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구의 진화에 개입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요. 그동안 한 번밖에 개입하지 않은 것은 관찰자인 우리의 최소개입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기도 할 뿐더러 개입이 필요할 만큼 큰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오. 우리는 선량한 관찰자로서 임무만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관찰자가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왔소.”
진은 턱을 모아 쥐며 궁금한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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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진화한 자들과는 대화하지 않나요? 그들이라면 그들과 비교해서 진화가 덜된 나보다 훨씬 대화하기가 편할 거 같은데요?”
홀로그램으로 평범한 동양계 성인 남자 외모로 투사되고 있는 이방인은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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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숙한 인격과 연결고리인 텔레파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성숙한 인격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이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오. 만약 그들이 다양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저 포유류에서 갈래를 달리한 한 종에 지나지 않고 멸종의 길을 걸을 것이오. 그러나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그들은 좀 더 완벽한 인격을 향해 더 진화해 나갈 수 있소. 그런데 만약 우리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들이 직접 논의함으로써 더 가치 있는 답을 구할 수 있는 상당한 부분을 재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오.”
진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은 인류와 진화한 자들을 다른 존재로 생각하나 보죠?”
“인류를 기반으로 한 모두는 어느 정도 비슷한 부류로 생각하고 있소. 다만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면 다른 존재로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겠소? 정확한 비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화된 자들의 경우는 외모에서는 구인류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지적인 수준면에서는 마치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된 것처럼 큰 간극이 있다는 판단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은 물었다.
“어쨌거나 왜 저와는 대화를 하는 것이죠?”
“우리는 인류를 비롯한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심대한 위기가 닥쳤음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소. 그런데 최소개입원칙에 따라 행동하자면 우리는 최소접점으로 우리의 생각과 정보를 알려야하오. 진화한 자들과 구인류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다보니 진을 만나게 된 것이오. 또 진화한 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대화한 구인류는 진이 유일할 거요.”
‘아니? 댁이 신인류가 아니라고?’
“테스트를 치르면서 메인프레임의 숨겨진 소스를 보니 진화한 자들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조절할 수 있어요. 아무리 최소개입원칙이지만 효과를 생각한다면 직접 진화한 자들을 만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어이, 지금이라도 인정하지?’
“그들과 직접 대화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가 또 있소. 진화된 자들의 텔레파시능력은 극도로 발달해서 우리와도 텔레파시를 사용해 의사를 교환할 수 있소. 장점이라면 생각을 떠올리기만 하면 이미지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단점으로 서로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오. 진화된 자들이나 우리는 서로의 대화에서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제한 없는 접촉으로 인해 인류전체와 관찰자인 우리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오. “
‘그만하라구.’
“이런 영향은 비단 우리가 세운 최소개입원칙에도 위배될뿐더러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인류에게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진화된 자들과의 직접대화는 쉽사리 추진할 수 없소. 게다가 구인류와 진화한 자들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라서 구인류인 당신이 적격이란 판단이오.”
어께를 으쓱하며 진은 말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마치 우주를 구할 영웅이라도 된 것 같네요. 저는 히틀러같은 선동가도 아니라서 그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요.”
일렁이는 홀로그램으로 비춰진 남자는 정색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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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능력은 지금껏 살아온 구인류 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하오. 당신이 살고 있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정보는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오. “
되게 말이 안된단 느낌을 진은 겪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주어진 정보를 사용해도 좋소. 만약 당신의 판단으로 우리의 조언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우리의 생각과 정보를 따르지 않아도 좋소.”
“우리는 가능하면 지구에서 이성을 가진 생명체가 더 진화해 나가길 바라고 있지만 관찰자인 우리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지는 않을 것이며, 당신의 자율의지도 존중할 것이오.”
“참 애매하군요. 도와주고 싶지만 직접, 크게는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정보는 줄 테니 알아서 해라?”
“그런 셈이요”
“준다는 정보가 대체 뭡니까?”
“먼저 당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동의해야하오. 당신이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역할은 최소개입원칙에 따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요.”
진은 잠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과 지금 대화하고 있는 이 홀로그램, 외계인이라고 생각해주는 시늉 좀 해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좀 더 대화를 끌어보기로 하고 화제를 돌렸다.
“진화된 자들과 정치가, 재력가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듣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당신의 말이 100% 허망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군요. 그런데 당신들의 정체가 뭐요? 어디 안드로메다쯤에서 온 외계인들이요? 그리고 내가 당신들의 말을 따르면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라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오?”
홀로그램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려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의 당신에게 특별한 믿음을 주는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소.”
“확실히 우리가 존재한다고 증거를 들어 단정 지을 수 있는 인류는 지금 우리를 만나고 있는 당신을 제외하고는 없겠지만 첫 번째의 개입 이후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인류의 시도가 여러 번 있었소.”
“가장 최근에는 진화된 자들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접근을 시도한 적이 있소. 우리는 적어도 인류에게 완벽하게 우리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집요한 추적에 몇 가지 단서를 주게 된 것 같소.”
“다음 번 진화된 자들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물어보시오. 그러면 확인할 수 있을 거요.”
진은 약간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대체 뭐라고 물어봐야하죠?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에서 만난 홀로그램 속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물어봐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