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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Sep 26. 2020

<에이바>-불안정한 킬러, 불완전한 드라마

인격 붕괴 경계선의  알콜중독 킬러와 잘 다듬어지지 않은 불안한 드라마

불완전한 스포일러가 더불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다른 글을

찾아가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가 정말 그런 여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 란
의문이 남으며 끝이 났다.


포스터를 보다 보면, 이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과 역동적인 액션이

더불어 있는 다이내믹한 영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바가 있었다.


액션의 스케일이 초기 포스터를

찍으면서 기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코로나를 맞아 급선회

했으리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출연하지 않는 헬기, 애인의 총, 거대한 폭파씬은 이 영화가 잃어버린 예산의 규모를 감잡게 한다.


극 중 "에이바"가 가출하며 포기했던

전 애인 "마이클"이 강인한 인상으로

들고 있는 자동 소총은 영화 속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액션과는

심지어 상관없는 인물로 나오고.


"제시카 챠스테인"이 "제로 다크 써티"

에서 끝끝내 터뜨리지 못한 강렬한

에너지와 울분, 활력을 이곳에서

터트려보라고 기획한 영화는 아닐까?


그런 기대감을 절로 갖게 했었고,

예고편의 영상만을 보자면 그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이

분명한 의도였음이 드러난다.


스케일이 줄어들고도 줄어들어

마지막 후반부로 가면 "에이바"의

숙소, 공사장의 뒤편, 길거리로

마무리된다.


일당백의 여전사로 묘사되지만,

그의 적도, 그 자신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싸울 동력도 잃으며,

그가 정말 그런 여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란 의문을 남기며 끝났다.



이렇게 "에이바"가 알코올 중독과
가정, 조직의 문제로
망가져 가는 동안
영화와 배역의 매력도
점차적으로 하락하는 것이
또렷이 느껴졌다.


"제로 다크 서티"의 "빈 라덴"을 잡고자

CIA 담당자로서 고문을 불사했던

"제시카 차스테인"의 캐릭터와 겹친다.

캐스팅의 이유가 명확한 것이다.


초반부에서 독특한 여성 킬러로

"에이바"를 이미지 메이킹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상부 조직의 명령을 받아

암살 대상을 마주하고 죽이기 전에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물어보며

집요하게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 이 킬러의 문제점으로

나온다. 또 하나는 알코올 중독증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명령대로 죽어 마땅한 자를 죽이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믿기 위해, 죽일 대상에게 그의 죄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상의 답변은 없다.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고, 계속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이 정당한 조직인가를

의심하는 모습은 어쩌면 일상 속의

우리 중에 상당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일상의 우리를 어느 정도

비유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조직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갖고도 이를

억누르고 열정적으로 자기 일을 해낸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차스테인"의

캐릭터를 절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의심과 더불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로 다크 서티"에서의 냉정함을 유지하며

약간의 회의감과 권태감을 보이면서

암살 대상을 가볍게 죽였다.

이 암살 조직은 소규모의 가족 사업체로 나오고, 오너의 딸이 직접 에이바를 도청하며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 회의감을 감시한 조직은 그가

조직에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감잡게 되고, 임무 중에 그를 죽이기

위한 함정을 파게 되지만 그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를 벗어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장군을

하나 유혹해서 지병으로 죽게끔

위장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밀고로

발각된 그는 싸움에 적합하지 않은

복장을 하고도 수많은 군인을 죽이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는 압도적인

킬러의 모습을 잘 연기해냈다.

매트릭스 1편의 건물 속 싸움 장면이 떠오르는 액션이었다.

여기까지는 종래의 여성 킬러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포장하는

여러 장르 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갔다.


그 이후의 드라마가 독특함과 고유성을

가진 여성 킬러 물로 이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시도가 되어 나왔지만, 그 드라마의

불완전성과 허술함은 주인공에게

부여한 "알코올 중독"과 자기 회의에

빠진,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자신을

파괴한다는 설정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극화로서의 매력조차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직과 그 사이에서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암살 청부업을 하는

"듀크"의 배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의

연기력은 물론 하자를 잡을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


스토아학파의 문장일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 격언을 여러 번 반복하며 멘토처럼

나오고 "에이바"의 극 중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역할로 매력적인 대사와

불안정한 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정말 잘 해냈다. 그가 극 중에 죽은 뒤로

생긴 빈 공간은 결국 메워지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불안정함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약한 모습은 듀크에게만 보인다.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를

이야기한 것을 그의 어머니가

당시 알코올 중독이었던 그의 허언이라고

몰아붙인 바람에 가족과 애인을 팽개 치고

부정한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욕망을

떠나 미군에 입대한, 구구절절이

불행한 가정사는 그가 왜 그렇게도

암살 대상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 했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적어도 아버지보다 더 나쁜

일을 한 자들을 죽인다는 합리화를

꼭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아버지가 죽었고, 조직으로부터

잠시 쉬라는 명령을 받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과제들과 마주하며, 동시에

그를 죽이려 보낸 암살자를 처단하며,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한 전 애인과의

갈등을 벌이고, 그 애인이  벗어나지

못한 도박중독에 의해서 벌어진 빚

문제 때문에 도박장을 찾아가

싸움을 벌인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문제가 중첩되다가 다시 술을 마시고픈 충동에 빠져든다.

이렇게 "에이바"가 알코올 중독과 가정,

조직의 문제로 망가져 가는 동안

영화와 배역의 매력도 점차적으로

하락하는 것이 또렷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체력과 무공을 유지하기

위해 조깅을 하고 발차기를 수련하는

모습도 그려지고, 그와 유사한 이미지를

보이는 왕년의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가

연기한 어머니와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화해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순식간에

그 모든 것은 자기 파괴와 타락의

최저점까지 떨어졌다.


결국 자신 때문에, 그를 지키려고 했던

"듀크"는 조직의 오너에게 살해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영상을 보게 된

그는 복수하겠다는 감정보다는

전 애인을 찾아가 같이 도망가자는

일탈을 시도하지만, 여동생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포기한다.


그다음에 다시 도박장을 찾아가

도박장의 중국인 여자 사장과 그의

부하들을 무참하게 공격한 뒤에

전애인의 빚을 갚을 돈을 주고 나온다.


그러고 나서는 숙소에 있던 술을 있는 대로

다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총을 들어

자살을 시도 한다. 이대로 어둡게 끝났어도

적어도 극화의 불완전함은 좀 덜했을 뻔했다.


여전사로 가졌던 모든 것을 일거에 버리고 죽고자 한 그

이 장면 이후에 바로 들이닥친

"콜린 파웰"이 연기한 조직의 오너,

"사이먼"과 호텔 방 안에서 총격전을

벌일 때, 관객이 갖게 될 감정은 이미

"에이바"의 편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냥 기다렸다면 죽었을 "에이바"를 죽이기 위해 방에 들어온 그는 초지일관 어리석게만 그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조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에이바"를 죽이러 왔던 조직의

보스에게 심정적인 동의가 이뤄지는가

하면 그조차도 아니게 된다.


그저 바보같이 이미 죽기로 한 "에이바"를

다시 살기로 작정하게 만들고, 싸우던 중에

그를 제대로 죽일 수 없음을 깨닫고

살려주고 방 밖을 나섰다가 여분의

총을 들고 찾아간 "에이바"에게

어이없이 죽음을 당하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허무 개그에 가깝다.


5를 세보라고 말하고는 1을 세고 쏴버리는 의미 없는 복수 씬이다.

이후에 보스의 딸과 그의 부하들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러 올 것이 뻔함을

안 그는 자신의 모든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도망가라고 이야기하고서는

그를 뒤쫓는 보스의 딸을 뒤로하고

서둘러 거릴 걸어간다.


그다음에 "듀크"의 대사가 그에게

주었던 경구와 더불어 내레이션으로

들리는데, 그저 공허할 뿐이었다.


아마도 이 부분부터 "지나 데이비스"도

왕년의 무력을 뽐내고, 전 애인 "마이클"도

자동 소총을 들고 싸우며, 적도 헬기를

타고 강습해와서 이에 맞서 싸우다가

가족이 모두 화해하고 해피엔딩을

맞았어야 액션 영화로서의 매력적인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예산이 그 이상의 액션씬을 만들

규모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장면을 만들려면 후속 편이

나와야 할 텐데, 이미 흥행은 그런

수준이 되지 않았을 것이 뻔해

보인다. "에이바"는 매력적인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 채로

마무리된 불완전한 극화였기

때문이다.


여기엔 불안정한 인물을 그린

드라마가 불완전한 결말로

끝난 나쁜 사례가 하나 남았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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