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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pr 14. 2019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우린 무엇인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시대에 도착하다.

이 책은 나름 충격적이다.

특히나 이야기를 우선시하는

텍스트 기반의 사고를 하는 사람에겐

전작인 “사피엔스”를 뛰어넘는 파괴력이

있었다.


유대인으로서의 “유발 히라리”는

인류를 어떤 의미에서는 기만하고

동시에 급격한 문명과 문화, 기술의

발달을 이루어왔던 종교와 이념의

번성의 허점을 간파하면서 동시에

유대인 중심적인 관점으로 편집되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우수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유대교”에

대해서마저 신랄한 비판과 비난을

멈추지 않으며, 의미 없음을 드러냈다.


시대가 좀 더 이전이었을 때 쓰였다면,

시오니스트로부터 살해 압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이다. 그런 젠더 상의

마이너 함마저 책 속에서는 솔직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그가 보다 더

집중한 것은 그런 젠더 상의 상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정체성이

이제는 이야기를 떠나서 각 개인이

자신의 몸을 통한 “명상”을 통해서

관찰되고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란

결론이다.


그는 우리의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인공지능의 개발과 새로운 형태의

인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이행하는 산업 기술 및

정보 기술의 엄청나게 빠른 변화

속에서 엄청난 데이터 정보 격차와

더불어 알고리즘에 의해서 설정되는

각 개인의 “자유의지”가 조작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관련성 없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란

비관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구글과 아마존, 바이두 등이

지배할 지구 상의 데이터, 그리고

그 데이터를 통해서 파악된 인류를

통제할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개별성이 사라질 인류의 모습을

예견하는 동시에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인류 집단을 관리했던 수많은

시스템 속의 콘텐츠를 벗어나야 하고,


인간 그 자체, 자기 자신 자체의

정체성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만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류로부터

배제 되어 연관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비극으로부터 그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공한 것이다. 그것이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제안을

깔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작인

“사피엔스”보다 더 작가 자신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더 많이 볼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독자가

자신의 경로를 찾아갈 수 있는

방안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 책은 종 횡으로 길고도 넓게

나열된 인류 역사의 광범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행동을 유발하는 내용에 대해서

고통스럽지만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부 보탬이 되거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블로거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 걸까?


이야기는 분명히 세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솔직히 그 이야기를

만드는 그 인간 개인의 순수한 세상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기보다는 이 시대에 살포된

수많은 공짜 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얼핏 유용한 것처럼 제공되는

정보를 우리가 접하는 순간, 우린

우리가 그나마 자유롭게 사고하고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나마 그 해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정당한 돈을

내고 봐야만 한다는 어떤 의미에선

세계 속에서 사그라져 가고 있는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는

유료 정보다라는 당연해야만 하는

상식을 말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것은 정보 유료상의 입장에서

씌여진 내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가 제대로 배웠던 “위빴사드” 방법론을

적용해서 실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는 시대 변화의 가속에 따라

50이 넘어도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체득해야 하는 변화 자체가 일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전 시대에는 자기 자신이 만들지

않았어도 타인이 이미 만들어준 이야기로

자신의 사명을 정하고, 이를 통해

“자유의지”의 환상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매번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수정당하면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채

그대로 실시간적으로 끌려가며, 행동을

조작당하고,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이나

잃어버리지 않아도 될 시간을 빼앗기며

자동화되어 밀려온 정보에 의해서

끌려가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정처 없이 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라는 공감이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내용이

“내가 나 자신이 되고자 한다”라는

글의 방향을 잡고 있는 내겐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가 아니었던가?


우리의 정신과 뇌라는 부분은

아직도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정확하게 만들어 내는 사유의

원인이자 중심인지를 알아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지식만으로도

우리의 행동은 어느 정도 조작

가능하다. 이 정보를 막대한

데이터 형태의 기반으로 갖고 있는

대형 기업의 의도대로 통제되는 것을

개인이 거부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런 시대가 와 있다는 증거는

다시금 영화 “매트릭스”와 “트루먼쇼”에

대한 비유로 다시금 명확하게 설명된다.


그럼, 이제 그가 말한 대로 “명상”을

시작하면서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현실에서의 경험을 제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이 순간이 늦어질수록, 우린 배제된

존재가 되어, 데이터로 우리를 지배하는

기업의 숙주로만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알고리즘으로 판단되고, 분류된

뒤에 어떤 제품에 얼마 큼의 돈을 쓸지,

어느 만큼 의 정보를 흡수해서 수익성을

높이는 행동을 하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될지. 그렇게 파악되는 것만으로

존재 의미가 한정되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싫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책을 보는 동안

느낄 수 있다면, 책은 제대로 읽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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