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장 영민한 문화 창작자가 인정받다.
40여 년의 문화 소비자 생활 중에
가장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것이 이렇게
큰 상을 그것도 영화의 메카와도 같은
아카데미에서 4개나 받을 거라고
기대했던 적은 없었다.
어린 나에게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란
거대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백인들의 예술영화
간혹 등장하는 제3세계
다른 인종이 나타나는
“외국 영화 중에 잘 나가는 영화”란
범주에만 있었다.
심지어는 마블 영화를 보면서
그 스케일과 예측할 수 없는
재미에 압도당해서 짧은 시간 안에
이 수준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도 얼마 전까지 갖고 있었다.
4관왕을 수상하기 직전까지
“1917” 이 더 많은 수상을 할 거란
강력한 편견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나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
또는 자본의 힘에 대한 무력감에
함몰되어 있던 나에게, 물론 CJ란
나름 국내 거대 자본이 버팀목이
되어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고
우리에게 이것은 월드컵 4강을
뛰어넘는 자존감을 키워준 커다란
승리이다.
우린 좀 더 힘주어 물질적으로만 뭔가를
보여주는 나라가 아니라고 이젠 말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도 제대로 세계를 향해
말할 수 있는 나라의 모습을 제대로
하나 갖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상식에서조차
위대한 선배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를
경외하고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형제애를 어필한 봉 감독은 이것을
자신만의 또는 우리의 승리라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어떤 것보다 이 세계 속에서
그를 좋은 영화를 만들도록 이끌어주고
그의 가치를 이해한 동료 문화 창작자들의
열린 인식이 그를 인정할 여지를 제공한
것이란 명확한 인식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전략적이었음에도
진심을 말할 순간에는 그 진심을 믿게 할 수
있는 마술을 부렸다.
아카데미가 로컬 영화제라고 공격한
그의 인터뷰는 놀라울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전략의 정수였다고 본다.
그 하나의 수가 많은 빗장을 열었던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공격에서
자유로운 수상을 할 작품의 수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백인 간의 전쟁을 그린 “1917”도
백인 남자 배우의 전성기를 그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아이리쉬 맨”이란 백인 계통의 작품도
로컬에 잘 통하는 작품이란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단지 화려한 가십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독점한 남녀 조주연 상에서는
인지도 문제 때문에서라도 한국 태생의
배우가 상을 타기에는 쳐낼 수 없는
장막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기술 문명과
축적된 경험의 높이가 웅장한 기술이나
음향, 미술 등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있었다.
다시 이런 쾌거가 다른 문화 예술에서
또 일어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미리 한계를 긋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잘 되든 안되든 그 결과를
정당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내가 가진 편견을
하나 더 무너뜨린다. 오스카를 받는
영화 부류는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
받지 못할 거라 선을 긋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