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Jan 13. 2019

<채식주의자>-일상 속의 폭력성

남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세상의 폭력에 대한 3가지 우화

"소년이 온다"에서는 진혼곡이 흘렀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진지한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물론,  머릿속 이야기다.)


왜냐면,  서의 소설은 공권력으로 인해 대량의 살육을 당하고도 범국가적으로 왜곡당한 피해자를 그리고 있었다면,


 소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담고 있다. 남과 다르면  되는 우리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것은 폭력을 당하는 수많은 갖가지의 모든 인간 유형마다 테마곡을 붙여야 하는 방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진혼곡 정도로 정리가   없다.


폭력의 절대적 해악을 다루자면, 사실  많은 양의 비애를  세상에 흩뿌리는 폭력은 "남과 다르면  "라는 명제 하에 조금이라도 다른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사회화 과정 상의 폭력이다. 이것이  악하고   피해를 세상에 뿌리고 있다. 총칼보다  무서운 말과 무언의 비난이 훨씬  커다란 비극을 초래해온 것이다.


왕따 “따돌림 법적으로 소송까지  각오를 해야만 벗어날  있는 전 세계 구석구석 어느 곳에 가든 만날 확률이 높은 일상화된 폭력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올바른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가진 말과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육아 과정 기간의 훈육과 교육은 이뤄져야만 한다.


최소한 동물과는 다른 "인간"으로서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획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정교육 과정에서조차 “폭력" 대물림하듯 벌어진다.


작가의 국적이 "한국"이고, 소설  배경이 한국의 가정이므로 마치  내용은 한국화  악덕인 "개고기 먹기" “가정  아동에 대한 폭력" 이야기하는 국소적인 범위의 이야기 같지만,  책은 번역에 의해서 " 부커상" 수상할  있는 보편성을 획득했다.


상당수 잘못된 번역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확인했었지만, 그보다  소설의 “남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불관용" 드러내는 핵심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이상문학상수상했던 "몽고반점" 전체 3개의 연작 소설이 합쳐진 합본과도 같은 "채식주의자" 내에서 충격적인 내용으로 나타났다.  이곳에는 폐륜과 변태성이라는 권위 있는 소설가가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금기시되는 요소 2가지가 노출 묘사와 더불어 적지 않은 분량으로 나왔다.

 

이보다도 정도가 심하지 않은 소설을 썼던 "마광수" 교수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고 쓸쓸하고 건조한 노년에 임종을 맞았지만, "한강"씨는 여류작가로서 오히려 폭력을 가하는 "" 정체를 명확화함으로써 상도 받고, 위상을 확대시킬  있었다. 일종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관능" 주제로 선택해서 "다름" 추구했던 작가는 매장을 당한  사회에서 "폭력" 주제로 "다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작가는 살아남은  현실은 “건전하다"라고 이해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수에 작가에다 남성이었다는 것이 그가 맞은 철퇴가  강력해진 이유였던 기억이 난다.


세부를 이해하고 함의를 파악하며, 문화적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 소설을 성공적으로 읽는 법은 아니다.


소설의 의도가 성공하는 지점은 독자의  속에서 이러한 폭력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복기하도록 하는 데 있는  같았다.


나에겐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이중적인 모순을 지적하면서 문학의 다양성을 확장해보려다,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쓰러져 갔던 깡마른 교수이자 작가였던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우린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