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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r 16. 2020

<Superman_Red Son>-다원적 히어로관

히어로물의 주제는 진화하고 있고, 사춘기의 팽창된 에고를 벗어나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한 장르라고 해도 무방할 규모를 갖게 된 것이

이 시대의 "히어로물"이다. "히어로물"의

역사가 코믹스 북으로부터도 길어지고

나름의 깊이와 너비를 갖게 됨에 따라,

단순한 작화만으로 개봉 애니메이션이

되거나 실사 영화화하는 경우 그 실패는

금방 예측이 된다.


나름의 진지한 사고나 히어로물 자체에

대한 성찰이 냄새나마 묻어있지 않으면,

글로벌 관객의 지갑을 열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Superman_Red Son은

애니메이션화 되기 전부터 특별한

작품으로 언급은 되어 왔지만,

미국산 코믹스라는 태생과 할리우드 산

블록버스터의 자기 중심주의를 벗어나

"다원주의"를 채택하고, "What if",

"만약 ~이었다면"라는 역사적

가정을 깐 다른 스토리를 채택한

"사고"와 "성찰"이 묻어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너무 역사가 길다 보니 이전과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것도 있다.


단선적인 세계관에서 양자이론을

접합한 멀티버스, 곧 다양한 평행 차원의

다른 지구가 많이 있다는 내용이 나오고,

이곳에 속한 서로 다른 히어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렇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 "소련"이 망하지 않고,

건재하게 살아 있으며, "공산주의"가

그대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싸우고

있는 세계를 우선 그린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세상 이야기다.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슈퍼맨이 나오며, 자신의 정의를 위해 독재를 정당화하는 무지막지한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슈퍼맨"이

"미국"에 태어나지 않았고, "소련"에

태어난 상황을 탄생 신화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고, 고정된 조건이 옮겨간

것처럼 그린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극적인 스토리의

전환이 벌어지는데, 소련의 어디에선가

태어난 슈퍼맨은 "스탈린"의 아들이

되고, 그 때문에 "Red Son"이라는

명칭이 "슈퍼맨" 뒤에 붙게 된다.


원래의 세계에서 "슈퍼맨"과 애인이었던

"로이스"는 이 세계에선 "슈퍼맨"과

원래는 천적처럼 싸웠던 "렉스 루터"와

결혼한 사이가 되어 "로이스 루터"가

되어 있다. 가장 충격적인 설정 중 하나다.


로이스와 렉스가 찰떡궁합의 부부로 나온다. 이런 것도 이미지의 과감한 전복의 훌륭한 예제였다.


"원더우먼"은 "슈퍼맨"과의 교류를

지속하는 "데미 스키라"의 공주로 나오지만

그 자신만의 동기와 의지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존재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고 이념과 평화를 위해 연합하는 정치적인 관계를 구성한다.

"슈퍼맨"의 절친이었던 "배트맨"은

이 평행 세계에서 "소련"에서 살고 있는

"무정부주의적 테러리스트"로 나타나고

"그린 렌턴"의 녹색 반지는 "미국"의

히어로 부대 여럿이 손에 끼고 나타나

"슈퍼맨"과 싸우는 수단으로 나온다.

이 코믹스 내용 속에서 소련에 태어난 두 히어로 슈퍼맨과 배트맨의 싸움은 필연적이며, 슈퍼맨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도 더 설득력 있다. 그린 렌턴 부대는 양념 정도의 임팩트다.

이런저런 다채로운 변화와 변주가

잘 이뤄져, 애니메이션의 끝까지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나 욕을 먹었던

"잭 스나이더"와 "조스 웨던"의

"저스티스 리그"에 이 코믹스의

이미지도 사실은 살짝 들어 있었고,

그 영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나타날 수도

있었을 변주가 그려지고 있구나라는

탄성도 올라왔다.


그러나, "잭 스나이더"는 결국

그의 왜소한 "스토리 텔링" 능력 때문에

"저스티스 리그"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추방당했지만, DCU자체가 스토리보다는

영상미와 기술, 스케일, 미학 등으로

더 승부해야 흥행이 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면,

그의 그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금의 모습은 아쉽기 그지없다.


다만,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배트맨"이 "슈퍼맨"을 증오하는 이미지와

"슈퍼맨"이 독재를 위해서 세상을 얼마큼이나

더 삭막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이미지

등등이 이 코믹스의 내용을 읽었다면,

나름 잘 그려진 것으로 받아들일만한

영상이었다는 깨달음이 와 닿았다.


"잭 스나이더"는 자신이 열의에 차서

읽었던 것만큼 관객들도 DC 히어로물에

관련된 코믹스를 열심히 읽었으리라는

일종의 착시와 착각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

갔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만들 수 있었다면,

결과적으로는 그의 모든 작품은 관객에게

나름 의미 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다시 일선으로 돌아올 

같진 않아 보인다. 다른 장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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