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벗어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리다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은 피해 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다림은
"인크레더블 2"에 대한 것만큼은
되지 않았어도 나름 길게 이어졌었다.
8비트, 16비트, 32비트의 게임을
즐겼던 시절의 기억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40대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은근히 어필했던 이 영화는 실은
아이들을 타깃 관객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엔.
분명히, 이 영화의 타깃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영화관에 올 그 부모였다.
동킹콩이나 패크맨, 슈퍼 마리오 등의
게임을 쉼 없이 했던 사람의 감각을
정확히 꿰고 있었던 그 영상들은
이미 이를 훨씬 뛰어넘은 3D 영상
게임을 즐기고 있는 아이에겐
어쩌면 낯선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은
브런치 내에서 모조리 키덜트로
카테고리화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나니 작품을 보고 나서도
선뜻 감상문을 올리기가 싫어졌다.
왜냐. "키덜트"라는 항목은 왠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른.
경제적 관념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성숙한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어딘가 문제 있는 "무늬만 어른"인
사람을 묶어 놓은 항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정해 놓은 카테고리가
무색하게 그저 내 글의 정체성이
"키덜트"에 묶인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 자체도
열혈단신 혼자인 성격 고약한
"랄프", 1편에서 그는 다행히
왕따를 벗어났지만, 분리 불안인 듯,
친구에 대한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존재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키덜트"의 일반화된
주제에 더 들어맞지 않는가 말이다.
나를 포함한 이 어른은 아직도
아이처럼 오랜 기억의 저편에 있는
영상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성숙의 증거이므로 벗어나야 하지
않는가라는 정신병리학적인 진단이
내려지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다.
그러나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설사 누군가 이 글을 보고,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나와 이 글을
아무런 의지의 개입 없이도 "키덜트"에
묶어 버린다고 해도. 그럼에도 쓰지
않고서는 내부에서 사라져 버릴 수
없는 욕구가 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금기를 선사하니
나 자신이 그 금기를 깨고 싶어 좀이
쑤시게 된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나를 감동시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적고 싶어 졌고, 쓰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이 글쓰기의 과정 자체가 바로 다른 세계로
나가보기를 결정하고 인터넷 세계에
접속해서 또 다른 삶을 찾게 된 주인공의
스토리와 은근히 비슷해진다.
이 유사점이 즐겁다.
1. 랄프와 친구들이 1편에서 나갈 수 없었던
공간은 인터넷의 공간이다.
2. 다른 게임을 오가면서 벌어지는
한정된 전자오락실 안에서의 내용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던 전편과 달리
스토리와 영상의 확장을 이루었다.
3. 인터넷의 세계에 접속해서 벌어지는
PPL로 Ebay와 Amazon, Facebook,
instagram 등의 이제 미국이라는 국가를
자랑할 때 따라붙는 브랜드 명들이
잔뜩 나오지만,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나오기에 재미있다.
- Ebay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
- 스팸이 나타나 클릭을 유도하는 과정
- Google에서 검색하는 과정
==> 은유와 비유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고,
넷 상의 아바타로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용자들과 게임 속 자기 의지를 가진
캐릭터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군데군데 잘 만들어져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영화의 스토리 속에서
걸어가는 동안 정말로 단 한순간도
어색함이 없었고,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4. 이에 덧붙여서 나오는 디즈니의 수많은
공주들도 홍보의 연장선이지만 이 또한
어색하지 않다.
5. 그리고 압권이랄 수 있는 장면과 더불어
바이러스화 된 랄프가 인터넷 세계에서
증식하며 모든 공간을 뒤덮어가는 장면은
기술적으로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에 분명하지만,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이 애니메이션이 그저 아이들에게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면서.
6. 이 바이러스로서 랄프가 증식해 가는
모습은 미국 영화 "매트릭스"와 일본
애니메이션 "써머 워즈"의 오마주처럼
나타났다. 그 해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영화답게 싱겁게 끝나지만, 그 영상의
또 다른 신선함은 인정해줄 만했다.
7. "레디 플레이어 원"을 떠오르게 하는
자동차 게임의 긴박한 씬도 잘 구현되었고,
지금까지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현한 그 어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이 애니메이션의 영상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저런 요소를 들지 않아도 군데군데
잘 만들어진 이 작품은 높은 수익과 높은
순위를 차지한 금년의 주요한 작품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그렇다면, 랄프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를 가져오고
또 어떤 방식으로 변화한 게임의 세계를
보여줄까 궁금해진다.
히어로물이 아니라도 재미있는 작품으로써
"랄프"는 독보적인 시리즈를 잘 만들어갈
것 같다. 아직 우리 아이는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게 안타깝다. 언제쯤부터 이런
즐거운 작품을 아이가 마음 놓고 즐겁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하나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에서
인터넷 세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아시아 권의 사이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 상의 갈라파고스
섬인 우리는 언제쯤 이런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얼굴을 제대로 드러낼까?
추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