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방향을 잡다
기다렸던 스케일의 작품이 나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그렇지 않았다. SF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도 기생충의 쾌거를
예감케 해주는 작품이 나왔다.
이 작품은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어설프고 아쉬웠던 한국형
우주 SF물에 대한 지금까지의
패배감을 조금은 씻어 내려주었다.
이 꽃이 피기 전까지, “설국열차”가
있었고, 마녀”가 있었으며, “기생충”이
안 될게 무엇이 있냐는 자신감을
우리 영화계에 제대로 심어줬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서 아주 높은
수준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클리세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등등 칭찬보다는 비난이
더 많이 도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본 순간 그 끝까지 영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뻔할 것 같으면서도
그 뻔한 결말을 어떻게든 확인하게끔
만든다는 것은 내겐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과도 같다.
클리셰가 전혀 없는 영화가 기괴함과
이상함으로 범벅이 되어 그다음 화면은
볼 생각도 들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나을까? 어느 정도는 클리셰로 범벅이
되었지만, 군데군데 신선함을 찾을 수
있어 계속 화면의 변화를 쫓아 시선을
옮겨 가게끔 만드는 것이 나을까?
상업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더 좋은 영화라고 평해야 할 것이고,
영화의 전문성과 예술성, 완결성, 영화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저 높은 이상적이고
창조적인 세계를 끝없이 탐색하는
구도자라면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여러분이 특별함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이 영화는 추천할
만한 영화의 목록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시각적 즐거움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잠깐이나마 경험코자 한다면 이 영화는
목록의 끝이나마 실릴 수 있는 품질을
갖고 있다.
이런 수준에 이른 우주 공간을 다룬
SF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렸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수준에 완전히
가 닿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나마
닿아 있는 작품을 보았다.
좋게 말하자면 국뽕에 차오르게 만든
영화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그런 수준
이상의 무엇이 되고자 하는 야심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설픈 CG와 신파가 약간 있다.
맥락이 잘 안 맞는 것 같고, 템포가 살짝
어긋난 듯한 긴박감이 모자란 장면이
조금 보인다. 결말의 다소 김빠지는
해피엔딩은 후속편을 의도했다는
가정 하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화면을 돌리거나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이 정도 수준만이라도 나오길 기대했던
시간이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