, 그가 들고 있던 커피잔이 기울면서, 그의 팔뚝으로 뜨거운 커피가 흘러내렸다. 부드러운 앙골라 스웨터 소매에 금세 얼룩이 배여 들었다. 소매를 걷는 순간, 그의 팔뚝에 기다란 상처 자국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건?"
"학교에 다닐 때 계단을 잘못 걸어 다니다가, 그만, 넘어져서 굴렀어요."


"굉장히 아팠을 것 같은데요? 그냥 구른 정도로 다친 자국 같지는 않은데요."
"시멘트 바닥과 난간에 걸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데굴데굴 굴렀어요.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누워있었고요."


그때 그의 눈빛이 희미한 혼돈과 원망의 눈빛으로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의 착란 같은 것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그때의 나는 단순히 과장된 제스처를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의 도화선이 바야흐로 불꽃을 내면서 타기 시작한 하나의 전조였다.

그것도 모른 채로 그저, 손잡이가 좀 더 잡히기 쉬운 커피잔이 있고, 커피가 쏟아지면 금세 사방에서 종업원들이 세제를 묻힌 거즈를 들고 달려오는 좀 더 호화롭고 서비스 좋은 커피숍에서 그와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다가올 비극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에 좀 더 몰입하려고 했다.

어느 곳이든 좀 더 나은 서비스가 있는 곳에 같이 있고 싶었다.



밤늦게 그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그가 1-2년 내에 있을 종말에 대비해서 이타적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일종의 성녀 같은 이미지로 어둠에 섞여 집 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만약, 그 앞에 기대하고 원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들어왔다.


그에겐 분명히, 최소한의 객관성이라는 잣대가 교육을 통해서나 삶을 통해서 형성되어 있었지만, 왜 이 도장에 거하는 것일까? 왜 아무런 신비현상조차 경험하지 못한 채로, 그저 도를 닦고 있었던 것일까?



2. 칼에 대해 아세요?


Vector 마케팅 코리아라고 하는 회사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지금은 잘 알지 못한다. 그 당시에 나는 단지 Presentation을 30번만 하면, 바로 월급여를 주겠다고 하는 그 회사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었다. 도를 닦고 있던 기간의 딱 중간이었다.


Presentation이란 다름 아닌 주방용 칼의 세계 제 이인자라 자부하는 Cutco라는 브랜드의 칼을 소비자들에게 약 1시간여에 걸쳐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아르바이트는 텔레마케팅과 방문 판매를 연결했다.


그 브랜드의 칼은, 이른바, 60회 이상의 제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자칭 보검 수준의 칼이었고,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종래의 주방용 칼로 20-30번 썰어서 끊어지는 동아줄을 그 칼로는 단 1회에 잘라버리거나, 가죽을 손에 들고 작은 나이프로 종이를 자르듯이 가볍게 잘라내거나, 가위로 10원짜리의 테두리를 오려내는 것 등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Full Set 총 16가지의 칼을 설명하고 나면, 1시간여는 훌쩍 지나가는 Presentation이 바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칼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물론, 하루에 한 번씩만 하고 그다음에 30회를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만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급여가 나온다는 것이 애초에 설명된 내용이었지만, 그들은 영악했다.


만약, Presentation 중에 100만 원 이상의 칼을 팔면 인센티브로서 판매액의 10%를 주고, 500만 원 이상을 팔면, 판매액의 15%. 그리고, 1,000만 원 이상을 팔게 되면, 20% 이상을 주는 동시에 월급까지 받을 수 있는 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핏 도장의 구조와 비슷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한 달 정도에 데려오는 사람에 따라서, 도인들은 자신의 직급을 높여가며, 일반 도인들과는 상관없는 모종의 수당이나, 모종의 대우 또는 종말에 가까운 시기에 있어서, 무형의 어떤 지위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던가......


이 묘한 일치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 점점 더 도장의 교화의 가르침이나 포덕이라는 도교의 전도행위가 도대체 세일즈와 다른 것은 무엇이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칼 파는 일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미정에게 최고급의 커피를 사주고, 그리고 부모님께 나름대로 수완이 있는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3집 정도씩만 들리면, 10일이면 충분히 목표치의 Presentation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상,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만에 100만 원어치를 팔았던 사람들 중에 80%는 역시, 친척들을 부추겨서, 강매를 한 상황이었으니. 보험이나 다단계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차별점은 교육의 치밀함이었다.


심리학자들이 짠 각본으로 고객에게 말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칼을 판다는 말부터가 나오지 않았다. 새파란 젊은이가 가정용 제품을 판다고 주부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으니, 받는 입장에서는 이상할 수 있었지만, 이 자체도 파악이 되어 있어, 무조건 주부에게는 '어머니'라는 명칭을 써서 안심시키도록 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찾아가서, Cutco라는 칼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도중에 때때로 자기 자신에 대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道)를 닦으며, 도(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실적을 약간 혀 꼬인 발음으로 질책하는 재미 교포 출신 지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는 잘 못 팔아도, 지금 '도'를 닦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것만큼은 지점장님에게도 닦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움에 움츠러드는 그를 보며 조롱했었다.


그다지 교화에 집중하지 않는 나를 개구리 왕눈이 눈을 하고 노려보는 선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는 잘 못 닦아도, 지금 '도'를 팔고 있거든요. 그것만큼은 선인 님에게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려버리면서 고개를 흔드는 그를 보며 또한 조롱조의 미소를 지었다.

종교 조직과 세일즈 조직이 도대체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상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물건을 팔아재끼는 것과 종교가 말하는 교리나 신을 믿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종교를 전도하는 것. 그것이 갖고 있는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


칼은 칼대로 팔리고 있었지만, 도는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었다. 칼을 설명하는 지식은 1주일 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도'에 대한 허무맹랑한 소리는 내부로 스며들어 체화 되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 사회에서 뭔가를 파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도(道)를 닦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라는 정리가 이뤄졌다.

그러나 비극은 절대로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이상 피해가지를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집단이 다른 점


도장보다 칼파는 곳이 좋았던 이유는 꼭,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맞는가 아닌가의 측면에 있지만은 않았다. 다른 이유도 보였다.

도장에서 교세 확장으로 건축물을 지을 때에도 이들은 일반적인 경제의 개념을 벗어난 신자들의 철저한 봉사를 요구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곳들에도 커다란 도장을 세워두었는데, 포천에 있는 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들은 이야기는 귀와 눈을 다시 한번 더 의심하게끔 이끌었다.


민속촌이나 경복궁, 비원 등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궁이 옛날 조선시대에나 만들었음직한 모양으로 높이 솟아 있는데, 이를 만드는 데에 들어간 인력은 오로지 일군으로서 직접 돌을 나르고, 무거운 나무를 나르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도인의 돈뿐만 아니라 에너지도 원했다.


그 누가 그 어려운 사역에 돈 한 푼 받지 않고 뛰어든다는 말인가? 더더군다나 그 도장들을 짓는 것에는 철저한 전경에 의한 해석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그 위치나 그 지어가는 순서 자체를 모두 전경에 있는 해석을 토대로 따와서, 일단, 작업 기간이 잡히면, 예산이고 뭐고 없이 각각의 군소 도장들에서 자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일군들을 불러들여 모종의 종교의식을 베푼 뒤에(이제는 그런 의식들이 무엇일지, 여러분들은 아마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작업에 드는 비용을 그 기간 내에 모금해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간 내에 돈이 모자라거나 일군이 모자라서 일을 연장해서 했던 적은 없었다는 '암시'를 거는 것과도 비슷한 말을 개구리 선인은 하고 있었다.

그 의식을 통과한 일군들은 또한 보통사람의 10배가 되는 일을 하여도, 절대로 지치지 않고, 하루 종일 거의 쉼 없이 일을 한다라고 하는데, 그 말속에는 단지, 사실을 얘기한다기보다는 그 현상을 일으키고자 하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포천의 도장에는 금이 유선형으로 건물의 윗 둘레를 돌아가며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선인은 불교 사원마저도 저것을 칠해서는 안 되는데, 우리 도교는 칠하며, 그것은 불교보다도 한 단계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불교 사원이 저러한 금칠을 하면, 신으로부터 벼락을 맞는다라고 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말들은 대부분 암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비 아닌 신비 속으로 조금씩 나를 밀어 넣는 말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칼을 열심히 파는 와중에, 비즈니스에서도 직원과 고객에게 일종의 암시를 항상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암시의 비밀을 벗겨가고 있었기에, 다행히도, 그 신비 현상의 언저리에서 약간은 거리를 두고 선인과 도인들과 미정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강증산이라는 위대한 한국 도교 본류의 인물의 밀도 높은 사유가 그들을 통합하고 있지만, 그 통합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책들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기만이었다. 그리고, 설사 '도'라는 것이 신비와 더불어 실체로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기만을 통해서 이끌려 들어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득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깨닫고자 하는 것, 다시 보자면, 구원을 받고자 신을 믿고 영생을 구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비즈니스나 사회에서의 일련의 성공을 희구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유가 머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미정뿐이었다. 그것만이 비극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