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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pr 15. 2020

<일대종사>-무림의 황혼기

쿵후의 대중문화로서의 중흥기와 역사로서의 황혼기의 교차점을 그리다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상대적으로 긴 휴일이 이번 주 초에

있었다. 극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가볼 생각이 나지 않았고,

가서 볼만한 작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집의 IPTV를 켜고

볼만한 무료 영화나 시리즈물을

찾게 되었다. 읽고 있는 책의 진도는

나가지 않고, 쉬는 중에도 해야 할 일은

꾸준히 있지만, 한 달에 한편 정도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한편 적겠다는

목표는 항상 플래너에 적혀 있고,

내 몸과 머리, 마음은 일체가 되어

채널을 검색했다.


그러다 "일대종사"라는 영화에 닿아서야

이 영화가 "왕가위 감독"의 "엽문"을

다룬 영화이고, "양조위"와 "장쯔이",

"송혜교" 등의 화려한 출연진으로

만들어낸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송혜교"는 한류 관객의

티켓을 위한 작은 선물정도였다.)

영화가 정식 개봉된 지 7년 뒤에야

이 같은 내용을 알게 된 것에 후회와

더불은 아쉬움이 몰려왔다.


"왕가위 감독"의 최신작은 그전까지

내겐 "동사서독"이었다. "일대종사"를

그가 만들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엽문 1"과 "2"를 견자단의 화려한

영춘권을 통해서 봤고, "3"을 건너뛰고

"4"를 보아버린 바, 기억 속에 "일대종사"는

"엽문 1~4"의 인기에 편승한 아류작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 같다.

("화양연화"는 왠지 보기 꺼리껴진다.)

일대 종사가 중국 무술의 역사를 등에 진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엽문은 인물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 액션의 실감은 견자단이 더 확실했지만, 영상의 미학은 단연 일대종사가 뛰어났다.


이 작품은 "견자단"의 "엽문"과 같은

역사적인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아류작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진품.

오리지널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상이한 작품이다. 맨몸의 무술이야

"견자단"이 훨씬 실감 나는 액션을

보여주었지만, "원화평"이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또 다른

만족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우선 짧고도 화려한 예고편을 보니

"왕가위 감독"의 화려하고도 아련한

비주얼이 전설적인 스토리와 조화를

이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양조위의 무술 실력과 와이어, 특수효과를 숨기는 동시에 처절해보이는 싸움이 비 또는 눈, 좁은 공간과 더불어 이뤄진다.

그러고 나서 틀어보니, 왜 이런 작품을

안 보고 썩혀두고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개봉관에 가서 봐도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었고,

"견자단"의 "스포츠 대전"과는 다른

차원의 미학과 극화, 무술이 펼쳐졌다.



일본의 중일 침략이 본격화 하기

일보직전, 문명의 발달과는 상관없이

오랜 역사를 지나쳐온 중국 무술의

역사는 저물어가는 아련한 기억처럼

비 오는 날 바닥에 스쳐가는 영상이나

안갯속의 흐릿한 가스등 사이의 어둠 같은

흐릿한 영상으로 흩어지듯이 묘사된다.

대낮의 밝은 곳에서 이뤄지는 싸움은 거의 없다. 미장센도 적용되고, 약점도 가렸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바로 이뤄진

일대다의 싸움은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수십 명이 달려들지만, 빗 속에서

엄청난 괴력과 빠른 손발 놀림으로

모두를 제압한 "엽문", "양조위"는

내내 여유롭고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고수로서 하나의 물러섬도

없는 절대적인 강자를 형상화했다.

쓰고 있는 모자를 흘리지 않고 전부 때려 눕히는 대단함이 그럴듯하게 그려졌다.

첫 장면부터 남방 권법의 일인자인

"엽문"의 무술 실력을 지켜보고 있었던

북방 권법의 일인자인 "궁가"의 수장은

그의 실력에 감탄하게 되고, 남방과

북방의 중국 무술의 궁극적인 통합과

후계자의 교체를 꿈꾸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는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할 무술인이 없었는데,

너무나도 파괴적이고 권력지향적이어서

그의 눈 밖에 벗어난 "남자 수제자"와

뛰어나고 무술에 몰입하는 수준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여자"여서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었던 그의

"딸" 때문이었다. 그에게 생각의 넓이마저

넓고, 무술 실력도 뛰어났던 "엽문"은

중국 무술 역사의 통합된 후계자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저 이 정도만의 무술 영화였다면

더 이상 칭찬할 이야기도 없겠지만

과장되고 지나치게 미화된 무림 고수의

모습보다 더 잘 그려진 것은 "역사의

뒤안길"이라 할 수 있는 표면적인

역사의 배면에 깔려 있는 내용을

포착해서 화면으로 끌어올려낸

"양가위 감독"의 인생을 읽고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그대로를 관객이 느낄 수 있게 만든

심미적인 시선이었다.


"애처가"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에서의

"엽문"은 이 작품에서 그같이

아내를 끔찍하게 아끼는 존재로

그려지진 않았다.

봄같은 40대 전의 유복한 부자로서의 인생을 살다 일제 시대에 겨울로 접어든다.

다만, "지, 덕, 체"가 완성되고

조화를 이룬 자로서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아내인 "송혜교"가

연기한 배역과 완벽한 가정을

잠시 꾸미지만, 전재산을 잃고

홍콩으로 온 뒤, 중국의 "불산"에

아내를 놓아두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궁가"의"딸"로서 결국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자에게 복수했지만,

"궁가 64수"를 전파한 후계자가

되지 못한 채, 연심을 드러낸

"장쯔이"의 진심을 거부한 다소

"차가운 무도인"으로도 그려졌다.

단 1회의 대결 중에 엽문과 궁가의 딸의 마음이 오갔지만, 그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영화가 너무나도 예술적으로

각각의 인물 간의 솔직한 대화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중국 무술의

에피소드를 매우 진지하게 그려내니,

그 가운데 상식에 비추어서 허망한

중국 무림 역사의 황혼 녁 풍경이

안타깝지만 허무하게 그려졌다.


일본의 총칼이 중국을 무너뜨리는

동안 손발로 싸우는데 도통한

중국 무도인들이 무림을 벗어나

중국을 위해 제대로 한 기여는

사실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 살았고, 어쩌면 현실과

유리되어 "영웅놀이"를 했던

시대착오적인 자들로도 그려진다.


그러나 "동사서독"에서도 각각의

절망을 벗어난 고수들의 후일담을

짧고도 밀도 있는 화면으로 간추려

전달했었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홍콩"에 와서 난립했던 각종 문파와

해외 무술인들을 격파하며, 승승장구한

"엽문"의 격투 장면을 배치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시장판에서

"팔리는 무술"로 대중화되어 아직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중국 무술 "쿵후"의

이후 모습을 드러내었다.


중국 무술의 종합판이자 당시 궁극의

무도인이었던 "엽문"으로부터 무술을

배웠던 "이소룡"의 문장이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무도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갈

뿐이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무술"을 보다 발전시키고

그대로 살아남게 해 준 것이라면, 무술이라

불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진 직업이든

비직업이든 "기술"이나 "재주" 등은

우리가 제대로 살아간다면 그대로

살아남아 점점 나아지는 그 무엇일

것이다란 긍정적인 감정을 남긴다.


화려하지 않고, 무작정 강하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황혼 녁을 맞아 꺼지는

불꽃이 된 순간을 잘 벗어나면 또 다른

삶의 순간을 열어가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는 "엽문"처럼 "일대종사"라는

거창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더라도

그저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는 "고수"임을

드러냈던 것 같다.


이 메시지는 "중국 무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카라데"와 "복싱"의

고수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온 "엽문"이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더 감명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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