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업그레이드
b. 케언즈와 진의 대화
“진, 요즘 업무는 잘 돼가나?”
“네, 잘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쉐도우 기능을 종종 사용하고 있는데, 성과는 있나?”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이미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어색하게 흐른다.
케언즈의 눈빛은 어서 터뜨려야 할 것을 어서 터뜨리란 기색이고, 진의 눈빛은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호락호락하게 하진 않을 거란 이야기를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다.
(출처: unsplash.com)“자네 지난번에 병가를 내고 우리 집에 들렀던데.”
“리처드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뇌수술을 받았어요. 최근에 헛 것이 좀 보여서 심리 컨설팅도 받고 리처드에게 증상을 설명했더니 HH 테스트 후유증이라고 뇌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아, 그 기록은 봤어. 녀석 실력이 많이 좋아졌어. 원격 수술 시스템으로 집에서 수술도 진행하고. 그런 일 내가 손 놓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면 내가 직접 해 주어야 했을 텐데. 미안하네. 적어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수술도 굉장히 순조롭게 일찍 끝나서요. 매일 뵙는 박사님까지 그날 또 뵙긴 그랬네요.”
“우리 사석에서 만나는 경우가 너무 적었잖나?”
“현존 인류 중에 가장 바쁘신 분께 사석까지 요청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해서요. 또한 인류의 안전과 평화도 중요하고요.”
“이야기 잘했네. 맞는 말이야. 그게 더 중요하지. 이제, 난 폐쇄구역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야.”
“네? 무슨 말씀인가요?”
“더 이상 강의와 내외부 활동을 위한 사람과의 접촉을 하지 않기로 했네. 그리고 오로지 메인프레임에만 접속된 상태로 오류 수정 작업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일만 하기로 했어.”
“그럼 원래 하시던 일들은?”
“진, 자네가 맡아줬음 하네.”
‘이거, 그 일을 하게 되면 진, 자네가 자네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데, 그러기 싫으면 나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돌연변이들과 싸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군.’
진 내부의 케언즈가 진을 자신의 의식에 들어와 대화하게끔 이끌었다.
‘케언즈, 그래도 일단은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말이야.’
‘아니, 한번 거절해봐. 그와 신인류가 어떤 반응을 줄지가 궁금하군.’
“박사님, 제가 이제 갓 핸들러가 된 신입인데, 그런 막중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고, 객관적인 데이터상 자네 이상의 핸들러는 없네. 유일한 HH 테스트 통과자로서 이미 자격과 능력을 일찌감치 증명한 거네.”
“하지만 실무 경력이 너무 일천하여,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엔 너무 모자랍니다. 저보다 더 성과를 내고 있는 마이클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박사님의 의중을 읽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것 봐라 이 녀석 결국 나에 대해서도 뭔가를 알아낸 건가?’
케언즈는 진이 자신의 제안을 그대로 거절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에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뛰쳐나가 레지스탕스가 되기를 바란 것인데, 이것을 눈치챈 것에 놀란 것이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잠시만 여기에 있게.”
“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저는 제 일을 하고 있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블랙마켓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거래하는 조직을 더 조사하겠습니다.”
‘관찰자 씨? 채널 안에 있습니까?’
<아까부터 와 있었지, 저 녀석 머리에도 슬쩍 들어가 보고. 어이 발드 헤드 아직 거기 있나?>
<네, 관찰자님. 이 녀석 머릿속이 아까부터 굉장히 조용합니다. 생각보다 예의 바른 녀석입니다. 의외로 분수도 지키고 있네요.>
‘그동안 저 녀석이 뭔가 저에 대해 알아낸 정황이 없나요?’
<일단, 그가 아이젠을 찾아가 만난 뒤에 최근에 우리가 하듯이 의식을 조작하는 내용을 알려드렸잖습니까?>
<그래, 자기가 여러 인격을 갖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했지.>
<그 이후에 뒤늦게 리처드에게 가서 뇌수술을 받은 후에 찾아가서 머리를 뒤져 봤는데, 그 이후론 특별히 일 외에는 별 다른 생각을 안 합니다. 리처드도 요청에 의한 진료 행위로 정확한 뇌수술만 진행한 것뿐이었고요. 그 외에 특기할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발드 헤드 씨, 이 녀석이 다른 인격과 하는 대화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거요?’
<안타깝게도 그걸 들을 수 있는 기술을 서둘러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개발 완료 일정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다만 진의 의식 전면에 나오면 그때는 의식 속의 내용을 포착할 수 있긴 합니다.
뇌의 어느 곳에 그 인격들이 모여 있는 건지, 아니면 이곳저곳에 분할되어 전파망 개념으로 오가는지도 아직 파악이 안 되어 있습니다.>
‘녀석의 인격은 서로를 인식하고 알아본다던데, 어떤 인격까지 발견했나요?’
<참 신기한 게,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전체 기록을 메인프레임 데이터를 통해서 찾아보니, 실제 인물보다 영화나 극화 속 인물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매트릭스의 네오, 인디애나 존스의 존스 교수,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같은 각종 배역이 대략 7명, 시이저와 아우구스투스, 아우렐리우스, 괴테, 아인쉬타인, 이순신 등 역사상의 인물이 10명, 카사노바나 셜록 홈스, 루팡 같은 극화 속 인물이 5명,
(출처: unsplash.com)핸들러인 마이클처럼 동시대 인물 3명, 그리고 이 인물들이 모자이크처럼 결합돼서 생긴 가상의 인물들이 5명. 30명가량이 확인된 인물입니다.>
<그래 봐야 허깨비 수준이겠지, 게임에서 흡수했을 텐데.>
‘흡수한 인물의 인격 각각의 수준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흡수를 한 인물이 어느 정도의 잠재성과 내부 용량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서 큰 편차를 갖게 됩니다.
진이 흡수했다면 내부적으로도 성장도가 나름 높은 인물들일 거예요. 이렇게 일루미네이션에서 인격을 다발로 흡수하는 존재는 그 밖에 없을 터라 상대 비교해볼 사람이 없긴 하지만.’
<이거, 케언즈, 자네 계산에는 없었던 거지?>
‘네, 이게 제가 두려워했던 그의 잠재력의 무서움입니다.’
<텔레파시만 쓸 줄 알고, 무성 생식만 가능하다면 신인류라고 불러도 충분 이상이네.>
‘뇌수술을 다시 할 거리를 만들어 의료 사고로 죽일까요?’
<아니, 우리 편으로 회유하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럼 다음 시나리오로 이동하게 만들어야겠군요. 저항군 두목은 사브리나 하나만 남겨두고.’
‘진,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예상이 되나?’
‘어느 정도는. 아마 나를 죽일지 아니면 자기편으로 회유할지 두 가지 안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난, 저 케언즈가 어떤 입장으로 이야기할지가 예상돼. 먼저 네 다중 인격에 대해서 위험한 능력이란 걸 말할 거야 그리고 뇌수술 같은걸 받게 해서 죽이자고 하겠지.
그다음에 신인류가 회유하란 말이 나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죽이라고 하면 네게 리처드가 그 전 수술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게끔 공작을 하고 너를 불러들여 의료 사고로 죽게 할 거야.’
‘그럼, 그가 나를 회유하려고 하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도망쳐야 할까?’
‘죽이려고 하면 신인류 편에 붙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를 물어보고, 회유하려고 하면 조금 머뭇대다가 그대로 넘어가 주면 돼. 그럼 그는 미리 마련해둔 다음 시나리오로 갈 거야.’
‘그게 뭐라고 생각해?’
‘너를 자신 대신 전뇌에 연결하고, 구인류의 바지 지도자 노릇을 할 거야. 인류 세대교체 마치고 죽기 전까지.
(출처: unsplash.com)그전에 구인류와 신인류 간의 몇 가지 이벤트에 널 등장시키고 후계자로 키워. 하지만 사브리나와 널 싸우게 만들진 않아. 주연 배역들이 흥행과 무관하게 싸우다 다치면 영화사 손해니까.
사브리나만 남아 저항군이 구인류에게 주는 대리만족 수준이 떨어진 이유인 너의 공백을 메워 주기 위해 친 신인류 어용 정권을 유지하지.
그를 추종하고 존경하는 구인류를 위해 열심히 구인류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척을 죽기 전까지 하다가 양쪽 인류의 팬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죽는 시나리오일 거야. 그의 적들조차 그의 죽음을 추모하지.
구인류의 지지자는 그의 장례식까지 애도의 물결을 이룰 거고. 넌 신인류의 충실한 거의 마지막 구인류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 죽고, 사브리나의 끝은 저항 세력의 종말로 이어지지.
지구는 신인류의 무성생식으로 안전한 인구만 유지되고 전쟁도 범죄도 없는 말끔한 세상 도래. 비정상 분류자나 범죄자, 이탈자는 모두 일루미네이션 감옥에 가두어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게 만들고.
너보다 어리고 특별한 변종이 아닌 평범한 구인류는 신인류가 하지 않는 귀찮은 일을 맡아서 하다가 조금씩 인공지능 기계로 대체되면서 점차 멸종되어가지. 그리고 역사는 신인류를 가장 이성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출처: unsplash.com)아주 고전적인 표현으로 안 봐도 비디오야.’