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업그레이드>-a

승산이 높아지다

by Roman

9. 업그레이드


a. 승산이 높아지다


진의 내부에서 모든 내용을 다 알게 된 진의 또 다른 내부 인격인 케언즈는 왜 실제의 케언즈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케언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건 양가적인 감정이 있는 결정인 것 같아. 고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었을 때 내가 태어났다면 아마도 친일파가 되든 독립군이 되든 한 가지만 선택했을 거야.


그런데 이건 어찌 보면 그 두 가지 중에서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거야. 구인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것도 신인류와 잘 지내면서 호의호식하기로 한 것도 아니지. 신인류에 대한 선망과 질시가 있는 동시에 구인류에 대한 연민과 경멸이 함께 있어. 참, 너무나도 나답게 복잡한 인간이야.

(출처: unsplash.com)

그냥 양자 간의 관계를 조율해서 균형을 잡아주려고 큰 형님 노릇을 하려는 셈이거든. 만약 신인류가 오래전에 암흑기의 지구에서 피의 숙청을 당한 경험이 없었다면 구인류를 기만해서 세대교체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일이 벌어진 그 시대가 잘 납득이 안가.


그 시대가 신인류를 받아주었고, 세상을 같이 더 좋게 만드는 쪽으로 그 뛰어난 두뇌를 사용하도록 이끌었다면 이런 복잡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들의 지휘 아래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내가 되었겠지. 그들이 머리, 내가 손.’


진은 가만히 내부의 케언즈의 생각을 듣는다. 그리고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 감상문보다 실질적인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지금 구인류 편이 되는 진심을 담은 부분을 나에게 이식한 그 케언즈는 친일파, 아니 신인류의 하수인이 되기로 작정한 존재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내게 당신이 알려줘야 할 부분은 신인류의 하수인으로서 충실한 존재가 된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할지 아닐까?’


케언즈는 정곡을 찔린 듯 잠시 말을 잃었다.


‘그래, 항상 진 너는 정곡을 찌르고 직설적이고 참으로 실용적인 사람이지. 내가 너에게 내편이 되기보다는 멀찍이서 간접적인 조종을 당하면서 자신의 의지라고 믿으며 내가 기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게 나답게 너란 존재를 대하는 방식인 이유가 있어.


너는 독립적인 존재이자 네 스스로 너의 부모가 되고자 하는 정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존재인 거야. 사회적 관습으론 예측 불가능한 존재지만 그 본질 때문에 어쩌면 더 예측이 쉬워지는 부분이 있어.


가까이에 있으면 예측 불허지만 떨어뜨려 놓으면 진도가 어디까지 갈지 계산이 되지.’


‘계속 얘기해봐, 그런 시선으로 그 케언즈가 나를 보고 있을 거란 게 단숨에 깨달아지네.’


‘그가 네게 얘기하지 않았던 말로 전달되지 않은 역할은 신인류도 동의해서 메인프레임에 흘려놓은 정보가 트리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일부러 네가 신인류의 정체를 알도록 만든 것은 죽지 않고 살 확률을 높게 본 그의 계산이 있는 거지.


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뒤에 사브리나와 함께 더 많은 신인류의 여러 면모를 확인하고 구인류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싸우는 역할을 무대에서 맡기를 원했던 거야. 나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그렇게 되면 그 싸움을 옆에서 지켜보게 될 구인류가 당신 두 사람처럼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신인류와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무력감과 대리만족을 동시에 느끼게 될 거야.


두 사람 덕분에 다수의 반란이 누그러지게 되는 상황. 그렇다고 둘만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변하지 않는 상태를 오랫동안 끌고 가는 것. 그게 신인류의 끄나풀이 되기로 선택했을 때 내가 실행할 수 있을 전략임이 분명해. 이건 내가 보증한다.


그렇지만 그의 구인류를 지켜주고자 하는 의지가 탑재된 너는 그 전의 그 케언즈가 멀찍이서 바라보며 예측이 가능했던 네가 더 이상 아닌 거야. 이제부턴 예측 불가한 상황이 펼쳐지겠지.’


‘업그레이드된 거지 그의 전뇌가 파악할 수 없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경로로. 고마워 덕분에 그가 말하지 않고 주려했던 내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럼 이제 반격에 들어가 볼까?’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