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목숨을 걸던 시대를 회상하다
Logicomix
저자: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 | 2011-02-14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버트런드 러셀의 생애와
서양사상사가 한눈에!
컴퓨터 발명의 뿌리가 되었던
수리 논리학적 진리 추구의
역사를 담았다.
전두엽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2011년의 10월 경 오랜만에
서점에 들렸을 때,
수많은 책표지들 중에서
눈을 사로잡는 표지는
로지코믹스의 것뿐이었다.
일단은 만화였고,
눈에 가닿은 인상적인 문구는
전두엽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라는
표현이었는데, 과연 책을 집어
잠시 보는 중에 전두엽이
성공적으로 자극되고 있는
현상을 느꼈다.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버트란트 러셀을
중심으로 하여 수리 논리학에
관련된 1900년대 중반기를
주름잡았던 진리에 대한
방대한 논의를 압축하고
나아가서 끝끝내 바라던바의
진리를 확고하게 발견하지는
못했던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비극에 이르는
과정이 선사하는 것은
논의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적인 사회가 갖고 있는
희망의 측면이며 동시에
냉소적인 현실 인식에
대해 낙관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단서이다.
이 책은 만화이며,
구매해서 집으로
가지고온 첫날, 그 주 토요일.
멈춤없이 읽어 하루만에
끝장에 이르렀다.
이른바 나름의 지적인 충족감을
느끼면서 한순간도 이 책 속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몰입 상태가 간만에 이루어졌었다.
보기에 아주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느끼기에
한없이 어려울 수 있는
상세화된 논의는 다행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논의들의 핵심이 되는
부분들만 던져진다.
독자들이 끊임없이 빠져들도록 이끄는
다른 장치들은 책속에 나와 있는 원래
"토대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여서
각기 다른 내용을
이 책에 조합하고 있는
작가 포함한 공저자들의 모습이며,
액자형식의 이야기로 들어가 있는
그리스의 비극의 형식을 빌어 나온
민주적 배심원제의 기원을
긍정적으로 다룬 한편의 극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지식의 증가만큼
지혜의 증가가 없다면
이는 곧 비애의 증가가 될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은 나에게는
"인류에게 지식의 증가만큼
지혜의 증가가 없다면 이는
곧 비애의 증가가 될 것이다."
라는 문장을 선사해준 사람이다.
또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저서를 통해
나에게 진지한 종교에 관한
질문을 던져준 사람이기도 하다.
에리히 프롬과 버트란트 러셀은
그들의 그러한 반기독교적인 논의
때문에 같은 정도의 무게로
사춘기의 나에게 다가왔던
철학자들이기도 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버트란트 러셀의
진면목은 그의 인생의 후반기의
평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이나
철학자에 더 가까운 모습보다
인생의 가장 큰 야심을
더할나위 없이 완전한
수리 논리학적인 진리를 찾는 곳에
걸었던 수학자이면서도
논리학자였던 모습에 더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에리히 프롬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쓸 예정이다)
세밀한 알고리즘을 구성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수리논리학자로서
더이상의 증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완전한 수학적 공리의
결정화된 진실을 찾고자 하고,
수학적으로 또한 논리적으로
완벽한 토대인 언어와 증명을
찾고자 했던 노력들이
결과적으로는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세밀한 알고리즘을 구성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컴퓨터 문명을
만드는 논리의 언어를 개발해낼만큼
방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었다는
사실에 이른바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에서 태동한 배심원제라는
민주주의적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합리적인
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 속에
비합리적인 개념들을
너무 잘 끌어다 붙이고는 한다.
비합리적인 논리와 광기에 힘입어
인류를 비애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나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비해
왜 자유민주주의가
정의에 보다 가까웠었고
2차 대전 중에
승리를 이끌 수 있는
도구를 가질 수 있게끔 했는지
또한 지금도 우월한 다수의
국가들이 이 진영 안에 있는지
자세히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책은 합리적 사유를
장려하고 적극 권장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 속에 비합리적인 개념들을
너무 잘 끌어다 붙히고는 한다.
불행히도 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사회 이념 자체를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서 지탱해가기 보다
이념 자체를 교조화 시켜서
비합리적으로 이끄는 어리석음이
이 합리주의적 이성의 선구자들의
시대가 저버린 이후, 사라져가다가
이제는 다시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이 자유를 극단적인 탐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하여
타인을 갈취하는 방식의
금융공학적인 지식으로
가득한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파국을 창출하고
끊임없이 그리고 아무런 반성없이
미국이라는 사회의 고통을
가득하게 만들고 있다.
그 현상을 떠올리게 만든 영화는
다름아닌 인사이드 잡이다.
감독: 찰스 퍼거슨
출연: 맷 데이먼
정보: 다큐멘터리 | 미국 | 108 분 | 2011-05-19
그들은......합법적인 지능범들이다
로지 코믹스와 더불어
이 다큐멘터리까지 함께 보면서
버트란트 러셀의 말그대로
"지식의 증가가 지혜의 증가없이
비애의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을
너무도 명확히 목격할 수 있었다.
1%의 파생상품들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미국 내의 금융전문가 그룹들이
99%이르는 미국국민의 돈을
수년간 쫙빨아들여
2008년의 리먼 브라더스 같은
사태를 만들어내고,
2011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경제 침체라는 위기를
지속시키면서 전세계의 사람들을
가난과 비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
하나만으로 여실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시대가 가진,
1900년대 후반의
아직은 도덕적인 올바름,
논리적인 타당성을
자유민주주의의 고결한 우수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대와의
간극을 여실히 로지코믹스는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월스트리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한국 내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진 모럴헤저드를 저지른
금융전문가들에 대한 항의는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다양한 방식의 논의를 통해서
타파되고 방지될 수 있었던
"악"에 대한 항의임에도
당시의 자유민주주의 미국 정부는
논의들을 사람들의 좌경화내지는
사회주의적 발상에 의한 반발이라
왜곡해서 침묵을 유도하기 바빴다.
버트란트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괴델 등의 수리 논리학적 논쟁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이같은 비이성적인 세상에 대해서
어떤 논리로 이야기를 할까라는
궁금증이 싹튼다.
단지 1%의 금융지식을 갖춘
고급 엘리트 사기꾼들을 위해서
99% 가 삶 속의 행복을
차압당할 수 있는 현실이
그대로 계속되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는 이 사기꾼들에게
깡통을 선사해주어야 하고
그들의 모자란 (도덕적인)
논리적 공백을 채워주어야만
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그들은 너무 똑똑한 나머지
법리적인 해석상 문제가 되지 않을
범죄들만을 저지르는
합법적인 지능범들이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 금융사기꾼들은 죽는 날까지
자기들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몇 천만명의 사람들이
그들에 의해 절망에 빠지고
생명까지 잃는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시대가
잘하면 끝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시대가
잘하면 끝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자본시장이 모바일 생태계와
새로운 핀테크로 파괴되는
기존 금융산업의 와해 작용과
"메이커스"에서 나오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등의
새로운 자금조달 방법 등에 의해서
자본 민주화의 본격적인 과정을 맞았다.
기존의 금융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자본조달의 독점화를 이루던 그들이
바야흐로 힘을 잃어가는
시대가 오는 중이다.
물론 이곳에는 위기와
오히려 그들이 더 힘을 가질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도 공존한다.
수리논리학적인 학문의 수준에는
설사 이르지 못하더라도
대중들이 수학과 논리를
틈틈이 공부한다면
이는 대중들의 기회로
온전히 넘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로지코믹스의 이야기는
"과연 이런 시대를 맞기 위해
생각 있는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