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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Nov 11. 2018

<보헤미안 랩소디>-공연을 재현하다

퀸의 전설을 눈 앞에 가져오다


"퀸"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좀
품격이 있어 보였다.


극장에 가기 전에 무슨 영화를 볼 것인지

미리 정하고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저 가서 보니 볼만한 것이 이 영화다

싶어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극장이 꽤나 많아진 시대라서 웬만한

흥행작이 아니면 바로 현장에서

표를 예매하거나 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언뜻 지나치는

기사문에서 읽었으니 기억은 나는데,

사실 “퍼스트맨"이 상영되고 있다면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마침 간 극장에는

없었기에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창 팝스타의

소식에 민감하던 청소년기에

모두의 스타 중에 하나였던

"퀸". 그리고 그 밴드의 가장

걸출했던 스타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죽었던 것은 큰 사건이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가 게이였던

무엇이었던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큰 별이 하나 졌다'라는 표현이

어울렸던 기억이 말이다.

퀸의 왕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힘들고 고된 인생의 한 복판에

퀸은 모두가 챔피언이라고 말했고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아무리

바닥 같은 상황에서도 노래 부르고

흥껏 인생을 오페라처럼 다이내믹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우리에게 달콤한 음색과

로큰롤 리듬으로 자극만을 안겨주는

가수는 아니었다. 마치 지금의 BTS가

뛰어난 춤과 노래 그 자체보다 담고 있는

메시지의 일관성으로 승부하고 있듯이.


팝스타를 잘 알고 있던 것이

하나의 문화 권력 같은 시대가

있었다. 국내의 가수가 아무리

용을 쓰고 노래를 불러도 한없이

수준이 낮아 보였던 그때,

마이클 잭슨, 프린스, 엘튼 존,

빌리 조엘, 레드 제플린, 킹 크림슨

등등의 스타 이름을 나열하다

"퀸"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좀

품격이 있어 보였다.


"프레디 머큐리"가 죽고 나서

"비틀스"같은 그룹의 일원들이

존 레논이 독립 후에 죽고 나서도

각각 독립하여 그래도 하나 이상의

앨범을 내며 성공했던 것과는 달리

"퀸"은 유명무실 사라졌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은 "퀸"과

더불어 남아 있음에도 그 이후의

멤버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전성기에 그는 "솔로 데뷔"를

오랬동안 하지 않았던 것일까?(잠깐 했다.)

팀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커다란

스타성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는 남았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영화는

일부분 갖고 있으리라.


그것이 영화를 보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였다. (대답은 나오지만 여기에선

이야기 하지 않을 내용이다.)



이제 스포일러가 등장합니다

영화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시작부터 장황하게 밴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지점을 먼저

보여주고, 그곳에 세간의 시점이

집중되어 있는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무대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장면을 언뜻언뜻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론부에서는

"프레디 머큐리"만의 "퀸"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관객이 누구를

보려고 영화를 보게 될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디 머큐리"역을 연기할 배우가

어떻게 그를 제대로 재현해낼 것인가

이 부분이 된다.


아프리카 잔지바르 태생이지만

인도계인 "프레디 머큐리"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의 인종과

유사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집트계의

배우인 “라미 말리크”가 그의 배역을

맡았다. 그 전에 맡았던 역할도 주로

그 계통이다. 때문에, 실제의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를 100% 싱크 하지는

않았지만, 유럽 계통의 서양인에게는

이국적인 그의 외모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내 주었다.

많이 닮았다기 보다는 중요 포인트 몇가지를 최대한 일치시켰다.

그리고 이 배우가 영특했던 부분은

남들보다 많은 4개의 치아 덕분에

돌출된 구강 구조에서 오는 성량의

파워플함과 다양함이 "프레디"라는

캐릭터의 중심임을 정확히 알고서

이미 자신이 배역에 확정되기 1년여

전부터 인공치아를 달고 연기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일상생활에서마저 이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는 무엇이 재현할 실제 인물의 포인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배우를 실제 인물에 360도 전면에서

일치하도록 만들 재주는 몇십 편짜리

다큐멘터리를 동원하지 않고는 2~3

시간짜리 영화에서는 발휘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자체도

영리하게 "퀸"의 전설적인 공연 중

하나인 Live Aid를 클라이맥스로 하여

이 전설적인 공연을 어떻게 실재처럼

재현해낼 것인가에 거의 모든 힘을

집중했다. 배우가 중심을 둔 포커스는

그대로, 영화가 중심을 둔 포커스도

그대로 남아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이성 연인인 메리와의

초반 연애와 결혼을 이어가면서도

게이이자 바이 섹슈얼로서 난잡한 생활을

했던 내용이 제대로 된 디테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저 해프닝처럼

흘러 지나가더라도 관객은 그저

후반 15분간의 공연이 왜 전설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양념 격으로 내용을 받아들였기에

이 영화는 그다지 약점과 모순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프레디와 그의 퀸 동료가

실제로 만들어낸 현장에서의 공연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그 현장에 와서

관객이 정말로 그곳, 그 무대 위에

잠깐이라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프레디가 가진 카리스마를 100% 구현하지는 못했어도, 현장의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구현한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이 영화가 던지려는 메시지는

"부적응자를 위한 부적응자 그룹"이라는

초반에 "퀸"이 밴드의 정체성을 설명하려는

장면에서 나온 그 메시지에 잘 녹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메시지의 일관성을

위해 "퀸"은 6분짜리 명곡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치를 3분이

아니기 때문에 폄하하는 레코드 회사의

임원과 싸운다.


그조차도 젊었을 때는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이라는

7분이 넘어가는 작품을 프로듀싱했던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가 이 명곡의

출반을 반대하는 논리는 라디오에서

틀어줄 3분 제한 시간에 들어갈 수

없는 곡이라는 명분 밖에 없다.

물론, 실제에서는 반대했던 사람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인류의 꼰대 중 하나를 잘 대변한다.

이런 "꼰대"가 세상에 튀어나오는

수많은 혁신의 가치를 어떻게 막는가를

그것도 인류의 역사 전체를

다 뒤덮어가며 얼마나 망쳐왔는가를

일거에 떠올리게 만든다. 하나 더

그가 젊었을 때는 그런 꼰대가 아니었다는

스토리는 명언을 하나 만들도록 한다.

"가능하다면 계속 혁신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이 '꼰대' 자신에게도

뒤따라올 젊은이에게도 좋다."




후반부 15분 간의 공연은

동어 반복이 되는 이야기지만

매우 리얼하고, 정말로 제대로

재연이 되어 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퀸"의 공연을

제대로 봤던 적이 없었기에 어쩌면

그 현실감은 나 같은 관객에게는

더 극대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퀸"보다 좋아했던 "프린스"가

어쩌면 "퀸"의 "프레디 머큐리"의

젊은 시절을 벤치마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살짝 겹쳐

놓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퀸"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프린스"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중반에 팝계를 약간 비슷한 스타일로 양분 또는 삼분했던 세 인물은 이들이었다. 퀸으로선 약하다. 프레디 머큐리로 비교된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은 그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 그 혁명적인 밴드나

가수를 목격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지금은 중년이거나 중년

이상이 된 고연령 층의 추억이다.

누군가에겐 "마이클 잭슨"과,

누군가에겐 "엘튼 존"이나 "조지

마이클"과 "프레디 머큐리"의

"퀸"이 연결될 것이다.


젊은 사람도 많이 관객으로 왔지만,

그 때문에서인지, 나이 지긋한 부부가

관객석의 적지 않은 좌석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들이나 나나 젊었다면,

아마 비트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고

몸을 흔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프레디"가 "게이"였는지

"바이 섹슈얼"이었는지, 그런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런 저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멤버가 모여서 만들어낸

찰라의 공연이 저렇게 멋졌다는 기억을

다시 되살려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되살려낼 수

없으리라 믿었던 추억의 섬광이

다가왔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 영화를 잘 보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라면, 최소한 티켓값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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