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는 진과 사브리나가 자신 전용의 네트워크 채널에 돌연변이들의 존재와 신인류들의 음모를 규명하는 내용을 작성하여 보내온 뒤에 바로 진을 온라인으로 호출하였다. 사브리나는 호출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아픈 과거를 떠올려준다는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었겠지만.
진은 리처드의 호출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달려갔다. 죄책감 같은 이유였을까? 아니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케언즈"가 이렇게 설명했다. '왠지, 내 원본이 이미 어떤 계획 같은 것을 갖고 있어서 이것을 알려주려고 리처드를 통해서 너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아'라면서 말이다.
그는 진을 케언즈의 집의 응접실에서 맞이하며 전동식 자기 부양 휠체어에 앉은 채로 진에게 말을 시작하였다. 리처드는 뇌수술에 관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된 상황이었다.
"진, 그런 기술이 가능할까? 의식에 떠올리지 않고도 단지 음성만을 통해서 말을 하는 것 말이야. 뇌과학자가 모를 만한 방법으로 하나 알려줘."
"몇 가지 의성어는 의식과는 별개로 터져 나오잖아? 기술이랄 것도 없이 반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지, 습관적인 웅얼거림이라든지 말이야."
"아아, 그런 말을 들으려고 부른 게 아니야. 네가 네 의식 속에 있는 흐름을 외부에 노출이 안되도록 100% 차단하면서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를 알고자 한 거야."
"신인류의 텔레파시에 의해서 감청당하지 않고 말하는 기술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모양이군."
"물론, 차단을 해봤자.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은 다시금 검색당하기 마련이니까. 이미 이야기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알게 되어 있다는 말이 되겠지. 이미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 자체가 들키게 된다는 운명을 갖고 있는 거긴 해."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야기하기를 포기하고 말하기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 이제 무슨 비밀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픈 거야? 신인류가 알 수 없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나에겐 대머리 아저씨가 가끔 찾아오고, 면밀하게 나의 생리현상을 읽어내는 반기계 의사 나부랭이가 덤벼들고는 하지. 이번에는 휠체어를 탄 피해자가 나를 불러들였으니 무엇이든 다 들어주어야만 할 의무를 느낀다네 친구."
"진, 이미 자네와 사브리나가 어떤 방식으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신인류는 알고 있어."
"도박이었지. 100%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그쪽에서 알 수 없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지금 이 정보를 네게 보냈던 것도 도박이야. 그들이 감시하지 않을 거라고 요행을 바라면서 말이지."
"네 인격이 여러 개라는 것도 이미 그들은 다 알고 있어."
진은 순간 아이젠의 얼굴을 떠올리며 낭패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어찌해볼 도리가 없구만. 이 대화는 그렇다면 노출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아니 네가 그쪽 편이 아니라는 확신조차 사라지게 되는구먼."
리처드는 가만히 그런 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가만히 자기의 내부를 응시하는 듯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기억이 혹시 있나? 머릿속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려 다시는 떠올려지지 않는 기억 말이야."
"이런, 너도 내 머릿속을 읽는 중인 거야? 뭐 있기는 있었어. HH 테스트를 통과한 다음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신인류의 역사를 읽다가 경험했던 일이지. 달 표면을 다 덮을 만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가 대머리 아저씨가 하나 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와서 과부하가 걸리는 통에 읽었던 이야기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던 적이 있었지."
"진, 여기서 우리가 알람 장치도 하나 생각해볼 수 있겠군. 신인류가 우리 의식으로 침입할 때, 데이터량이 증가한다는 이야기잖아. 그때 어느 정도의 데이터량이 급속 증가해서 네 내부의 파일 메모리가 날아갔는지를 대충 파악하고, 그만큼 늘어나는 수치가 보이면, 그분이 오신 거라 할 수 있겠네."
"전혀 생각 못했던 부분이야. 그러니까 신인류의 텔레파시도 데이터로 의식 속에 인식된다는 걸 떠올리지 못했었어. 리처드, 자네 역시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 맞아, 대단해."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일루미네이션과 메인프레임의 하부조직 저장고 중에 하나에 밀어 넣겠어. 일단 읽어보고 극소량의 힌트만을 정리해서 의식에다 저장해두었다가 신인류의 검색이 두려울 때가 되면 쓸데없는 정보라도 불러들여 그 정보를 통째로 한 번씩 날려줘.
가능할까? 필요를 느낄 때만 정보에 접근해주면 돼. 그 데이터 저장고는 아무도 방문하거나 연결할 이유를 갖지 않고 있는 곳이야. 이미 사라지고 가치가 없어진 데이터만 모여있는 장소라서."
"굉장한 보안 기능을 하나 만들었군. 이거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까?"
"평소의 대부분의 시간에 이 정보는 네 의식 속에 남아 있으면 안 돼.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만 필요한 것이지 동시에 신인류나 케언즈 등의 사람이 이 정보를 알게 되면 절대로 안돼. 결국 머리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어야만 우리의 대화가 유효한 내용이 될 수가 있는 거야."
"너는 이미 신인류가 무엇이고, 케언즈의 미심쩍은 행동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건가? 대머리가 누구고 내가 부러뜨린 팔의 임자인 커보키언은 누구고 나와 사브리나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이제 전부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야. 자, 지금 그 데이터 저장고에 내가 알게 된 이야기들을 여러 방식으로 확장시켜서 모두 다운로드했어. 알파 트렉커의 채널을 하나 열어주면 거기에 다 담아줄게.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채널을 열어서 너와 동일하게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의 상태로 정보를 내 내부에 담아 보이겠어. 시간이 얼마 없을 테니 가능하면 10분 내에 모든 것을 끝내자."
"...... 너, 아직도 사브리나와 나와의 관계를 질투하고 있지는 않니?"
"하하하!!. 내가 혹시 너에게 바이러스라도 살포하거나 완전히 텅 비어버린 인간으로 만들까 겁이 나나? 난 이제 알고 있어, 그 질투심이나 사브리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왜 나에게 있었는지. 그리고, 교묘하게 계산된 케언즈의 모든 계획의 일부, 그걸 나누어주려는 것뿐이야.
이 내용을 알기를 시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알려지지 않고 열리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로만 남게 되지. 그리고, 네가 알았다가 잃어버린 내용을 다시 찾는 길은 오로지 이 방법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음 해. 내가 아직도 질투하고 있다면, 아마 네가 영원히 이 모든 걸 모른 채로 살게 만드는 길을 택했을 거야. 알려준다는 것은 질투심 같은 감정과는 별개로 나에게 이른바 동류의식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거든.
구인류 최고의 대표선수답게 처신해보길 바라. 의심하는 그 순간마저도 우리에게는 지금 사치일 뿐이거든. 당장 1분 뒤에라도 대머리 아저씨와 신인류의 서치라이트가 널 파고들어 가서 네가 알고 있는 내용을 교묘히 왜곡시킬지도 몰라. 딱 30초 주겠어. 선택하던지 아니면 그냥 돌아가던지."
"...... 좋아. 네 다리, 그거 결국에는 나와 사브리나의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런 거지?"
"짧게 가자. 복수한다고 네 머리를 날려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Yes야 아니면 No야?"
진은 리처드의 표정과 생체적 반응 모두가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고로,
"Yes라고 하지."
Wireless 무선 시스템을 향해 알파 트레커의 채널을 하나 개방하였다. 순식간에 빙하기의 공룡들을 덮쳐왔을 만큼의 얼음 덩어리들이 차가운 폭풍우를 일으키며 내부로 파고들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