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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r 02. 2019

<Alita : Battle Angel>-무난한 극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일본 애니가 그린 인류의 마지막 장

제 글에는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원작인 "총몽"을

보지 않은 분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집단 지성의 장인 "위키위키" 문서를

찾아, 나무위키의 "알리타: 배틀 엔젤"

을 읽고 나면, 구석구석 이미 잘 정리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실을

기반으로 이곳에 적을 이유는 사라진다.


그곳에 쓰인 글 전부를 누군가 혼자

적었을 거라 생각하면, 그저 쓸쓸해진다.

그 누군가에게 있는 영화에 대한 열정은

이미 내가 닿을 수 없는 수준 같아서이다.


그러나 적어도 2인 이상의 집필을 거친

문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내 글이 전혀 가치가 없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에, 1인 미디어로서의

얄팍한 자존심을 가지고 쓰게 된다.


나만의 언어와 감정을 가지고 쓴다면,

그것은 그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설사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그대로

나를 카피한 인공지능이 쓴다고 해도

그의 글은 내가 지금깔고 앉은 매트리스가

주는 감촉과 몸에 걸쳐진 옷, 방금 전에

먹은 음식 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지금 이 순간의

이 글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반대로 내가 그 인공 지능이 써 내리게

될 글을 그대로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직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환상은

깨져간다. 이 영화는 인간만이 창조하고

사랑하고 생육 번식한다는 완고한 지난

시대의 가치를 30여 년 전부터 벗어던진

"키시로 유키토"의 원작의 상상으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이고도 존재론적인

질문이 계속 반복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기는 원작은 아직도

그 끝을 내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과연 그 원작 속에 담긴 심오한 질문은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그 때문에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어젯밤 심야에 달려가

영화를 보도록 만들었다.


솔직히 한 15년 전에 봤던 "총몽"의

스토리 구석구석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라는 감만 갖고

있었다.


공각 기동대가 지나치게 어려운

주제를 잘 구현하지 못하면서, 본질도

아닌 화이트 워싱 논란에 무너졌듯이

알리타 또한 그렇게 될 소지를 충분히

가진 영화였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만큼의 위대한

상업적 디테일을 지닌 감독은 아닌 듯

하지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지나치게 어려울 것 같은 원작의 질문을

굳이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도, 영화의

질문의 포커스를 줄이고, 영상의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사춘기 소녀와 소년의

사랑"으로 스토리를 단순화시켰다.

정말로 사랑하는 소년에게 Alita는 심장을 뽑아 꺼내어서 그의 꿈을 위해 팔라고 이야기한다. 원작에 없는 극단적인 멜로씬이다.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일사천리로 2시간여를 넘는 이 극화는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동시에

12세 이상의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는 적정 수준의 난이도를

가진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원작으로 돌아가자면,

영화처럼 압축되지 않은 상태의

그 극화는 훨씬 더 변태적이고

인간이 가진 더 어두운 부분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더더욱 잔인하다.


원작 만화의 성실한 팬들은 이 싱거움에

분명히 불평 한두 마디씩 던질 것 같다.

무엇보다, 원작 속의 Alita에 걸쳐서

들려오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사라진

것이다. 이른바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사이보그"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갖고 실현하고 있다면, "인간"

이라고 하더라도 비인간적인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보다 더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바타"의 주제도 그것이다.

"외계인"이라고 하더라도 전 우주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 평화, 평등을

지향한다면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

"인류"보다 더 우월하지 않은가란

질문이 이 안에 들어 있다.


물론, 그 주제는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면서 티켓을

팔기 위해 넣어야 하는 도덕적인

상품 포장 같은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이 사라져 버린

"심장까지 내주고서 사랑하고 싶었던

연인"을 죽인 "악랄한 권력자에 대한

복수" 스토리로 변한 "Alita"란 영화는

무난한 선택을 한 덕에 오히려

더 크고도 더 긴 흥행을 할 가능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Avartar" 이상의 흥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저예산 영화의 세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종종 올렸던 로드리게즈

감독에겐 모험보단 확실하고도 안정적인

흥행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아마도,

블록버스터 흥행 기록의 10위권 내에

진입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손익분기점은 통과할 것이다.


그것은 원작의 스토리가 어떻고

존재의 질문이 어쩌고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제대로 구현된

주인공 "Alita"의 그래픽 때문이다.

피부의 땀구멍과 눈 속의 실핏줄, 모발 하나하나를 다 구현해냈다. 거의 인간을 하나 창조해낸 듯한 디테일이다.

정말로 현실 세계에 살게 된

"사이보그"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을 준 것만

같았다. 이전까지의 모든 모션 캡처를

사용한 갖가지의 영상이 가진 현실화

수준을 확실하게 뛰어넘었다.


물론, 인간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영화 속에서는

던져지고 있지 않지만, 중간중간

현실 속에 제대로 나타난 사이보그의

인간 이상의 존재감은 그저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묻고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전쟁이라도 나서,

송두리째 사라진 세계가 있다고 해도  

그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다.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 속에서

그래픽으로 구현된 "Alita"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2편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난 이후에 과연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보다 과연 어떤 영상이 펼쳐지게

될지가 더 궁금했다.


원작인 "총몽"을 보지 않았다면,

기존의 디스토피아 극화와는 또 다른

이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나름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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