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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Dec 17. 2015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원제: Testaments Betrayed

"살만 루시디"라는 작가가

한때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게끔 만든 책이

무엇이었는지 혹 아는가?

살만 루시디는 1988년도 이후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를 피해 다녔다. 영국의 최하위 훈작사라는 작위를 2007년도에 받았다.

너무 오래전 뉴스여서 (1988년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의 이슈는 과연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나

타인들의 종교를 모독하는 것이

올바르냐 아니냐의 문제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소설의 제목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빈도가

더 많았을 것이다.


살만 루시디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큰 명성을 얻고 있지는 않다.


밀란 쿤데라,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당시의 시사 포커스를,

"살만 루시디"라는 인물과

유럽 소설이라는 화두에 둔

소설적 에세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의도적으로 내보냈는데,

2015년 현재에도 건재하게 살아 있다. 29년생으로

치밀하게 써진 그 에세이들은

한 권으로 뭉쳐서,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이루게 된다.

새롭게 지어진 국어 책제목이다.

이 책에서 그가 의도적으로

역설하고 있는 것은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를

이단서적으로 몰아붙이는

호메이니의 무지몽매함만이 아니다.

악마의 시의 단촐한 책 표지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확실한 역할을 해왔던

유럽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변명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유럽의 무력함을

오히려 더 비틀어 꼬집고 있다.


이 책 속에서 독자는

많은 인류의 오해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진실과 사실을 말하는

밀란 쿤데라의 강력한 역설을

아주 즐거운 예시들과 더불어

계속해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루시디의 입장을 옹호하고,

"창작의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그 소설을 읽은 지식인들은

드물었다.


마치 추문을 대하는 태도와도 같이,

그들은 그 책의 내용 따위는 관심 없이,

자신의 입장을 이 사건을 빌어

공공연히 외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얼마나 "관용적"인가?

난 얼마나 "자유주의자"인가?

훌륭하지 않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루시디의 그 소설의 제목과 줄거리,

형식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카프카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가 풀리고, 체코의 야나체크가

누구이며, 스트라빈스키가

뭣에 집중하던 작곡가였고,

유럽 소설의 원류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심장 토론"이라는 것에 담긴,

폭력적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라블레로부터 비롯되었던

유럽 소설의 역사에 대한

간추린 보고서이자,

클래식의 이해에 대한

속성 교본이자,


문학 이해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의 혜안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특수화된 언어가 아니라

메타포로 점철이 된,

보다 이해가 용이한 언어면서도,

보다 정확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전율로 울려져 온다.


Testaments Betrayed라는

원제를 바탕으로 책을 이해하자면,

다름 아닌 에세이의 공격 타깃은

원작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창작물을 변형하고 왜곡하고,

비역질을 해대는 온갖 무지한

'배신'행위들이다.

국내 출판을 위해 제목과 표지를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바꿔야했던 출판사의 고뇌가 상상이 되려고 한다.

물론,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피상적 문화 산물 소비자,

Roman까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 '비역질'을 거의 일상화된 방식으로

날마다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은,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원작자의 입장으로서의 밀란 쿤데라는

직접 그 작품 자체에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미치고자 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비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오해는 인간 문화의

지렛대 중에 하나이기까지 하니까.

원작에 대한 몰이해는 몰이해

자체로만 끝나 준다면,

그 해악은 대단히 크지는 않다.



밀란 쿤데라 소개

  1.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
  2. 유럽 소설의 적자라는 자부심과 그에 걸맞은 작품들을 갖고 있는 소설가
  3. 농담(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영화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연극적 요소로 가득한 옴니버스), 느림(에세이적 소설), 웃음과 망각의 책, 불멸(장편소설),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소설적 에세이) 등,
  4. 소련의 체코 침공,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 사회주의 사상계의 인물에서, 회의주의자, 다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가, 다수의 소설을 펴내던 중, "농담"의 큰 성공과 격찬을 통해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전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소설가가 됨, 프랑스로 이주.
 5. 남녀 연애가 주축이 되는 소설들을 많이 쓰면서, 이 내용 속에 자신이 가진 경험과 인간관, 세계관, 문학관을 뚜렷이 피력함.
 6. 농담의 경우 자전적 소설로서, 인물의 정체성의 변화와 사회의 격변 속에서 한마디 농담처럼  튀어나왔다 사라져가는 인간의 모순된 삶의 비극을 유려한 필치와 끊어지지 않는 지속적 통찰로 승화시켜, 인류사에서 사상과 인간에 대한 진실을 알려줌, 참고로 그의 책들은 공산권에서는 금서였음.
  7. 휴머니즘 사상가이기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비관적 고찰이 두드러지고, 비관적 작가이기에는 소설에 대한 강도 높은 미학의 집적, 이야기를 통한 행복의 체험, 감각 묘사와 재치 있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방법에 있어서는, 전인류의 스승이랄 정도로, 정밀, 정확, 역동적임.
  8. 높은 문학적 완성과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전 세계적으로 잡은, 문화 창조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 중에 하나로 기록되고 있음.
  9. 창작물의 번역에 대한 집요한 의식이 있어, 자신의 작품이 번역되는 나라의 사전을 뒤져가며, 철자법 등등과 미학적 구성을 온전하게 보존한 번역판을 만들어내는 꼬장꼬장한 작가로도 명성이 자자함.
  1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영화 버전인 "프라하의 봄" 촬영 시, 음악 등의 부분에서 실제로 제작에 참여함.
  11. 클래식에 대한 수준 높은 양식의 소유자.
  12. 상당히 연하인 여인과 결혼하여 회춘하여 생존하고 있는 중임.
  13. 인상적인 표현들이 생생하고, 책을 읽은 뒤에 남겨진 여운, 미진한 해석에 대한 아쉬움이 접할 때마다 남는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소설 구성, 클래식의 리듬감을 고려한 소설 집필은 결과적으로, 집단 무의식을 적절히 자극하는 작품을 탄생시켜온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음.
  14. 그의 소설들에서 두드러진 '영화적 구성'은 그가 영화 공부를 한 정도를 넘어 프라하 영화학교 교수까지 역임했던 전력에 기인함.
  1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외에 "농담"도 영화화된 적이 있음. 원제대로 제목은 "Zert(The Joke)"이며 69년, 체코, Jaromil Jires 감독, 흑백. 보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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