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진과 사브리나의 재회>-b

아이젠이 확인한 진실을 조작하다

by Roman

7. 진과 사브리나의 재회


b. 아이젠이 확인한 진실을 조작하다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였던가? 아니면 '배운 게 도둑질'이란 표현이 맞는가? 어느 쪽이 맞는지 검색할 시간도 아까웠다. 한시라도 바삐 아이젠이 진의 희귀한 다중 성격 장애에 대한 발표나 정보 노출을 하기 전에 신인류가 하는 방식으로 그가 안 것에 대해서 외부에 노출하지 못하도록 그의 인식을 왜곡하고 망가 뜨려야 한다는 착상이 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출처: Photo by Nahel Abdul Hadi on Unsplash)


우선 핸들러로서의 모든 자취가 남지 않을 방안을 강구하면서 동시에 핸들러로서의 특권을 이용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동시에 신인류 쪽의 텔레파시 감시망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야만 한다.


1. 아이젠이 진과 나눈 대화를 기초로 만든 온오프라인의 정보에 접속한다.

2. 그 정보에 대한 그의 기록을 수정할 수 있도록 검색하는 정보의 최신 내용이 왜곡되도록 만든다.

3. 진과 했던 상담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 정보로 갱신하게끔 한다.

4. 의식적으로 자신이 다중의 인격을 갖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도록 하고 그 데이터를 지운다.

5. 지워도 필요할 때 그 인격은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알아서 나타날 것이다. 의식 속 타 인격과의 대화 내용은 진의 의식 본체에 남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인격의 의식에 남아 본체에는 남지 않게 한다.

6. 자신이 다중 인격 또는 아이젠에 관련해서 검색한 내용이 순간순간 (10초 이내에) 지워지도록 한다.

7. 단, 최초의 방문 기록은 제목만 남겨두되 상세 상담 내역은 지워버리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아이젠이 거주하고 있는 근접 개인 전파망에 접근하여 이와 접속하고, 자신의 전체 접속망과의 접촉을 "쉐도우 기능"으로 끈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그가 진과 관련해서 비교 샘플을 찾기 위해 했던 모든 검색어를 입수했다.


"감마 트레커"를 사용하는 아이젠에게 "알파 트레커"를 사용하는 진이 해킹을 하는 것은 이미 상대적으로 훨씬 쉬웠고, 핸들러로서의 해킹 조직에 대한 역해킹 공작을 배운 진이 그가 가진 정보의 진위 여부를 뒤바꾸어 놓는 것도 아주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텔레파시를 할 줄 아는 존재라면 이런 작업은 훨씬 더 쉬울 것이 분명하다.


아이젠과 진료 상담 예약 같은 것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주로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 카페에서 마치 사브리나를 기다려서 만난 것처럼 연락 없이 기다리다가 우연히 만난 척을 했다.


"아이젠 선생님!"


"진, 이곳에 어쩐 일이세요? 오늘은 어떤 인격으로 왔나요? 진 맞아요?"


"하하하, 오늘은 영화 사이코의 주연 배우라고 해둘까요? 저도 이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카페가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왔어요.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여기 알려준 적도 있었던 것 같네요."


"오늘은 집에서 샤워 같은 것은 안 하고 잠에 들어야겠네요. 영화 속 여배우처럼 주연 배우의 칼에 찔려 죽기 싫다면. 하하하."


환자의 정보를 농담거리로 삼은 아이젠에 대한 몇 가지 감정이 잠깐 들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 연관 키워드로 신인류가 그와 진의 의식을 파고 들어가서 뭔 일이 있었는지 금세 보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아이젠을 향해 떠오르는 조롱의 언어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지운다.


"전에 같이 상담할 때와 또 다른 양상의 일이 벌어졌는데요. 저 죄송한데, 제가 요즘 정부에서 좀 중요한 일을 맡게 되어서 여럿이 볼 수 있는 외부 공간에서 말씀드리기가 좀 두렵습니다."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좀 누추하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눌까요?"


"네, 폐가 안된다면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은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정보 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흡수할 수 있도록 핸들러가 갖고 있는 알파 트레커의 기능 중에 하나인 데이터 흡입 장치를 켰다.


정보화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공간 내에서 빨아들이는 기능으로써 특정 공간 내의 지문이나 DNA 정보 등을 포함한 신체적, 비 신체적 정보를 날 것으로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단말기 키보드의 특정 키에 묻어 있는 지문의 빈도를 분석하여 어떤 문장을 작성했는지를 파악해 내는 것도 가능했다.

(출처: Photo by Gursimrat Ganda on Unsplash)


"제 인격들이 어느 순간부터 모두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는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게 최근 최신 학술 채널에 발표된 자료들을 보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요, 일시적인 현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인류가 일루미네이션 게임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격을 하나로 동일시하지 못하고 여러 개로 분화된 것으로 착각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혹시, 각각의 인격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닌가 싶어요."


"아니, 무슨 농담을 하시는 건가요? 불과 오늘 오전까지 그런 학술 채널의 자료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허허, 잠깐 시간을 주시겠소?"


진은 그의 집을 기점으로 모든 연결 가능한 채널을 봉쇄하고, 그가 검색했던 언어로 접속했던 채널 모두에 자기가 만들어 둔 유사 채널로 접속하도록 모든 처리를 해두고 있었다.


진짜 채널에 접속한 것은 맞더라도 "다중 인격"에 연관된 모든 검색어로 아이젠이 검색했을 때 접할 수 있는 정보와 동영상 등의 모든 내용은 "상호 인식되는 다중 인격이 일시적으로 발생되는 현상에 대한 최신 학계 발표" 등 이미 진이 만들어 놓은 가짜 정보와 연관성을 갖게끔 만들었다.


일단, 아이젠이 필사적으로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이 맞다고 우기면서 진을 통해 확인한 희귀 다중 인격자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자 검색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채널에 약 6개월 동안 같은 정보만이 나타나도록 처리했다. 오직 그에게만 벌어지는 현상으로 타인은 이를 접할 수 없다.


6개월 이후에도 시도할 경우에 대비해서 갱신된 내용도 이미 준비했다. "분리된 인격이 서로를 알고 있다는 다중 인격자 발표했던 심리학 박사 XXX가 허위 결과 조작이 밝혀져 학위 취소됨". 아마 보자마자 입맛이 싹 가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격상 연구 실적을 쌓고자 한 노력 등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최대한 기피했으므로, 만약 타인과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 순간부터 식별된 타인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자동적으로 "오류(진의 다중 인격과 관련된 최신 의학 정보)"가 발생하는 것을 원래의 가짜 정보로 실시간 수정하는 스파이 프로그램을 그에게 연결된 "감마 트렉커"에 무선으로 침투하여 깔아 두었다.


앞으로 아이젠이 시도할 수 있는 진의 케이스에 관련된 다중 인격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현상"으로 인식된다. 이 모든 조작이 100%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란 확증은 진이 아이젠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모두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만약, 사브리나라면 이런 해킹이 시도되는 첫 순간부터 자신의 채널을 모두 막고, 낯선 외부인을 찾아 불시에 그들로 하여금 검색 내용을 전송하도록 만드는 등의 진이 예상할 수 없는 시도를 할 것이고, 이런 조작은 시작 시점부터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젠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신인류와의 갈등이 끝나고 언젠가 다시 온전한 진실이 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그때는 아이젠이 자신을 연구한 결과를 통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해서 알려주고, 이를 통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안하게도.


그다음 날, 고통스러운 검색을 반복하며 불면의 밤을 집에서 보낸 아이젠은 자신의 모든 기록 저장물에서 진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지웠다. 간단한 내담자 상담 기록으로 한 줄만 남겼다.


식욕도 없어지고 모든 면에서 심각한 패배감이 느껴져 왔지만, 그는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거의 모든 구인류가 하듯이 일루미네이션 공원으로 향했다.


프로이트와 융, 아들러 등의 초기 정신 분석자가 모자이크 된 인물을 설정해서 랜덤으로 설정된 상대와 게임을 시작했다.

(출처: Photo by Arnold Mécses on Unsplash)


그곳에서도 치밀한 진의 덫이 깔려 있었다. 그가 고를 인물 설정에 관련된 다중 인격자 등장 시퀀스가 나타난다면 그들 중에 자기의 분리된 인격이 서로를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두가 게임 내의 내용에서 일시적으로만 그런 현상을 겪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건 실제의 일루미네이션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이젠의 “감마 트래커”에 심어놓은 그만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계속하다 보면 그도 결국 납득하고 위로받을 것이다. 그가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 급이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발견으로 주장할 수 없는 케이스였다고 생각하면서.


거의 모든 구인류에게 이 같은 조작이 가능했던 신인류란 얼마나 위대하고도 사악한가란 생각이 들면서, 이런 조작을 해낸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몰려오는 뿌듯한 감정을 애써 눌러본다. 이 냉정함과 치밀함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마저도 신인류에겐 노출되지 않아야 할 정보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 대한 의식 속의 기록과 감정마저 한데 모아 데이터 삭제 키를 눌렀다.


의식의 군데군데 남아 있는 데이터의 조각들을 다 모아서 붙여야만 진이 한 생각과 일이 무엇이었는지 온전하게 파악이 가능할 테지만, 신인류가 그렇게까지 시도하다간 공적인 네트워크 상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것까지는 시도하지 못할 거라 믿어 본다. 도박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최대의 변수는 "케언즈"다. 그가 신인류의 편이기라도 한다면, 이 모든 노력은 무용할 수도 있다. 진의 이러한 행동 모두가 그의 계산 아래 있다면 그저 마리오네트처럼 그의 예상에 따라 진이 움직이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진이 가진 서로 인식 가능한 무수히 많은 내부 인격과 각각의 의식’만이 케언즈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정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변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진은 지금 케언즈가 의도한 대로 자신이 움직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신인류나 구인류 중 누구의 편인지를 전혀 지금은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