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진과 사브리나의 재회>-a

진의 다중인격

by Roman

7. 진과 사브리나의 재회


a. 진의 다중인격


진은 사브리나를 만나거나 연락을 취해선 안 되었다. 핸들러 교육생은 탈락과 동시에 핸들러가 갖게 될 극비 사항에 접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배운 내용도 극비가 될만한 내용은 탈락자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다.


다만, 관계의 삭제까지는 하지 않는다. 핸들러 교육생이었다는 기록은 영예이자, 나름의 계급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자격이므로, 핸들러 자체가 영광스러운 자격이었다는 기록은 남겨두어야 교육생의 동기가 유지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분위기가 유지된다.


하지만 진이 핸들러로서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자 나름 필사적이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핸들러의 자격이 주는 권리 중에 하나로서 핸들러 탈락자와도 컨택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쉐도우 기능”이었다. 오류 수정의 목적으로 집이나 사무실 등의 접속을 해제할 수 있는 공간 밖에서 온라인에 계속 접속했을 때 올 수 있는 간섭이나 방해를 떠나서 일정 시간 일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도 재접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 접속이 이뤄지고 문책을 받았다.

(출처: unsplash.com)

“쉐도우”로서의 시간 동안 그는 위치 추적이 되지 않고, 말과 행동, 생각에 대해서 만큼은 온라인 상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게 된다. 접속 이탈자와 같은 상태가 되어 그들을 추적해야 할 때 요긴한 기능이기도 하다. 통상 시스템에 거대한 오류를 일으키려는 세력은 그 이탈자 중에 있었다.


합격 통지서를 정식으로 온라인으로 다운로드하자마자 일과를 마치고, 처음 한 일은 사브리나가 사는 곳으로 튜브를 타고 날아가는 일이었다. 그 외에 다른 할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공식적인 업무 목적은 '블랙마켓 탐색'이라고 기록해서 케언즈와 다른 핸들러가 바로 알 수 있는 공지 채널에 올려놓았다.


‘물론, 케언즈가 내가 무엇을 할지 전혀 알지 못할리는 없겠지. 모르는 척만 하겠지. 그는 내게 자신이 직접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주고자 하는 역할이 있어. 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막지 않을거야. 하지만 대놓고 규칙을 어긴다면 그도 어찌할 수 없이 내게 징계를 내릴 수 밖에 없지. 이것은 규칙을 지키고 있다는 명목상의 표시 정도일뿐.’



사브리나가 자주 나타날 것이 뻔한 거리에서 온라인 메시지마저 보내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튜브를 같이 탔던 그 장소에서 꼭 이 즈음에 그가 올 것이라고 끈기 있게 믿으며 기다렸다.


과연 사브리나가 나타났고, 눈물 어린 눈으로 다가올 때 진은 같이 흐르는 눈물을 또한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둘이 신인류가 자신의 예측에 맞게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말살코자 하는 대상인지도 모르니까.


"진, 네 얼굴을 보니 정말 그때 일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고치고 싶어."


다이너소어가의 공룡 박물관에서 수많은 뼈와 공룡 홀로그램을 지나친 뒤에 한적한 벤치에 앉자마자 사브리나는 진의 손을 잡고 눈을 또렷이 쳐다보며 말했다. 사브리나는 한순간의 실수로 그가 잃어버린 커다란 것이 사회적 신분조차 아니라 진과의 지속적인 만남이었다고 느꼈다.

(출처: unsplash.com)

"고칠 필요가 없어질 정도로 뒤틀리고 꼬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어서 말이야. 굳이 그런 바램을 가질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어. 사브리나.”


하지만 진의 대사는 그런 사브리나의 감정은 무시한 것처럼 건조하게 흐른다.


"무슨 이야기야?"


"한 인간이 100년이 넘는 기억을 정확하게 가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어서 온라인에 기록을 접속해서 확인하고 있잖아."


"어떤 사실에 관련된 모든 기록만 고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과거가 바뀐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어.”


진은 이 순간에 맞지 않게 외로움에 빠진 것 같은 쓸쓸한 표정으로, 바뀌지 않는 사브리나의 지금 모습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어깨를 감싸 쥐며 쳐다본다.


사브리나와 자신만이 동류이고 한 편이란 이야기를 해야겠단 생각과 사랑의 감정으로 두근 거리는 가슴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기엔 너무 짧은 시간만 남아 있다.


신인류나 관찰자 같은 존재들이 언제 둘의 의식 속에 침투해서 노이로제라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자신이 처한 일을 한시라도 빨리 말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예를 들어 공룡의 멸종이 운석 때문인지 변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연구결과와 기록을 변비 때문이라고 적어두면 그 연구를 새로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공룡의 멸종 이유를 변비라고 기억하게 되는 거야."


키스를 나누고 얼싸안아야 할 판에 진이 이상하게 진지하다고 사브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 이후에 또 누가 다른 생각이 들어서 운석 때문이라고 모든 기록을 고쳐 두면 우리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거야. 우리의 이성과 기억은 물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니까."


"모든 기록을 어떻게 다 고쳐? 중요한 자료에는 항상 백업자료를 만들잖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어떻게 하지? 새로운 백업자료가 없는 상태로 수세기가 그냥 지나가지. 그런 자료들을 조금씩 수정하다 보면 인류의 역사 아니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달라지게 돼."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우리 뇌도 정확도 면에서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세대를 거듭해서 연속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기억장치야. 여러 세대의 사람의 중첩해서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어."


"....... 우리는 일루미네이션 공원에 매일 일정 시간 연결해서 동기를 맞춰. 그렇지?"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그러는 게 당연하지. 누군가의 시간이 빠르게 가거나 느리게 간다면 그건 불공평하니까."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일루미네이션 공원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받지. 전송료가 가장 저렴하고 속도도 빠르니까. 이 데이터는 일루미네이션 공원의 관리자를 통해 검열되고 수정될 수 있어. 그러니까 뇌와 뇌를 연결하는 단계에서 정보가 수정되기 때문에 눈치챌 수 없는 거지. 또 자료의 증가율이 높기 때문에 누구도 이 모든 자료가 수세기에 걸쳐 아주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없었어."

(출처: unsplash.com)

"이제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는 가는데.... 수세기에 걸친 정보 수정이라면 내 이야기랑은 상관없잖아. 너 여전하구나 비슷한 소재로 이야기해서 결국 네 이야기하는 거."


그렇게 보고 싶어 목말라했던 애인이 건조하고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한 후 사브리나는 토라진다. 사랑의 언어를 이 남자는 종종 해석해내질 못한다. 그가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믿지만, 사랑의 표현에 서투르기 그지없는 것은 부족한 느낌으로 남았다.


바보 같은 진은 사막 한 복판에 있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이 그임에도 불구하고 물 한 모금 마실 생각 없이 파피루스를 꺼내어 들고 역사상의 발견을 정신없이 적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탐험가인양 자신의 발견을 늘어놓기에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HH Test 때문에 구시가지에 갔었어. 거기에 구형 메인 프레임이 있었고."


그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사브리나는 혹시 진이 탈락해서 자신과 함께 살 생각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한다. 로맨틱한 기분이 살짝 번진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달랐어. 그리고 난 후에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좀 특별한 존재들을 만난 거지.”


진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가감 없이 모두 말했다.


그런 말을 하던 중에 사브리나는 지방의회 근처에서 들었던 신인류니 구인류니 하면서 진과 자신에 대해서 환영처럼 떠올라 의식으로 내용을 던지던 존재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이 진과 사브리나의 대화를 감시하고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과 자신만이 예측이 되지 않는 종류의 구인류이고 리처드는 사고로 인해 신인류의 감시망에서 벗어났다면, 케언즈는 어쩌면 구인류의 대표로서 암암리에 교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것과 상관 없는 진과 자신은 눈엣 가시일 것이다.


사브리나는 리처드와 연관된 사고로 인해 추락했으니 일단 요주의 인물로서는 진보다는 더 관심이 낮은 존재가 되었을 거고, 이제 살해의 위협까지 겪은 진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관심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을 때의 반응이 너무 냉철하다면 사브리나도 진만큼 주의를 끌게 될 것이므로 그런 주의까지는 끌 필요가 없을 사랑에 빠진 히스테릭한 욕구불만의 여자 정도가 지금 필요한 연기였다.


감시망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대화가 오가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야만 진의 위기도 벗어나는 방법을 찾을 사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브리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거의 신인류급의 빠르기로.


사브리나는 자신의 감정과 의식을 재계에 입문하기 위한 시험을 볼 때처럼 일관성 있게 컨트롤 해보았다. 이 의식을 읽어내지 못했기를 요행처럼 기도하면서. 일단, 몇가지 내용은 의식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내용대로, 나머지는 의식을 굴절해서 말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브리나"에게는 가능했다.


"뭐야, 그러니까 계속 냉정하게 잘 대응하다가 결국 그 관찰자의 말을 다 믿었단 말이야? 너 어떻게 된 거 아니니? 너 바보지? 그러니까 내가 생물학도 좀 들어 두라고 했잖아! 경제학과 일루미네이션 공원에만 빠져가지고..."


사브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상상했던 로맨틱한 분위기가 생기지 않고 있는 것도 화에 불을 지핀 것처럼 의식을 집중해서 이른바 메소드 연기에 빠져들었다.


"좀 진정하라고... 네가 그동안 힘들었다는 것은 알지만..."


"힘들긴 뭐가 힘들어?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를 보니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브리나가 예측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에 당황했다. 마치 그런 당황스러움을 기대한 것 같은 표현이 나와서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였다.


'흠... 이건 스키조프레니아의 증상인가? 심리학 박사의 도움이 필요한 듯... 좀 검색을 해보아야겠는 걸...'


진이 목 뒤의 단추에 손을 가져가서 온라인에 쉐도우 기능을 유지한 채로 시크릿 모드로 접속하면서 심리학적 문제들에 대한 증상과 저명한 심리학자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고지식한 진이 혼자 생각하도록 사브리나가 가만 놔두지는 않았다.


"관찰자라니... 말도 안 돼!”


진은 사브리나를 유심히 살폈다. 사브리나 이야기도 듣고 검색도 하려면 속도를 좀 늦추어야 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은 일이다.


"게다가 진화된 자들이라니... 그건 마치 500년 전 사람들이 침팬지들보다 자신들이 더 진화했다고 떠들어대던 무식한 소리와 뭐가 다르니? 지금 살아있는 생물들은 모두 같은 만큼 진화된 것들이야. 동시대를 살면서 뭐가 더 진화했네.. 덜 진화했네... 따지는 것은 생물학의 '생'자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라고! "


“아리안족과 비 아리안족으로 인종 구분을 하던 나치가 떠오르지, 물론 신민과 비 신민으로 비슷한 짓을 했던 일본 군국주의도. 근데, 그럼에도 신인류는 텔레파시가 되면서 머리가 회전하는 속도가 10배쯤 빠르다고. 우리보다 더 나은 면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그 점에서는 낫겠지. 하지만 텔레파시나 뛰어난 두뇌가 우수함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렇다면, 분명히 약점도 있을 거야... 인간이 두뇌가 발달하면서 신체가 약해진 것처럼 텔레파시가 생기면 뭐가 제일 먼저 필요 없어질까?”


"발성기관."


어느 순간 진도 진지해져 버렸다. 진의 집중이 진화심리학으로 순간 옮겨가 버리고 머릿속 검색어도 바뀐다.


"그래, 맞아... 그런데, 발성기관이 결정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발성기관도 함께 변화하고 어디 다른 곳이 약해질 수도 있지..."


"그렇지. 가능성이야... 뭐... 진화는 예측할 수 없으니까... 어디서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그게 어디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해낸다는 것은 아무 정보 없이 무리가 있지"


"알긴 아는군... 그런데, 진화된 자들이라는 표현에 의심을 안 했다는 말이야? 진화의 흐름을 벗어났다고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네가 만난 관찰자라는 존재는 분명 가짜야. 나는 그 신인류와 관찰자가 모두 한통속이란 생각이 들어."


"뭐라고?!"


진은 후회스러웠다. 역시 사브리나는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생각해봐. 진화의 조건만 갖추어진 상태에서는 그 어떤 생물도 진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밑도 끝도 없이 함부로 진화의 흐름을 벗어났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인간 심리적 오류에 호소하는 고대 전형적인 방법이었어. 그걸 다시 써먹다니... 뭔가 이상해..."


진화의 조건이라... 그러고 보니 이 말은 귀에 익숙하다. 사브리나가 앞에 있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좀 심각한 검색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뒤로 한채 진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브리나를 또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사실은 그것 말고도 이상한 것이 있어. 이건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지만..."


'이미 너무 지체했어. 더 지체하는 것은 사브리나한테 더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몰라... 지금 뭔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아쉽군...'


"안 들어도 알겠는걸... 그런데 이젠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사브리나."


얼마나 불러보고 싶던 이름이었던가? 사브리나! 진은 정말 아쉬웠다.


"어, 그래? 어..."


진은 사브리나를 몰아내듯 내보내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사브리나, 난 이것이 커다란 싸움으로 변할 거란 예감이 들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게 표현하기보다 지금은 너를 포함한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어.’


<문제 발생! 제1피험자 오염!>


<무슨 소리야?>


<신원이 정치인이 아닌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게 누구야?>


<이름은 사브리나, 현재 재계에 속해 있음, 과거 제1피험자와 함께 공부한 적 있음.>


<뭐야, 별거 아니잖아!>


<대화에 진화에 대한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래 어디 출력해봐!>


<예.>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진의 상태만이라도 자세히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사브리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진이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기에 그것이 결국 자신이 연출한 연기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진에게 우리가 처한 위험을 더 확실히 경고했어야 했는데...'


진에게 바보라고 욕만 하다 돌아선 자신이 바보 같아 한심스러웠다. 필요했던 건 사랑 어린 눈빛과 어루만짐, 위로의 대화였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인류와 관찰자는 한패다. 한쪽이 안 통하면 등장하는 두번째 옵션. 배드캅, 굿캅처럼 한쪽은 어르고 한쪽은 달래고.


진은 지금 뭔가에 쫓기듯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인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바람이 들어가 있다. 이게 혹시 케언즈가 바랬던 것일까? 그 완벽한 인격자처럼 자신을 포장한 존재가 누군가를 조종하는 방법은 아닐까?


그 관찰자는 타인의 심리를 조종해서 자기가 원하는 뭔가를 하게끔 만드는 데 있어서 전문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진이 이런 식으로 살짝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땐 이렇게 보내진 않을 거야.’


사브리나는 이순간 의식의 층을 2층으로 나눠서 사고할 수 있었다. 신인류가 들릴 수 있었던 층위와 자신이 내밀하게 사고할 수 있는 그 아래 층.


이것이 자신만 할 수 있는 능력인지 타인도 갖고 있는 능력인지는 모른다. 다만 진에게도 이런 비슷한 능력이 있기를 바란다. 아래층의 의식 속에서.



진은 집으로 돌아와 휴식 모드로 들어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사브리나를 위해 시작한 검색인데, 오히려 가장 신경을 집중시키는 자료는 '다중 성격장애'였다. 다중 성격장애는 자아가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이다.


중요한 증상은 하나의 성격이 다른 성격이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성격이 저지른 일은 다른 성격이 알지 못한다.


'휴... 난 아니군. 내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인격은 서로를 다 알잖아... '


진은 여러 개의 서로 알고 있는 인격을 지니고 있는, 학계에 전혀 보고된 바가 없는 다중인격을 갖고 있었다.


그 인격들이 서로 얘기를 나눠서 종합하면 꽤 괜찮은 결론이 났다. 이 인격들을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 집어온 것은 본체인 “진”이다.


스캐너라는 기기로 창조된 가상 인격을 복사해서 사용했던 범죄자들과는 달리 “진”은 그저 공원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가상현실 속에 자신의 역할을 했던 인물을 자신 안으로 빨아들일 수 있었다.

(출처: unsplash.com)


요가의 대가인 “무사다난”이 수소 연료 폭파 시에 가사 수면에 빠지게끔 하기 위해 호출되었고, 각각의 핸들러 시험 과목에 맞는 최고 수준의 인물이 카트리지 형태로 진의 내부에서 필요시에 주연 배우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케언즈던 신인류던, 미심쩍은 관찰자던 그들이 만났던 것은 오로지 진의 의식뿐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던 초기에 유능한 심리학자를 찾아 개인 채널로 접속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젠, 웨스트 서울 대학 심리학과 수석졸업.


[제 인격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찾아보니 제대로 형성된 인격만 12개인 것 같아요.]


[그걸 모두 인식하고 있단 말입니까?]


[예. 개개의 특성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데요... 다 설명해 드릴까요?]


[이런 케이스는 600년 심리학 역사에서 처음이군요. 이 사례를 학계에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이건 환자의 개인 정보로 보안 처리해 주세요. 이게 치료받아야 할 질환인지 아니면 능력으로 봐야 되는지부터 파악해주세요.]


지금은 몇 개의 인격이 들어와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안 될 정도다. 단지 신인류던지 누구든지 진의 의식에 와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의 다른 인격의 의식에 대해선 잘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젠은 내 의식 속 인격의 분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신인류를 등지고 싸워야만 한다면 이 같은 내용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선 안된다. 다른 인격의 의식의 존재를 계속 알 수 없어야만 해.’


마침, 아이젠은 누구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 연구했다. 인류 심리학사의 혁신적인 발견의 수익과 영예를 혼자 안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을 거란 것을 진은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분석 결과에 대한 내용을 진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좀 오랜 시간의 검토가 필요하단 말만 계속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